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복 주시는 사람
(시편 37편 12~26)
이 시편은 독특한 문학구조를 따르고 있는 시입니다. 이 37편은 두 줄로 이어지는 각 연의 시작이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를 따라서 쓰여졌습니다. 이렇게 알파벳 순서로 기록한 여러 이유가 있죠. 이는 하나의 문학기법이기도 하고요. 가장 큰 이유로는 잘 암송하고 기억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한국식으로 한다면 기억,니은,디귿,리을 순으로 쓰여진 것이죠.
그런데 이 정교한 형식을 지키면서 시를 이끌고 가야 했기 때문에 시상의 연결 자체가 아주 매끄럽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우리는 번역된 성경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큰 거리낌은 없이 이 시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시편 37편은 잠언이나 전도서와 같은 지혜서와 같은 시입니다. 예배 때 쓰이는 찬송시가 아니라 인생 경험이 많은 노인이 자신이 깨달은 지혜를 젊은이에게 전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실제로 25절을 살펴보면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라는 구절을 사용함으로서 다윗이 노년에 이 시를 기록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끔합니다.
이 시편 37편은 분명한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악인이 당할 심판과 의인이 받을 복에 대한 주제입니다. 그래서 이 구조를 살펴보아도 악인은 이러이러 하지만, 의인은 이러이러 할 것이다. 라는 주제가 반복되어 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 주제 안에서도 명확하게 말하고 있는 흐름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제는 11절까지 보았고요. 오늘의 본문은 12절부터 26절까지입니다. 9절에는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라고 기록하였고요. 11절에도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 할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요, 22절에는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요, 내일의 본문인 34절에도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편 37편은 땅을 차지하리라는 약속이 본 시편의 큰 주제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의인은 땅을 차지할 것임을 반복하여 기록함으로써 의인들은 땅을 차지할 것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땅을 차지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속적으로 주셨던 언약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자손의 번성과 땅을 차지하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 언약을 상기하고 기억하는 사상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과 생각 속에 늘 함께하고 있는 것이죠. 가나안을 정복해 가는 과정, 그리고 그들이 외세의 침입으로 인해 땅을 빼앗기는 역사, 그리고 포로기에서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사건 등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시인은 계속해서 의인은 땅을 차지할 것이지만 악인은 멸망할 것이다. 라고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1절과, 22절과 29절, 또 34절도 개역 개정 성경에서는 다 땅을 차지할 것이다. 라고 번역하였는데요. 이 차지하다 라는 번역은 빼앗고 정복하다 라는 어감을 가진 단어입니다. 새번역이나 공동번역도 다 차지하다, 혹은 소유하다 라고 번역하였더라고요. 그런데 영어 성경을 살펴보니까 inherit 라는 상속받다. 물려받다. 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땅을 차지하다. 와 땅을 상속받다. 는 어감이 조금 다르죠. 히브리어 원 단어인 야라쉬 라는 단어도 사실 두 가지 뜻을 다 내포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땅을 상속받는다. 라는 단어가 이스라엘 백성의 정서에 더 잘 어울리는 해석입니다.
땅을 상속받는 것은 상속을 베푸는 이가 있다는 뜻이죠. 이 상속을 베푸는 이는 땅을 먼저 차지하고 있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서 상속자가 되는 뜻도 있지만, 이 시편 37편이 가진 흐름을 보아서는 이 땅을 주시는 이, 상속시켜 주시는 이는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셨던 창세기의 말씀을 보아도 창세기 13장 15절의 기록에도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 약속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아브라함의 자손들, 그 뿌리들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언약이 자신들에게 이루어질 것임을 바라보았던 것이죠.
이 땅을 유업으로 받는 것에 대한 의미는 사실 조금 더 심오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는 것에 대한 의미는 현물로 생긴 부동산을 얻는 것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혹은 우리 할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던 땅 몇 평을 나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셨다. 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 땅을 내가 소유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땅을 유업으로 받는 이가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면 이 땅을 유업으로 받는 것이 단지 소유로서의 유업인지를 묵상하게 만드는데요. 오늘의 37편의 말씀을 살펴보면 땅을 유업으로 받는 이들이 어떤 이들이지에 대해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9절에서는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요. 11절에는 온유한 자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22절에는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9절에는 의인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라고되어 있고 34절에는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는 자가 땅을 차지할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땅이라고 명시하진 않았지만 18절에도 온전한자 정직한 자를 의미하는데요.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업도 사실은 땅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 말씀을 미루어 보았을 때 땅을 유업으로 받는 이들의 특징은 어떠한가요? 여호와를 소망하고, 온유하고 주의 복을 받는 자들이며, 의롭고 정의로운 자들,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땅을 유업으로 받는 이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그래서 독자들은 이 시편을 대할 때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다시 한번 묵상했을 것입니다. 단지 내가 소유해야 할 땅을 소망하고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따르기 위해서 온유함과 정직함으로 온전히 주님을 소망하여 주의 도를 지키는 이들에게 자신의 선조로부터 언약해 주셨던 그 기업이 자신들에게도 유업으로 이어질 것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라는 것이죠.
본문 16절의 말씀을 보아도 이 37편의 의미를 조금 더 정확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만약 단지 땅을 내가 소유하는 의미로서 차지하는 것이 복이라면 의인의 적은 소유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의인은 더 많은 땅을 차지할 것이요. 악인은 그 소유가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시인은 소유로서의 많고 적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가 적더라도, 내가 실제로 내가 가진 부동산이 몇 평인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하는 신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기억하라는 말씀이 오늘의 본문이라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땅을 유업으로 받는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라는 말씀과도 같습니다. 이와 대조되면서 그렇게 살지 않는 이들, 하나님을 소망하지도 아니하고 온유하지도 아니하고, 정직하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의 법과 율례를 따라 살지도 않는 이들은 계속적으로 그들은 끊어질 것이다. 없어질 것이다. 부러질 것이다.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 마음이 온유한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셨던 말씀도 이 땅에서 누리고 소유하는 땅을 말씀하셨던 것이 아니라, 이 또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는 말씀인 것이죠.
이 시가 알파벳 순서로 기록된 시라고 말씀드렸었잖아요. 이유가 암송하기 쉽도록 하기 위함임을 말씀드렸었습니다. 한마디록 암송시, 기억하게 하는 시라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시편 37편을 암송하도록 했던 이유는 그들과 또 그들의 자녀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기 위하여 선택해야 하는 삶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가르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신명기의 말씀에서도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함께 주셨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축복을 선택하는 백성으로 살도록 부름 받은 존재였습니다. 신명기 30장 19절과 20절의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하지만 17절 18절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우리도 생명과 복을 선택하여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기에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하며,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을 암송하기 위해서 알파벳 순서로 만들어서 기억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 말씀을 심비에 새기어 악인으로 살다가 끊어지고 사라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생명과 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꿈꾸는 땅은 어디인가요? 나의 소유의 넉넉함으로 누리는 만족함인가요? 아니면 적은 소유 작은 막벨라 굴일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이 있는 곳인가요?
질문2.
내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하나님의 유업과 은혜를 선택하기 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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