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곽군의 느릿느릿

사랑이란

by 터틀곽 2022. 8. 27.
728x90
반응형

사랑이란

(고전 13:1~7)

 

오늘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말씀인 사랑에 관하여 기록한 사랑장 이라고도 부르는 본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인 고린도전서 13장은 고린도전서의 가장 중심되는 본문입니다. 아마 바울은 오늘의 본문인 이 13장을 전달하기 위하여 1장부터 12장까지의 긴 시간을 할애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이 많았고 바로잡아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결론이 바로 오늘의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린도전서 12장 마지막 구절인 31절의 말씀을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은사장이라고 부르는 장이죠. 고린도 교회에 무질서하게 남용되던 은사에 대해서 바른 지식을 전달하고 이 은사를 통해서 교회 공동체를 어떻게 세워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31절의 말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죠.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라고 말합니다.

 

서로 어떤 은사가 가장 좋은 은사인가 라고 말하면서 은사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며, 주신 은사로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구하면서 욕심을 채우기에 바빴던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은사 사용을 위한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죠.

 

13 1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사람의 방언이라고 하는 것은 은사로서의 방언을 의미한다는 주장도 있고요, 또 말 그대로 사람이 사용하는 여러 언어를 의미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대체적으로는 특별한 달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충만함과 황홀경에서 말하는 은사적인 방언을 의미합니다.

 

 

천사의 말을 한다는 것은 천사와 교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에는 천사에 관하여 신비주의적인 교리들이 존재하고 있었는데요. 이렇듯 하나님의 대리 역할을 하는 천사들과 교통하며 그들의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할지라도 로 끝난 것은 뒤에 긍정적인 내용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그렇게 영적인 말을 하고 천사와 교통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라고 말합니다.

 

사랑이 없는 방언과 사랑이 없는 천사와의 교통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오히려 시끄러운 소음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은사를 사용하는 이들을 보며 내심 부러워 했을수도 있습니다. 와 저런 은사를 사용하는걸 보니 영적인 깊이가 있는 사람인가보다. 뭔가 하나님과 엄청 친밀한 사람인가보다. 영적인 세계를 통달하고 있는 사람인가보다. 라고 하면서 은사를 사용하는 이들을 우러러보고 그들을 존경하고 따르는 무리들도 있었겠죠.

 

하지만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서 아무리 신령한 은사를 사용한다 할지라도, 너희 안에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결단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소리만 울리는 꽹과리와도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절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서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깨닫는다는 것. 얼마나 놀라운 은사입니까?

성경에 감취어진 하나님의 모든 비밀을 깨달아 알 뿐만 아니라,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모두 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나오는데요. 성경은 3을 완전수로 사용합니다. 성경을 기록한 이들도 이 3의 의미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데요. 오늘 12 2절에서도 3의 숫자를 사용하면서 또 모든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아 이는 온전함을 넘어 완전함 까지도 다다를 수 있는 말씀입니다. 모든 비밀, 모든 지식, 모든 믿음 이 세 가지를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거침이 없겠습니까? 거의 예수그리스도의 분량에 다다랐다해도 부족함이 없을만한 그런 위치에 속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그런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세 번째로 3절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구제는 교회 공동체로서 꼭 감당해야 하는 선한 일 중에 하나였습니다. 구제만큼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선한 일은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적당히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아마 있더라도 참 찾아내기 힘든 사람일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어 사람을 구제하고, 또 나아가서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3절은 엄청난 희생정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희생정신의 최고는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준다는 것은 순교의 정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내가 모든 방법으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내어 구제하고 심지어 그들을 위해서 내 몸을 순교의 자리까지 내어던진다 하더라도 그 안에 사랑이 없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3 1절에서 3절까지의 말씀은 12장의 본문을 완성하는 말씀입니다.

 

여러 은사가 있고, 또 직분이 있고 사역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특별히 은사와 직분과 사역이 많은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은사와, 직분과, 사역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는데요. 바로 그것이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섬김과 희생, 사랑이 없는 은사, 사랑이 없는 믿음과 지식들은 전부 아무것도 아님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본질이 없는 외형과 껍데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은사가 제일 인양, 그중에서도 어떤 은사가 가장 좋은 은사인지를 다투었습니다. 직분 안에서도 누구의 직분이 더 높고 중요한지, 누가 더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더 옳은 분파인지에 대해 다타고 분쟁하고 파벌을 두고 싸웠습니다.

 

또한 교회라는 이름으로 여러 사역을 통해서 구제의 일도 하고 심지어 순교의 믿음을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어야 함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4절부터 7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사랑의 속성에 대해서 말합니다.

 

다 아시다시피 이 사랑의 속성은 오래참음과 온유함 이 두 가지 속성은 예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사랑의 행위를 묘사합니다.

 

또 그 이후에 이어지는 여덟가지의 성품은 사랑이 멀리하는 속성, 곧 사랑의 속성과는 반대되는 일들이 등장합니다.

이는 처음의 두 가지 속성 오래참음과 온유함으로 기록된 예수님의 성품과 정반대되는 인간의 타락한 죄성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사랑가운데 거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살펴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오래참음과 온유함에 가까이 있는지 아니면 시기와 자랑과 교만과 무례함, 욕심과 분노와 불의에 더 가까운지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외치고 사랑해야 함을 알고 사랑을 가장 우선시 여기는 기독교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늘 사랑에 대해 말씀하셨고 실제로 그 사랑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하지만 참 어려운 것이 사랑입니다. 특히 나와 가까이에 있는 이들을 품고 사랑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죠. 그렇기에 숭고하고도 어려운 길이 사랑의 길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의 본문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사랑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고, 또 사랑의 속성을 풀어내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진실로 사랑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사랑할 수 없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 또한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였지만 이런 나 같은 존재도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묵상하며, 나의 지체를 향하여, 또 내가 속한 일터와 세상을 향하여 우리는 우리가 받고 누리는 사랑을 전달해야 하는 그런 사명 공동체로 묶여 있음을 기억하시길 바립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우리 오라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서로가 서로에게 확인할 수 있게 되며, 또 나아가서 우리의 사랑을 이웃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축복의 통로로 세움 받기를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질문1.

나는 내가 받은 사랑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나요? 나는 사랑받은자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요?

 

질문2.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이들은 지금 내 옆에 있나요? 나는 그들을 어떻게 더욱 사랑할 수 있을까요?

 

728x90
반응형

'곽군의 느릿느릿'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의 권리포기  (0) 2022.08.29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0) 2022.08.29
라합을 아시나요  (0) 2022.08.27
은사와 성령  (0) 2022.08.27
양심에 대하여  (0) 2022.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