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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군의 느릿느릿

실패, 성공, 승리

by 터틀곽 2022.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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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성공, 승리

(8:29~35)

 

어느새 12월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다니엘 기도회를 하다보니 11월은 정말 화살 같이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날씨도 제법 추워진 것 같습니다. 올 한해도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교회 건축이 5월부터 시작되었죠. 설계부터 생각하면 그 전부터 오랜 시간 동안 건축이 진행되었지만, 우리가 58일 주일에 기공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5월부터 여호수아서를 통해서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벌써 12월이 되었고, 또 우리 교회의 건축도 많이 진행 되었습니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앞으로도 인도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러분은 실패해보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실패라고 하는 단어는 부정적인 어감을 주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실은 잃을 실자를 쓰고요 패는 패배할 패자를 씁니다. 잃어버리고 패배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죠. 인생을 살아가면서 늘 성공만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실패의 경험은 한 번씩은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보통 어떤 도전을 하였을 때 그 도전에 합당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을 실패로 간주하는 일들이 많죠. 저도 여러 실패의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실패의 아이콘 인데요.

 

제가 가장 먼저 도전했던 일이 무언가 생각해보니 자격시험에 낙방했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 오상혁 학생은 자격증 시험도 한 번에 척척 붙고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저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지게차 시험을 보러 가서 예배에 못 온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지금쯤 시험을 보고 있을 겁니다.

 

저는 한글 워드 1, 컴퓨터그래픽운용기능사, 운전면허 1종보통, 태권도 4단 승단 시험에 낙방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중에 재도전하여 취득한 자격증은 운전면허 밖에 없습니다. 워드 1급은 두 번이나 시험을 봤지만 두 번 다 떨어졌습니다. 태권도 4단 승단은 제주도에서 시험을 봤는데 겨루기 때 젊은 친구들의 발차기에 너무 심하게 두들겨 맞아서 다시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학시험에도 낙방했습니다. 공부를 제대로 안 했던 저의 잘못이 가장 크죠. 그래서 저는 재수생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덕분에 자랑스러운 침례교단에 입학하여 우수까진 아니더라도 평균 이상의 적당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된 것은 아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아마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는 연애에도 실패해 봤습니다. 저는 취업에도 실패해봤습니다. 오랜시간동안 아무 곳에서도 저를 받아주지 않아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크고 작은 실패들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실패의 경우는 이런 경우입니다. 호기롭게 시작한 사업이 잘 안될 때라던지, 대입이나 취업에 실패한다던지 등이 우리가 생각하는 실패의 부분이죠.

 

우리가 저번달에 함께 나누었던 본문의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간의 범죄로 인한 아이성 정복의 실패기가 저번 달에 함께 나누었던 말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실패하여 낙담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다시 아이로 나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81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이러한 명령을 들었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일어나 가자! 아이성을 단번에 무찌르자! 라고 생각하였을까요? 물론 여호수아는 3절에 기록된 말씀처럼 즉각적인 순종의 자세를 보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격증 시험에 재도전하는 것도 아니고, 사업에 재도전하는 것도 아니고, 대입 시험이나 취업을 위해서 재도전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무엇을 재도전해야 하는 상황입니까? 아이성을 정복하기 위한 재도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아이성에서는 완전한 실패를 경험했던 곳이기 때문에 ptsd 라고 하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올 것 같은 그러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실패한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입니다. 게다가 그곳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전쟁터라면, 이미 패배한 기억이 있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패를 딛고 일어나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결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아이성을 정복하기에 앞서 두 가지를 명하십니다. 1절에 기록되어 있죠.

 

첫 번째는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 것이며, 두 번째는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는 명령입니다.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것은 여호수아 1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세로부터 지도력을 이양받아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은 여호수아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주셨던 말씀입니다.

 

여호수아 19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죠.

 

내게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아이성 정복에 실패했던 여호수아도 마음이 약해져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지도자로서 가졌던 책임감이 그 누구보다 막중하였기에 아이성 정복을 실패하고 가장 괴로워했을 사람도 아마 여호수아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여호수아를 다시 부르시고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는 말씀을 다시 한번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실 것임을 약속하심과 동시에 새로운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계신 것입니다.

 

칭찬과 격려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도 그렇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서로에게 더욱 따뜻하고 친절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말씀하였고,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 하였습니다. 이 시간 옆에 계신 분을 한번 격려합시다.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도 실패를 경험한 여호수아를 향하여 그에게 격려하시고 새 힘을 불어넣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격려하고 축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군사를 다 거느리고 아이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아이성 전투의 패배를 생각나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아이성을 정복하러 갔을 때 그들이 했던 행동이 7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라고 기록되어 있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아이성을 정복하기 위하여 여호수아에게 준비를 시키시면서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게 하십니다.

