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눅 16:1~18
오늘의 본문의 구절은 이해하기에 좀 어렵게 다가오는 구절로 다가옵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학자들마다 주장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요. 좀 억지스러운 주장도 있는 것이 사실인데요. 오늘의 본문을 문맥 안에서 살펴보길 원합니다.
오늘 등장하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15장부터 16장까지 연결되는 지점 사이에 끼어있는 비유입니다. 15장부터 16장까지는 총 다섯가지의 비유가 등장을 합니다.
수요일날 목사님께서 설교하셨던 잃은 한 마리 양 비유와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의 비유 그리고 어제 등장했던 탕자의 비유, 그리고 오늘 함께 나눌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가 나오고요 그 다음이죠 토요일 큐티 본문인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까지 총 다섯 개의 비유중 하나입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이 본문 자체가 좀 난해한 부분이 있어서 좀 이후에 살펴보고요. 잃은 양 비유와 한 드라크마의 비유 그리고 탕자의 비유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이 네가지의 비유는 의미하는 바가 확실합니다.
이 네 가지의 비유 모두 다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구성된 비유입니다. 잃은 한 마리 양과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간절히 찾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7절과 10절에 그 해석이 기록되어 있죠.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잃은 한 마리양, 잃은 한 드라크마는 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도 돌아와야 할 한 영혼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왔을 때 하나님 나라에서는 기쁨이 충만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돌아온 탕자의 비유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이도 같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났던 불효자가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무런 조건 없이 그 아들을 다시 아들로 인정하고 품어주는 아버지의 넓은 마음과 용서를 나타내고 있죠.
오늘의 본문 다음 구절인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무엇인가요? 이 땅에서의 부유함과 혈통적인 우월함으로는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음을, 오히려 가난하고 거지였던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있음을 드러냄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른 비유들 모두 다 하나님 나라를 시사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좀 내용이 좀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부자에게 그 부자의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청지기는 종이죠. 종은 자신의 직무를 잘 수행해야 할 존재인데 오히려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부자에게 들키게 되죠.
그러자 그 부자가 청지기를 불러서 장부 가져와! 만약 틀리면 넌 해고야!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 청지기가 자신의 잘못을 생각합니다. 속된말로 아마 뒤로 많이 해먹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생각하는게 용서를 빌거나 해먹은 것을 돌려드려야겠다. 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생각을 합니다. 3절입니다.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다는 말을 합니다. 악한 사람의 본성이 드러나죠. 성실하게 땅을 일굴 생각도 아니하고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체면 때문에 누구에게 빌어먹기도 부끄럽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선 빠르게 머리를 굴립니다. 4절부터 7절까지인데요. 결정한 내용이 무엇이냐면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찾아가서 기름 백말을 빚진 사람에게는 50이라고 쓰라고 하고 밀 백석을 빚진 사람에게는 80이라고 쓰라고 합니다.
주인에게 빚진 사람은 갑자기 50% , 20% 할인 된 가격에 빚을 탕감해준다니 좋다고 증서를 고쳐씁니다.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중에 주인에게 쫓겨나면 빚을 탕감해준 사람들을 찾아가서 체면을 차리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 아닌가요?
5절을 보면 일일이 불렀다는 것을 보면 아마 여러 사람들에게 증서를 고쳐서 써주었을 것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이게 무엇인가요? 이중장부를 쓴것이죠. 주인이 알면 지혜롭구나, 너 참 똑똑하구나 하겠습니까? 원래대로라면 어떻게 해야하죠? 오히려 잡아다가 너가 지금까지 해먹은것도 모자라서 나한테 빚진 사람들 증서를 위조해? 이중장부를 써? 라고 하면서 옥에 가두고 매질을 하고 지금까지 위조한 문서 다 불어! 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주인은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있게 하였다고 하면서 칭찬을 합니다. 좀 의아하죠?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이 주인은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신데, 왜 이 불의한 청지기를 지혜롭다고 할까? 왜 잘했다고 할까? 라고 생각이 들지 않으시나요?
칭찬하신 이후에는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불의한 청지기와 빛의 아들이 비교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합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는 자기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쫓겨난 이후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서 대단한 결단을 합니다. 장부를 위조하고 자신의 살길을 잘 파해칩니다. 그 단호한 결정과 빠른 태도를 보고 지혜롭다고 여겨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지혜로움 자체를 의로 여겨주시진 않으셨습니다. 다만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게 행한다고 하신 것이죠.
이제 난해한 9절이 등장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갑자기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시더니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됩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까지, 그리고 그가 세상적으로 지혜롭게 행했다는 것 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는데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것은 도통 받아들이기가 어렵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데 어떻게 우리에게 불의하게 행동하라는 말씀이신가? 라고 느껴지게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불의한 청지기의 행동과 그가 사용하는 세상의 방식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나요? 불의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죠. 교묘하게 탈세를 하거나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으거나 한다는 것이죠. 이것이 세상에서 재물이 굴러가는 방식입니다. 세상에서 유통되는 재물은 보통 깨끗하게 쓰이기보단 불의하게 사용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 모이신 분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이 돈이라는 것은 불의하게 더럽게 사용될때가 굉장히 많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은 불의하게 쓰여지는 재물일지라도 그 재물을 통해서 너희의 친구들을 만들라 라는 말씀입니다. 조금 더 깊이 있게 말을 풀어보자면 너희의 재산을 나누어 가난한 자들을 도우며 그들로 하여금 너희의 의로움이 드러나게 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에 그들이 너희의 보증인이 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재물을 섬기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증명해줄 수 있는 것은 너희가 이 재물을 나누어 가난한 자들을 섬기고 그들로 하여금 너희의 의로운 행위가 증명되게 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에 그들이 증인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우리가 섬겨야 하는 대상은 재물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다시 가르쳐 주십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이 말을 듣고 비웃지만 예수님께서는 15절의 말씀을 통해 너희의 마음을 이미 하나님께서 알고 있다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제자로 살아가는 것. 이것은 온전한 헌신과 충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은두 주인을 섬기는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만을 붙드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계신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15장과 16장에 등장하는 모든 비유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오늘 이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또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갈 때 우리는 불의하게 여겨지는 이 세상의 재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제물을 풀고 흘려보내어 많은 사람들을 돕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고 계신 것이죠.
우리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불의한 일을 주물러대는 이 세상의 재물에 있습니까? 아니면 이 땅에서는 비록 부유하지 못할지만 소유를 나누라는 진리를 선포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부유함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계신가요?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여기 모이신 우리는 온전히 예수님을 따르기를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질문1.
재물은 왜 불의하게 쓰여질까요? 우리가 사용하는 재물은 불의하게 쓰이나요? 정결하게 쓰이나요?
질문2.
내 마음에 참 주인은 누구인가요? 나의 겉과 속은 예수님 한분만을 섬기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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