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임함
(눅17:20~37)
오늘의 본문은 15장에서 16장 까지의 다섯가지 비유 이후에 다시 이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입니다. 15장에서 16장까지는 비유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다가, 오늘 17장을 통해서는 직접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예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본문 20절에는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할것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비유에 대해서 계속해서 가르치시자, 그럼 그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죠.
그 질문에는 유대인들의 사상이 담겨져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메시아 사상의 기초는 다윗때에 누렸던 영광의 회복입니다. 메시아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능력있는 탁월한 지도자입니다. 군사적 정치적으로 탁월한 왕이 다시 세워지는 것. 그것을 통해 놀라운 번영을 회복하는 것이 유대인들이 꿈꾸던 메시아였습니다.
그러한 위대한 메시아가 와서 언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냐? 언제 우리가 유대땅을 넘어 모든 열국을 다스릴 것인가? 그런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할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죠.
그러자 예수께서 20절 하반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은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나라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죠. 어떤 특정한 장소나, 지리적인 특징을 가지고 세워지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21절에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시죠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여기서 하신 말씀은 약간의 번역의 차이가 있습니다.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은 질문을 던진 바리새인들 안에 임하여 있다는 뜻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 안에 있다는 말씀은 너희와 함께 너희 중간에 라는 뜻으로 번역함이 맞습니다. 지금 바리새인과 함께 하고 계신 분이 누구신가요?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본질 이라는 것을 가르치시는 말씀과 같습니다.
이 말씀은 문맥의 흐름 상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통치를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24절~25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이 되어있죠.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예수님의 임하심은 번개가 번쩍이면서 이쪽부터 저쪽까지 비친다는 말씀은 모두가 이 사실을 밝히 알 것이라는 말씀과도 같습니다.
번개가 치게 되면 그 하늘을 바라보는 모든 이가 번개가 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듯이 예수님의 임하심은 모두가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25절에 보면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임하시기 전에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시며 그 십자가를 감당하시기 위해 이 세대에게 버림받으셔야 할것임을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먼저 십자가의 수난이 임한 이후에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게 될 때 번개가 번쩍이는 것 같이 모든 이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누구도 모른다 할 수 없이 임하실 것임을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의 또 다른 특징이 나타납니다. 26절부터 마지막 37절까지 말씀입니다.
노아의 때 홍수의 심판이 임했던 때 사람들이 심판의 경고를 무시하고 먹고 마시고 장가들어던 때를 상기시키십니다.
또 롯의 때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떨어질 때도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지으며 살았음을 상기시키시죠.
이는 두 가지 사건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첫 번째로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는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실 것을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노아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는 심판의 날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예로 드시는 이유는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는 심판의 주로 이 땅에 오실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이죠.
두 번째는 홍수 심판 때에, 또 소돔과 고모라에 심판이 임할 때 그 땅에 사는 인간들의 행태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심판이 임하는지도 모른 채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그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상을 그대로 살았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도 우리는 우리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고 느낄 그때 하나님의 심판은 임할 것입니다.
본문 34절 35절에도 기록되었듯이 둘이 누워서 잠을 자고 있을 때 한명은 데려감을 한명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며, 맷돌을 갈고 있을 때 하나는 데려감을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버려둠은 심판을 데려감은 구원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 둘의 일상은 같은 일상을 지낼 것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죠.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한 사건이 1992년 다미선교회에 있었죠. 어느날 휴거가 임할 것이다. 라는 이 미혹에 많은 사람들이 속아 하얀 옷을 입고 휴거를 기다렸지만 그것은 거짓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오늘의 말씀만 해도 예수님의 임하심은 번개가 번쩍임 같이 모든 사람이 알 것인데 그 날과 시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오심을 당연히 준비해야 합니다. 다만 그 날과 시는 알 수 없으니 날마다 준비된 마음을 가지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도 성실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삶의 자세는 예수님이 언제라도 다시 임하실 때 기쁨으로 그 날을 맞이 할 수 있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 같이 우리의 믿음을 정결하게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가르쳐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신 예수그리스도는 이미 우리 안에 임하여 계십니다.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한 이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있습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라도 예수께서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실 때 그 심판을 두려워 하고 그 심판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기쁨과 환희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맞이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곽군의 느릿느릿'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믿음으로 받는 구원 (0) | 2022.08.26 |
---|---|
자기를 낮추는 기도 (0) | 2022.08.26 |
굳게 붙들어야 할 소망 (0) | 2022.08.26 |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1) | 2022.08.26 |
겨자씨와 누룩으로 만드는 하나님 나라 (0) | 2022.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