 

아이성의 주민이 남녀를 합해서 일만이천명이었다고 825절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래도 모든 군사를 다 데리고 갈만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군사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군사로 뽑힌 이들만을 의미하는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 모든 군사를 거느리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실제 전쟁에서는 3절에 기록된대로 용사 삼만명을 뽑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아이성을 정복하기 위해서 뽑은 군사가 삼천명이었는데 이번에는 그의 열배인 삼만명을 준비시키고 전쟁을 준비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모든 군사를 이끌로 아이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셨을까요? 삼천명으로는 패배했으니까 열배의 더 많은 군사가 필요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렸을때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인간적인 병법이나 군사력으로 전쟁을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죠.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방법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싸우시는 분이심을 여리고 전쟁을 통해서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군사를 일어나게 하사 아이를 향하여 가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에 속한 모든 이들이 하나로 묶인 운명 공동체임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도 하나님은 여호수아 63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번씩 돌되 엿새동안을 그리하라.

 

아이성을 정복하는 방법도 여리고를 정복하는 방법과 시작이 같았습니다. 물론 일하시는 방법은 달랐으나 모든 군사가 참여해야 하는 방법은 같았다는 것이죠. 기드온에게 삼백명만 남기고 다른 이들은 돌려보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는 것이 더 드라마틱한 방법일 수 있는데, 가나안을 정복해 나가는 여정에서는 모든 군사를 부르셔서 그 전쟁에 참여토록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명령을 통해서 모든 인원이 이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 책임감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어느 한 사람도 대충 묻어가거나 뒤에서 관망하는 이가 없도록 모든 군사를 불러 세우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서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전쟁에 임하였던 것이죠. 가나안 정복은 이스라엘이 경험한 다른 전쟁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나안에 자리하고 있는 일곱 개의 족속을 몰아내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우상과 이방 종교의 삶의 방식과 풍습들을 진멸하는 전쟁이라는 점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가나안 정복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모든 군사를 부르셔서 이스라엘과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셨고, 또 실제로 그들을 전쟁에 동참시키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여호수아 84절부터 25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아이를 정복해 나아가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은 여리고를 정복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여리고를 정복할 때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방법으로 여리고를 무너뜨리셨지만, 이제는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치밀하게 작전을 세우고 그 작전대로 아이를 공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81절의 말씀처럼 아이 왕과 백성과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넘겨주었다고는 말씀하셨지만, 여리고의 때와 같이 일하지 아니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전쟁에 실제로 참여시켜서 아이를 정복해 나가도록 하십니다.

 

4절 하반절의 말씀을 보면 다 스스로 준비하라. 라고까지 명령하면서 아이성 전투를 준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후 광야를 거치면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배우는 것은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같은 방법으로 일하지 아니하시고 여러 가지 방법과 상황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여리고 성을 칠일동안 돌아서 여리고가 무너졌던 경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겠죠. 그런데 아이성을 공격할 때는 매복도 해야 하고 유인도 해야하고 직접 전쟁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이와 같은 전쟁의 방법도 하나님의 방법이었음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배웠을 것입니다. 그들의 인생 속에서는 여리고 전쟁과 같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도 하나님을 경험하는 방법이었고, 실제로 수고하여 목숨을 걸고 전쟁에 참여하는 아이성 전투도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나는 이럴 때 이런 방법으로 어려움과 시험을 극복했어. 라는 간증을 종종 듣습니다. 그 방법은 그 사람에게 섭리하신 방법이지 모든 사람에게 유효한 하나님의 섭리는 아닙니다. 은혜가 필요한 이에게는 은혜를 주시고, 시련이 필요한 이에게는 시련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어떤 이에게는 실패를 경험하게도 하시고 또 어떤 이에게는 오랜 기다림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험들이 축적 되어가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하나님의 일하심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죠. 이와 같은 때는 기도해야 할 때이구나, 이 때는 잠잠히 기다려야 하는 때이구나 이 때는 적극적으로 도전해야 하는 때이구나. 라는 믿음의 경험들이 쌓여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여러 상황에서 여러 방법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또 공동체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세심하게 귀 기울여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매일의 순종을 경험하는 방법은 여러 환경과 상황에서 나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단기선교를 준비할 때마다 선교팀이 외치는 구호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아도 될 만큼 준비하고,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될 것처럼 기도하라. 라는 구호였습니다.

