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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군의 느릿느릿

왕후가 된 에스더

by 터틀곽 2022.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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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가 된 에스더

( 2:11~23)

 

오늘의 본문은 에스더가 왕후로 선택받은 내용과 왕을 해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밝혀내는 두 장면이 등장합니다.

 

바사 시대 뿐만 아니라 왕권을 유지했던 고대 혹은 중세시대 까지도 왕이 가진 권력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던 존재가 바로 왕 이라는 존재였죠.

 

12, 13절에는 처녀마다 왕에게 나아갈 때, 라는 단어가 두 번 등장하는데요. 당시에는 수 많은 처녀들을 전국 각지에서 불러 모았습니다. 당시에 왕궁으로 들어가는 길은 보통 세가지 방법이 있었는데요. 첫 번째로는 자발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히 이렇게 왕의 조서가 내려온 경우에는 모든 백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죠. 두 번째로는 가문마다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이들을 선택하여 궁녀를 주관하는 그런 행사에 참여를 시킵니다. 가문에서 이러한 준비를 시키는 이유는 출세를 위함이죠. 자신의 가문에서 자란 처녀가 왕후로 간택된다면 엄청난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왕의 신하들이 각 도성에서 처녀들을 직접 선택하여 왕궁으로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정확하게 등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에스더는 세 번째 경우일 것 같습니다. 어제 본문 8절에서는 왕궁으로 이끌려갔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어떤 강압적인 압박감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갔다기보단, 선택되었다고 이해하는 편이 더 바른 해석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행사를 행사라고 하기엔 좀 슬픈 구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처녀가 임금과 하룻밤을 지냈으면 이후에 여인들이 모인 집으로 돌아가 대기를 합니다. 이 내용이 14절에 등장하는데요.

 

저녁이면 갔다가 아침에는 둘째 후궁으로 돌아와서 비빈을 주관하는 내시 사아스가스의 수하에 속하고 왕이 그를 기뻐하여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면 다시 왕에게 나아가지 못하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이 그를 기뻐하여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면 다시 왕에게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왕에게 나아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왕궁에 들어가 임금과 접촉하면 다시는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부름을 다시 받지 못한 여인은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다른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릴수도 없이 평생을 왕궁에 같혀서 지내야 하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왕후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지만, 그 기회 앞에 택함받지 못한다면, 자유로움이 박탈된 채 살아야 하는 슬픈 운명이 그 앞에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들려지는 에스더의 고백을 보면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에스더의 고백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그 상황 자체를 달갑게 받아들이기는 좀 어려운 부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왕에게 나가는 방법은 처녀마다 차례대로 나가는데요 총 1년의 기한을 갖춥니다. 여섯달은 몰약 기름을쓰고, 여섯달은 향품과 여자에게 쓰는 물품을 써서 자신을 잘 가꿉니다.

 

그리고 왕에게 나갈때는 왕에게 잘 보일 수 있는 무엇이든지 요구하여 가지고 갈 수 있었습니다. 필요한 옷이나 장신구 등을 요구하여서 최상의 아름다움과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가꾸는거죠.

 

많은 여인들은 그렇게 자신을 돋보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지만 결국에 왕후가 된 것은 에스더였습니다. 심지어 15절의 말씀을 보면 에스더는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가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였지만,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미루어보아 에스더에게는 다른 여인들이 갖지 아니한 다른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어떤 이유로 아하수에로가 에스더를 왕후로 세웠는지는 정확하게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지는 않지만, 이 모든 여정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에스더에게 있었음을, 또한 아브라함 때부터 이루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이 그대로 유효한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어떻게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좀 해보았는데요. 두 가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는 우리를 신부로 맞이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은 단 한사람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원하고 기다린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왕들은 왕후로 단 한명의 여인을 골랐습니다. 왕후가 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벌써 얼마나 경쟁이 심했는지가 본문 12절부터 14절만 살펴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왕에게 간택받기 위해서 얼마나 자신을 가꾸고 치장하면서 가장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이기 위한 노력, 외적인 것 뿐만 아니라 내면에서 풍기는 아름다움과 마음가짐과 말투와, 왕후로서 갖춰야 할 모든 영역에서 매력을 발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요?

 

만약 우리가 왕후를 뽑는 자리에 나아간다면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아마 저라면 예선에서 탈락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독생하신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인하여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끌어안으시고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깨끗하게 하사 하나님의 자녀로 또 마지막 날에는 준비된 정결한 신부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만약 어떤 노력이나 공로가 필요하다면 그 기준이 오늘의 본문에서 왕후를 부르는 그 자리와 같다면 얼마나 고되고 불안하겠습니까?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준비한다 한들 나의 준비함과 다르게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면 나의 그 노력과 수고가 다 물거품이 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요한복음 6 39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모두를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그 뜻이 아버지의 마음에 담겨있다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과 같은 모든 이에게 얼마나 기쁘고 복된 소식입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고 부르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두 번째 묵상인데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신부로 부르시고 계심을 성경에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계시록 19 7절부터 9절까지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계시록의 말씀은 마지막 날 세상 끝의 징조와 이루어질 일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묵시록입니다. 새하늘과 새땅이 도래하는 날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지는 날에는 약속 안에서 먼저 잠들었던 자들도 일어나고, 또한 주님 오심을 간절히 소망하는 이들과 주님과 함께 혼인의 날이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가장 마지막 믿음을 신부의 믿음으로 칭하셨고, 마지막 때를 혼인의 날 이라고 부르셨을까요?

 

그것은 그 어떤 사랑보다다고 가장 순결한 사랑이며, 그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언약적 요소가 담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에 모든 성도를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신부로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잘 가꾸고 있는지 점검하고 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랑은 아직 까지는 더디 오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록된 말씀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알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등불을 킬 기름도 준비하지 아니한 채 신랑이 더디오므로 잠들어 있었습니다.

주님의 오심은 하나님의 심판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임할 것임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 오심에 대한 말씀을 대하는 우리에게 어떤 두려움을 심겨주거나 압박감을 주기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심판을 받는 이들에게는 두려운 말씀이 될 수 있지만,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에게는 간절히 사모하는, 소망하는 말씀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매일 매일을 주님 오심을 사모하는 이들에게는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소망의 날이 될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는 우리의 육신의 날의 호흡이 다 하여 우리의 영혼이 주님 앞에 가는 날, 그날은 반드시 도래할 것입니다. 또 우리의 인생이 언제 주님 앞에 서게 될지 모르는 것이 우리의 인생 일진데, 우리 믿음의 등불은, 그리고 우리의 세마포는 우리에게 주어진 생애 가운데 준비되어야 하는 소중한 것들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늘의 본문은 여인들이 왕후가 되기 위하여 자신을 단장하는 본문이었지만, 이 본문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단장하여 우리의 참 신랑 되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에스더와 같은 준비 된 믿음이 되어 우리의 믿음의 고백을 통해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주님의 신부로서 준비해야 하는 세마포, 그 세마포는 옳은 행실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옳은 행실은 무엇일까요?

 

질문2.

나를 높이시고 존귀하게 하실 때, 혹은 내가 낮아지고 초라함 가운데 있을 때 언제나 나와 함께하는 분이 하나님임을 자각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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