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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군의 느릿느릿

죽으면 죽으리이다

by 터틀곽 2022.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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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죽으리이다

( 4:1~17)

 

오늘의 본문은 우리가 많이 들어 익히 알고 있는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는 본문이 등장하는 4장의 전체 내용입니다.

 

어제 수요일의 본문이 에스더 3장의 본문이었는데 우리가 선교사님의 선교 간증을 듣느라 3장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지 못해서, 물론 개인적으로 묵상 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혹시 다른 분들을 위해서 잠시 살펴보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3장을 보기 전 2장 후반부를 보면 아하수에로 왕을 죽이려고 했던 내시들의 음모를 에스더의 삼촌인 모르드개가 발견하여 그 사실을 에스더에게 알립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이 음모를 아하수에로에게 알리고 이 사실을 우리 삼촌인 모르드개가 알려주었다고 왕에게 말을 해주죠. 결국 이 음모가 밝혀지고 암살시도는 수포로 돌아가고 음모를 꾸몄던 내시들은 죽임을 당하는 내용이 2장 후반부에 등장합니다.

 

이제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할까요?

 

왕의 목숨을 지킨 놀라운 사건 아닙니까? 그렇다면 왕은 당연히 이 사실을 알려준 모르드개의 충심을 높이 사고 포상금을 준다던지 어떤 주요 관직에 앉히던지, 해서 이 모르드개의 충심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텐데요.

 

3 1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

 

그 후에 라는 말은 이 사건이 있은 이 후 라는 얘기죠.

 

상식적으로는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모르드개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어야 맞는 말인데 쌩뚱맞게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르드개의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을 만한 일이죠. 공은 자신이 세웠지만 출세는 다른 사람이 했으니 인간의 생각으로는 아쉽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어쨌거나 신하의 입장으로 왕이 가진 정권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이 하만이라는 사람이 아각 사람이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요. 아각 사람은 사무엘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아말렉 왕 아각의 후손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하만이라는 인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적개심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죠.

 

 

당시 이 하만이 왕의 바로 아래의 높은 벼슬을 가진 신분이었기 때문에 대궐에서 있는 모든 왕의 신하들은 왕의 명령에 따라 하만이 출 퇴근 할 때 모두가 꿇어 엎드려 하만을 대우하였죠.

 

그런데 모르드개는 꿇지도 않고 절하지도 아니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것을 보고 하만이 모르드개를 아니꼽게 본 것이죠.

 

안그래도 유대인들에 대해서 좋은 감정이 없고 악감정이 있는데 자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모르드개를 보니 속에서 불이 난 거죠. 그래서 모르드개의 민족인 유대인들을 모두 없앨 계획을 세우고 아하수에로에게 나가 유대인들을 모함하고 그들을 모두 없애도록 거액의 돈까지도 왕에게 바치면서 조서를 내려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자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에게 너의 소견에 좋을대로 하라고 명하죠. 이후 하만은 아주 빠르게 그 일을 진행합니다. 아달월 십삼일 단 하루 동안에 유다 사람들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도록 조서를 써서 모든 민족에게 알리고 그 날을 미리 준비하게 한 것이었죠.

 

여기까지가 3장의 내용이었고요. 오늘 읽은 본문은 4장의 내용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난 모르드개가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걸치고 성안으로 들어가 대성통곡을 하고, 또 이 조서가 전달된 지방마다 모든 유다 사람들이 탄식하고 금식하며 슬프게 울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에스더도 알게 되고, 모르드개에게 이렇게 전달하라고 말하죠.

