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
창 (1:24~2:3)
이번 8월달은 창세기를 묵상하게 됩니다. 1일인 월요일부터 1장 1절로 시작해서 오늘의 본문은 창조기사 중 땅의 생물을 만드신 내용이 24절부터 26절까지 기록되어 있고요. 26절부터는 사람의 창조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고, 2장에서는 안식하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창조와 관련된 이 말씀은 깊이 묵상할수록 참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묵상할 수 있는 구절이라고 생각됩니다.
창조기사를 살펴보면 날짜 순서대로 창조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이 날이 우리가 생각하는 24시간을 하루로 보는 그런 하루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문자적인 하루로 볼 수만은 없습니다. 창조기사를 과학적으로 풀어내려고 하는 시도와 연구들도 있지만 이 창조의 세계는 하나님의 광활하신 신적 능력과 신비를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록된 창조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믿음의 영역으로 바라보고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조기사에서 말하고자 하는 중요한 의미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등장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천지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우리가 신앙하고 바라보아야 할 절대적인 대상이심을 드러냅니다. 한 하나님 유일신 사상은 창조의 능력만으로도 얼마든지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되심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창조기사는 천지의 질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창조기사를 살펴보면 창조의 순서가 질서 있게 개진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먼저 빛을 창조하셔서 이 빛을 통해 혼돈하고 공허한 무질서한 상황을 정돈하시고 질서를 세워가심을 보게 됩니다. 이 빛은 빛나는 광명체를 의미하기보다는 진리를 드러내고, 의로움을 드러내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이 빛의 창조입니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물과 물을 나누십니다. 가운데 궁창이라고 하는 하늘을 만드셔서 하늘 아래의 물과 하늘 위의 물로 나누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물은 모든 생명력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고대 중동의 세계관에 따르면 하늘 위에 물을 모아 둔 것을 통해서 비구름이 생겨난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중동 뿐만 아니라 고대에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 기록된 초기 기록물에는 하늘 위에 물주머니가 있었을 것이라고 믿어왔던 문헌들이 많이 등장하죠.
셋째 날에는 물과 물이 나뉘고 이제 땅이 드러납니다. 땅에는 식물을 자라게 하셔서 씨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자라게 하십니다. 그렇게 둘쨋날이 마치고
넷 째날에는 광명체를 창조하십니다. 이 광명체를 창조하시면서 낮과 밤이 생기고,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광명체가 하늘의 궁창에 떠 있게 하시는데요 대표적으로 해와 달을 의미합니다.
이 넷째날에 창조하신 광명체를 통하여 시간의 개념이 생깁니다. 하루의 날이 정해지고 달과 년수가 정해지고, 그 시기마다 불어오는 바람과, 자연의 법칙이 생겨나게 됩니다.
다섯째 날에는 물 안에서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고 하시고, 하늘에는 새가 날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인 여섯째 날에 동물과 사람을 만드십니다.
창조기사를 살펴보면 이 창조가 짝을 이루고 조화를 이루면서 창조된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첫째날과 넷쨋날이 조화를 이루고 둘째날과 다섯째날 그리고 셋째날과 여섯째 날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첫째날은 빛을 창조하시고 넷째날은 광명체를 만드시죠. 이 두 날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둘째날은 궁창을 만드시고 물과 물을 나누시고 다섯째 날은 바다 짐승과, 하늘에 나는 새를 창조하심으로 질서와 조화를 이루십니다. 셋째날에는 뭍이 드러내게 하시고 각종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만드시고 여섯째 날에 동물과 인간을 만드십니다.
동물을 먼저 만들고 식물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을 준비하시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시고 그 이후에 그 준비된 것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를 이후에 창조하셨던 것이죠.
이 사실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이 세계를 얼마나 섬세하게 준비하셨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은 가장 마지막에 기존의 창조의 방법과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인류를 창조하십니다.
