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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군의 느릿느릿

내 인생의 끝

by 터틀곽 2022.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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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끝

(시편 391~13)

 

오늘의 시편은 개인의 성찰과 기도가 혼합되어 있는 개인적인 탄원시입니다. 그와 동시의 오늘의 시는 슬픔 속에서 절규하는 느낌이 담겨 있는 시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괴로움 속에 몸부림 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전달해주기도 하는데요.

오늘의 시편은 총 세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는 서술이 1~3절 까지기고요. 인간 존재의 무상함에 대한 성찰이 4~6. 그리고 참회의 기도인 7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시를 묵상하다 보면 한 인물이 떠오르게 되는데요. 바로 욥이라는 인물이 떠올려지게 됩니다. 욥은 자신이 왜 고통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절규하였던 인물이죠. 오늘의 본문인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시인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입을 지켜서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혀로 범죄 하지 않기를 다짐하고 있죠. 그래서 입을 다물고 범죄 하지 않기로 작정합니다. 그런데 선한 말도 하지 않고 있죠. 그러자 3절에 기록된대로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는 자신의 상황이 사면에 몰렸을 때입니다. 특히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가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죠. 그런데 그 억울함 속에서 자신의 행위와 변호가 통하지 않을 때, 정말 나의 마음을 아무도 몰라줄 때가 이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것을 선택하는 거죠. 내가 내 입으로 아무리 말해봤자 다른이들이 듣지 않을테니 나는 차라리 말을 하지 않겠다. 내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선한 말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니 근심이 더욱 심하여졌다고 말하고 있죠.

 

욥기 122절에서도 고통당했던 욥이 어떤 고백을 했는지를 우리가 잘 알고 있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라는 욥의 고백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욥처럼 잠잠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근심이 번져 3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합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져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었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뜨거워졌다는 것은 가슴 속 깊은 데서 뜨거운 열기가 치솟고 울화가 치밀어서, 라고 의미하는 것이 더욱 정확한 번역입니다.

 

한국에서 정식으로 명명한 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홧병입니다. 화가 나는 것을 제어하려다가 도리어 자기가 그 화에 잠식되어서 아픈 병이 홧병입니다. 그런데 3절에서도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 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홧병이 나기 일보직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내가 주님께 기도하지 않고는 아뢰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이 시인은 자기의 괴로움을 묵묵히 견뎌내보려고 했지만 그 괴로움이 자신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시인은 자기의 화를 주체할 수 없어서 4절의 말씀에 이렇게 말하고 있죠.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새번역 성경이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기록되어 있는데요. 주님 알려 주십시오. 내 인생의 끝이 언제입니까?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습니까? 나의 일생이 얼마나 덧없이 지나가는 것인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인생의 종말과 연한을 알려주십시오. 라는 번역은 좀 고상해 보이기는 하지만, 시인의 절규는 도대체 이 인생이 언제 끝나는 것입니까? 나는 살아가는 것에 소망이 없습니다. 조금 더 심하게 말하자면, 저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까지 느껴질 수 있는 말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5절부터 6절까지는 계속해서 이런 토로함의 시가 이어집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한 뼘 길이밖에 안 되는 날을 주셨으니, 내 일생이 주님 앞에서는 없는 것이나 같습니다. 진실로 모든 것은 헛되고, 인생의 전성기조차도 한낱 입김에 지나지 않습니다. 셀라걸어다닌다고는 하지만, 그 한평생이 실로 한 오라기 그림자일 뿐, 재산을 늘리는 일조차도 다 허사입니다. 장차 그것을 거두어들일 사람이 누구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고백을 통해서 이 시편이 고통받고 있는 이의 짧은 삶을 토로하는 탄원의 고백임을 깨닫게 되고요. 마지막 13절의 말씀을 통해서도 육체의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자의 고백인것도 발견하게 됩니다.

 

저도 코로나에도 걸려보고 몸살감기도 걸려봤지만 언젠가 나을거라는 소망이 있잖아요. 약먹고 안되면 주사라도 맞고 하면 언젠가는 건강해질거라는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버텨냅니다. 약도 먹고 안되면 주사도 맞고 그래도 안되면 병원에 입원까지라도 해서 병을 이겨내죠.

 

그런데 잘 낫지 않는 병이라면, 그리고 그 병으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저는 가끔씩 내가 암에 걸리면 어떡하지? 큰 병에 걸려서 죽음을 앞에 두고 있다면 어쩌지? 라는 생각을 아주 가끔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야 여러 가지 이유가 있죠. 아프고 싶지 않은데 혹시 아프면 어쩌나 라는 걱정이라던지, 고통받는 이들을 보면서 간접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던지, 남겨질 가족에 대한 걱정 이라던지 이런 일들 때문에 가끔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누군가 실제로 이런 고통과 질병 가운데 있다면 정말 오늘의 본문처럼 괴로움을 쏟아내는 고백들을 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런 아픔과 고통 중에서도 주님을 바라는 고백을 올리고 있는데요. 바로 7절부터 13절까지의 고백을 통해 시인의 고백을 보게 됩니다.

 

7절은 이렇게 시작하죠.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라고 말하면서 나의 소망은 주님 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죠.

 

나아가서 시인은 자신을 죄악 가운데서 건지셔서 우매한 자들이 자신을 욕하지 않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받고있는 고통과 고난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자기의 괴로움을 더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는 이유도 스스로 고난받는 이유가 자신이 범한 죄악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10절의 말씀에서도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죠.

 

11절에는 죄인을 책망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고백하고 있는데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벌하실 때, 그 영화로움이 좀 벌레가 옷을 파먹듯이 삭아버리게 하시니 그 인생이 참 허무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소유하고 누렸던 인생의 영광스러움, 건강함, 아름다움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거두어 가신다면 순식간에 사그라질 것들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이후에 시인은 마지막 12절과 13절의 고백으로 하나님께 나의 기도를 들으시기를 간곡히 간청하고 있습니다. 기도와 부르짖음에 귀 기울여 주시고 눈물 흘릴 때 잠잠하지 마시기를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이 오기 전에 자신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비록 고통중에 신음하고 있을지라도, 또 스스로 하나님 앞에 범죄 하여 이러한 고난이 자신에게 찾아왔음을 자각함에도,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음을 시인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714절에는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우리의 범죄함을 반드시 육체의 질병으로 되 갚으시는 하나님은 아니시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힘쓰기 위해 더욱 죄에서 떠나고,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때로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아픔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또 우리가 범죄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돌아보시고 우리를 싸매어 주시고 치료하여 주시는 하나님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날 수가 짧은 한 뼘과도 같고 한숨과도 같은 짧은 생애이지만 우리의 소망을 여전히 주님께 두며 주님의 은혜를 하루 하루 구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소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질문1.

육체의 질병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나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질문2.

내가 범한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징벌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 상황에서 회개하고 나를 회복시키셨던 은혜를 경험한 적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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