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고전 15:20~34)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에 관하여 서술된 장입니다. 14장에서 은사의 사용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술하고 이후 15장에서는 완전히 화제가 전환시켜서 부활에 관하여 바울의 견해가 기록되어 있는 장이 바로 15장입니다.
먼저 15장 1절부터 11절까지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당시에 그 사건을 목격하였던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부활의 역사적인 증거에 대한 증언으로 볼 수 있고요. 이후 12절부터 19절까지는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는 이들에 대한 반론을 재기 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다루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아니라 죽은 자의 부활 일체를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 후서 2장 18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라고 말하면서 부활을 부정하는 이들에 대해서 경계하라는 권면이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교리적으로 체계가 바르게 잡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혼합적인 가르침과 자신이 깨달은 대로 믿고 싶은대로 믿는 무질서가 있었습니다.
영지주의적 가르침을 따르던 이들은 침례를 받을 때 영혼은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3절에서 19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 사이에 끊을 수 없는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서 부활 신앙에 대한 가르침을 더욱 확실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이후에 20절에서부터 34절까지의 본문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크게 두 가지 주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20절에서 28절까지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한 번 더 주장하고 있고요. 이후 29절부터 34절까지는 부활을 향하는 신자의 삶의 태도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첫 사람 아담과 연관지어서 비교하며 증언하고 있는데요.
20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19절의 말씀을 대변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만약 부활이 없이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이라면, 우리는 정말 불쌍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렇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부활을 첫 열매라고 표현한 것은 참 의미가 있는 표현입니다. 열매라고 하는 것은 결실과 완성을 의미합니다.
농부가 수고하며 씨를 뿌리고 파종하고, 잡초를 뽑고 벌레를 쫓으며 밤낮 수고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바로 열매를 얻기 위함입니다. 열매를 수확함으로 인해 그간의 모든 수고와 노력이 보상되기 때문이죠.
그리스도의 부활은 열매가 되셨습니다. 부활의 신앙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의 삶을 완성시키는 열매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도 부활의 첫 열매를 맺으신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삶의 모든 소망을 그분 앞에 둘 때 함께 부활의 소망에 동참하게 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1절과 22절에는 첫 사람 아담이 등장합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은 아담이라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아담은 모든 인류의 대표입니다. 그런 아담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통치를 떠나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죄를 범하여 인류에 죄가 시작되었습니다.
22절에 기록된 것처럼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기독교 교리 중에 원죄라고 부르는 교리가 바로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류를 의미하는 것이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인 예수그리스도를 두 번째 아담으로 우리에게 보내어주셔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온전하고 완전한 통치의 본을 보여주심으로 말미암아 첫째 아담안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인류를 두 번째 아담인 예수 안에서 부활의 열매로 우리를 새롭게 하여 주셨습니다.
부활을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죽음이 생명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신앙의 고백이며 존재의 변화 인가요?
제가 저번주도 아버지 때문에 육지에 다녀왔지만, 최근에 마음의 준비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3월경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코로나에 감염되시고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받으셨을 때, 또 심장의 문제로 인해 큰 수술을 받으셔야 했을 때, 수술 이후에 폐에 물이 차서 호흡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시는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많은 마음의 준비를 했었습니다.
성도님들의 기도와 중보로 인해서 기적적으로 연장된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다.
만약에 부활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은 죽음을 마주하는 그 순간이 얼마나 허무하고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까요?
하지만 부활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죽음을 뛰어넘는 사망을 이기는 믿음의 고백 안에 살아가는 존재임을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22절에 기록된 말씀은 놀라운 능력과 소망이 담긴 구절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새번역에는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 부활의 소망 안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후 바울은 23절부터 28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부활의 점진적인 완성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 말씀은 승리와 완성에 대한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정복하고 부활하셔서 산 소망, 첫 열매가 되어주셨습니다. 이것은 승리입니다. 사망을 이기신 승리죠. 하지만 완성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종말에 일어날 어떤 사건이나, 진행 과정에 대해서 완벽하게 서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이르기 전에 25절에서 기록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원수, 원수는 사탄을 말하죠. 이 원수를 정복하시고 왕 노릇 하시는 분임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26절에 기록된 맨 나중이 바로 종말을 의미하죠. 종말에 임할 그 심판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 이라고 말하면서 그 종말이 임할 때 28절의 말씀의 기록처럼 모든 만물이 그의 발 아래 복종하게 될 것이며, 그 아들인 예수께서도 하나님께 온전한 복종을 보이시며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 이심이 모든 만유에 선포될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죠.
부활 신앙을 향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소망은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주신 것과, 우리의 믿음을 주님 앞에 둘 때 우리도 그 열매를 반드시 맺을 것, 그리고 사망은 이미 패배하였고 예수께서만이 참된 왕이심을 고백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 우리가 가져야할 소망인줄로 믿습니다.
이제 바울은 29절부터 34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부활을 소망하는 이들의 삶에 대해서 증언합니다.
오늘 본문 29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침례를 받느냐
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례를 받는 관행이 고린도 교회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카톨릭 교회가 면죄부를 파는 행위와 똑같은 행위었습니다.
아마 고린도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에게 구원의 몫을 확보해 주기 위하여 그들을 대신하여 침례를 받는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 일에 대해서 자신의 삶을 예로 들며 부활을 소망하는 이들의 삶의 자세에 대해 말합니다.
30절부터 32절까지 말씀은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살아가고 있으며, 날마다 죽으며, 자신들의 위협하는 세력들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했던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 자신이 이렇게 달음질 하는 자가 상을 얻기 위하여 그 경주를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은, 날마다 자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는 이유는, 자신을 위협하고 박해하는 이들에 대해서 사람의 방법으로 싸우지 않는 이유는 부활을 향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이들의 삶을 어떠한가요?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악을 행하며 살자! 무엇 하러 선을 행하며 사는가? 라면서 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바울은 34절의 말씀처럼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멀리해야 하는 삶은 이생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부활하여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 해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소망이시며,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는 반드시 예수 안에서 선한 열매를 맺어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거하기만 한다면, 그 부활의 능력이 우리에게도 부활의 열매를, 예수님을 닮은 선한 열매를 내어 그 열매를 가득 안고 만유의 주 이신 하나님을 영광 가운데 맞이할 것임을 기억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부활을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는 사망을 정복하고 승리하신 예수님의 능력 안에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까?
질문2.
부활을 실재로 살아내는 삶이 되기 위해 내가 붙들어야 하는 소망의 말씀은 무엇인가요? 나의 존재를 새롭게 하신 그 말씀이 내 안에 살아 생동력있게 움직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