기존의 창조의 방법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언어가 말씀이 능력이 되어 창조가 이루어진 것이죠. 여섯째날 까지는 그렇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오늘의 본문인 26절에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시는데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의지가 발현됩니다. 기존에 다른 것들을 창조하실 때는 무엇을 만들자. 어떤 어떤 것을 하자. 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저 명령하시죠. 빛이 있으라. 라고 명령하시고 물과 물로 나뉘라 명령하시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고 열매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고 광명체가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등등 하나님은 그저 명하십니다. 명령하신거에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어떤 명령을 통해 창조하지 않으십니다. 기존의 천지만물과 똑같은 방법으로 창조를 이루시려 하셨다면, 인간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창조하셨으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26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 라고 하는 장엄하고도 위엄찬 선포는 하나님의 존재가 어떤 관계안에 계심을 드러내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 관계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깊은 교제와 사랑의 관계임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삼위로 계시면서 서로 이 창조의 능력 안에서 서로 연합하여 이 일을 이루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계시적으로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틀은 구속사입니다. 성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여러 가지 관점을 가지고서 성경을 볼 수 있는데요. 그중에 가장 하나님의 의도를 밝히 드러낸 것, 모든 성경을 한가지 주제로 통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구속사적인 관점입니다. 이 구속사는 구원역사라고도 하는데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든 행위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준비와 실행과 완성에 이르는 전개를 말하는 것이 이 구속사입니다.
그런데 이 창조기사도 구속사의 눈으로 보게 된다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전지하심이 창조의 시작과 끝을 통달하시는 능력임을 믿음으로 고백한다면, 이 말씀도 구속사적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 전에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을 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또한 구속사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구절이기도 하죠.
이미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은 창조와 인류의 타락과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과 마지막 날 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의 본문 26절을 바라볼 때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 라고 하심에 있어서 인류를 창조하시지만 이 인류가 타락하고 죄가운데 거하지만 이들을 심판하고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실 것과 그 아들의 희생과 순종으로 다시금 인류를 새로운 창조로 이끌어가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미 이 안에 담겨져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에 삼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순종하는 관계 안에서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도 창조합니다.
이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본래의 목적과 만들어진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죠. 인간을 창조하기전에 진행된 모든 창조의 발현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계획이었습니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의 기는 모든 것을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 다스림의 의미는 28절에도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라고 하십니다.
정복하고 다스림의 의미는 통치를 의미합니다. 질서를 세우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던 이 창조의 세계를 잘 가꾸고 통치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할 파수꾼의 역할 청지기의 역할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이 땅에 왕처럼 군림하라는 것이 아니라 잘 다스리고 가꾸라는 말씀이 인간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인류의 창조는 그 창조된 이유가 분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 안에 하나님의 질서를 세워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조는 하나님이 하셨지만 그 창조의 작품은 인간에게 맡기시고 그 창조의 세계 안에 하나님의 통치를 불어넣게 하는 것 하나님의 생기가 임한 인간만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창조기사가 쓰여진 의미와 의도가 여기에 담겨져 있습니다. 실제로 이것이 과학적으로 창조의 순서가 어떻고 창조에서 진화가 나타난 의도는 무엇이고 이것을 파악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드러내는 이 창조의 모든 세계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잘 가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대표자인 아담은 또 하와는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죄를 범하여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이 말씀은 아담이 불순종해서 에덴에서 쫓겨나고 죄인이 되었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죄는 불순종은 인간이 가진 창조목적을 상실한 인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빛을 잃어버린 인간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창조가 이루어져야 할 에덴에서 쫓겨나 땅을 갈고 땀을 흘려 일하지만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죽은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어야 할 목적을 잃어버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이 범죄 한 아담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 2장1절과 2절에는 안식일이 등장합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고, 하나님께서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구별하셨다는 것이죠.
안식은 일의 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완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온전함을 이루신 것이죠.
이 구별된 날을 통해 인간은 하나님을 묵상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어떻게 창조하셨고 나를 어떻게 지으셨는지를 기억하는 날인 것이죠. 이 날을 거룩하게 할 때 구별하여 기억할 때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와 목적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범죄 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에서 쫓겨나 영원한 죽음 가운데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흙으로 왔으니 평생 흙을 갈다가 결국 흙으로 돌아갈 비참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다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셔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재창조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를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롭게 하신 것이죠. 이제 새로워진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했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다시 죄를 짓지 않는 것? 맞습니다. 열심히 예배하고 전도하는 것도 맞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도 맞습니다. 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보았던 26절의 말씀 모든 것을 다스리는 것, 단지 창조된 세계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내 삶과 모든 세계 위에 온전히 임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의 목적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을 때에 가장 온전하고 빛이 납니다. 삶의 목적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모든 피조세계 안에서 우리를 특별하게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시고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이땅에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셨던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부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찬양하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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