 

11절의 기록입니다.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그러자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이렇게 회신합니다. 13 14절이죠.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향하여 에스더의 소명에 대해 상기시킵니다. 왕후의 자리에 앉아 있음으로 인해서 홀로 목숨을 부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4절에 너가 잠잠하여 말이 없더라도 유대인은 놓임과 구원을 얻겠지만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고 말하는데요.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언약을 결코 잊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모르드개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조상들에게 주어진 언약들에 기초했을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서 다시 그들의 땅으로 돌려보냈던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면서,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존하실 거라는 믿음이 모르드개 안에 있었던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방법으로라도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이다. 비록 하만에 의해 많은 민족들이 죽임을 당할하여 그루터기와 같은 아주 작은 무리만 살아남을지라도 그 명맥을 이어갈 것이며 하나님께서 다시 그 민족을 일으키실 것임을 믿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럴지라도 너와, 우리 가문은 멸망 당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왕후에 자리에 있으면 더 안전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모르드개는 너와 우리의 가문은 멸망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는 몇 가지의 해석이 있습니다. 먼저는 유대인들이 모르드개의 요청을 거절한 에스더의 가문에 대한 복수가 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고요,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숨을 얻겠지만 하만의 눈을 피하지 못해 결국은 그의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에스더에게 주신 소명을 거부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파멸이 있을 것이다. 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와 세 번째의 해석이 무난한 해석이라고 보여지는데요.

 

모르드개는 14절 하반절에 기록된 대로 너가 왕후가 된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라고 말하면서 지금 이 시기에 너가 감당해야 할 소명을 이루라. 라고 에스더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에스더는 11절의 말씀을 미루어보아, 이 사건을 해결할 의지가 없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 왕에게 나아가면 죽임을 당하는 것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도 왕의 부름 없이 임의대로 왕 앞에 나간다면 내가 왕후일지라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리죠.

 

하지만 모르드개는 오히려 지금 이 때가 너가 왕후로 세워지도록 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상기시키게 합니다.

 

이 모르드개의 말을 들은 왕비는 내가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는 각오를 다지고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서 왕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과 깨달음이 각자 있으실 것으로 압니다.

 

먼저는 우리는 민족을 품고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떤 전체주의를 아름답게 포장하고자 하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각 개인은 자신이 속한 나라 안에서 살고 있으며, 그 민족의 뿌리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도 합니다. 또 나아가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선배들이 일구어놓은 신앙의 토대 위에서 성장하였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또한 우리의 자녀들도 그 믿음의 터 위에서 성장할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고 자란 이 땅과 민족 위에 믿음의 집을 세워 나가야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그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고, 민족의 아픔을 함께 아파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개인으로서도 살아가지만, 이 개인은 공동체 안에 속해 있는 사람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또 우리는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듯이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도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공동체 안에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신앙공동체인 교회 공동체 안에 있음을 기억하고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공동체가 굳건히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하며 우리의 자녀 세대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믿음으로 성장해 갈 수 있는 믿음의 터전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의 기도가 때로는 죽음을 뛰어넘는 고백이 필요할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이 각오는 자신의 목숨을 던져 민족을 구원하고자 했던 고백이었습니다.

 

한 여인의 이 믿음의 결단으로 인해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죽을 수 밖에 없던 운명에서 모두가 살아나게 된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민족적인 봉기와 전투를 통해서 얻어낸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목숨을 건 기도와 결단을 통해서 한 민족이 구원을 얻게 된 것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면서 때로는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만한 큰 문제와 맞딱뜨리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이런 건축과 같은 큰 문제들이 공동체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죠.

 

바로 이 때가 기도해야 할 때임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여러 이유가 우리 앞에 있지만, 무엇보다 나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큰 산과 같은 문제들 앞에서 우리는 기도로, 또 신앙으로 그 문제들을 돌파하며 나가야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뜻대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때로는 죽음과 같은 고난을 그대로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내 앞에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내 삶에 허락하신 모든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기도를 통해 배워가야 하는 것이죠.

 

오늘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다는 이 고백을 묵상하며, 우리 또한 우리의 삶 속에서 주어진 모든 상황들을 믿음의 고백으로 선택하고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지금까지 나의 삶에서 죽으면 죽으리다는 고백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때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나요?

 

질문2.

우리의 기도가 나의 바램대로 응답되지 않았을 때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아니하고, 그 또한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깨달은적이 있으신가요? 오히려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하셨던 응답의 경험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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