 

이 구호를 통해서 어떤 상황과 환경을 마주하던지 우리가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것들을 선포하고, 그럴 수 없는 상황과 환경이 다가온다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그 상황에서 역사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선교를 준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아이성을 정복할 때보다 열 배나 많은 삼만명의 군사를 준비했던 것은 그 실패를 기억하고 자만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만반의 준비를 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밤이 새도록 매복을 하고 유인작전을 사용한 것도 전쟁을 할 때 볼 수 있는 전략 중의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진정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이성과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하여 주셨기 때문임을 81절을 시작하면서 정확하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 우리는 18절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죠.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넘겨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의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그 성읍을 가리키니

 

이 신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총 공세를 펼칩니다. 그리고 26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죠.

 

아이 주민들을 진멸하여 바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어느 장면과 비슷한 장면임이 생각이 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 모세가 지팡이를 든 손을 내밀어 바다를 향하게 하여 바다가 갈라지게 하신 말씀이 기억나실 수도 있고요.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 전투할 때 모세가 지팡이를 손에 잡고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들어 전쟁에서 승리한 말씀이 기억이 나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은 손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고 전쟁에서 승리하기까지 단창을 잡은 그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음을 보게 됩니다.

 

이 행위를 통해 전쟁을 승리케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는 여호수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누구보다 이 전쟁의 선봉에 서고 싶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뒤를 이은 이스라엘을 이끌어야 하는 지도자로 세움 받았지만, 아이성에서 경험한 크나큰 실패와 치욕이 있었기에 직접 전쟁에 참여하여 이것들을 단번에 씻어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그런 마음을 억누르고 모세가 했던 것처럼 손을 들어 이 전쟁을 도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맡은 바의 소임을 완수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아이성을 정복하고 그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패를 경험하게 했던 그 수치를 벗어던지고 아이성을 정복함으로서 다시 성공의 자리를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30절의 말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아이성 전투를 끝낸 여호수아는 에발산에 제단을 쌓습니다. 보통 이런 일이라면 가나안 정복이 끝난 이후에 하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일텐데 여호수아는 전쟁에서 승리하자마자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립니다.

 

아이성 전투는 실패와 성공을 모두 경험한 전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이성 전투를 통해서 죄가 있으면 실패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성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이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패와 성공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몸소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와 같은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큰 성읍이었던 여리고를 정복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방법으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여리고를 눈앞에 두고 모든 남자는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절기를 지켰습니다.

 

여리고를 앞에 두고 행했던 할례와 유월절 행사는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순복의 자세였음을 이전에 함께 나누었었죠.

 

아이성을 정복한 이후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이 시간을 가지면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모든 공동체가 함께 고백하고 있는 것이죠.

 

이후에 여호수아는 율법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33절부터 35절의 말씀입니다.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33절과 35절에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죠. 온 이스라엘과 (이는 이스라엘 성인 남자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보통 이스라엘이 인구점검을 하거나 인구를 셀 때는 성인 남자만 세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을 보면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섰으며 35절에는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는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여자와 아이까지 심지어 그들과 함께 동행하고 있던 거류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 할 때 함께 따라 나온 가난한 외국인들을 의미합니다. 그들까지 모두가 하나님께서 명하신 축복과 저주하는 모든 율법의 말씀을 듣도록 합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하는 축복의 말씀과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저주의 말씀 앞에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그 누구도 예외를 받을 수 없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명기 27장과 28장에 보면 저주의 선포와 축복의 선포 말씀이 등장하는데요. 2711절부터 14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그 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처럼 오늘의 본문 33절에도 언약궤를 맨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받을 축복과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받을 저주에 대해 선포하며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야 하는 제사장 나라로 세움받은 민족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이성을 통해서 실패도 경험했고 성공도 경험하였습니다. 하지만 성공에서 끝나지 아니하고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할 때 참되고 온전한 승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아이성을 정복한 이후에 또 다른 성을 정복하러 달려갔던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멈추어서고 아이성을 바라보며 실패와 성공의 역사가 이루어진 그 현장에서 우리를 승리로 나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집회를 가졌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인생의 여정이 광야 길을 지나갈 때가 있고, 요단을 건널 때도 있으며 실패의 아이성을 만날 때도 있고 성공의 여리고를 경험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하였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으며 성공하였다고 우쭐댈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축복과 승리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공과 승리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확연히 다릅니다. 성공은 살면서 얻을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승리는 최종적인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CCM 가수인 강명식씨의 찬양중에 승리가 무엇인줄 아는가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제가 부르려고 했는데 제가 부르는것보다 직접 듣는게 더 은혜가 될 것같아서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않으며 성공하였다고 교만하지 않고 우리에게 승리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이성을 통하여 실패와 성공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성을 정복하여 크게 이긴 후에 승리를 주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시 서서 하나님의 율법을 들은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속에서 경험되어지는 실패와 성공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승리로 인도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도와주시고 그 승리의 키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복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여 주셔서. 우리의 삶이 날마다 주님과 함께 승리하는 인생이 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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