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그대 잊지 말아요
(수 4:1~3)
사람마다 잊혀지지 않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날들은 기념일로 지정해 놓고 기념하기도 하죠. 가끔 연인 사이에서 혹은 부부 사이에서 여성분들이 남자들에게 오늘 무슨날인지 알지? 라고 하면 보통 남자들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생각해 내려고 애를 씁니다. 정말 왠만 해서는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을 잊어버리진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 아니라면, 식은땀이 흐르죠. 오늘이 정말 무슨 날이지? 언제 말했는데 잊었던가? 합니다.
맞추면 평안이 틀리면 괴로움이 찾아오게 됩니다.
꼭 연인들이 아니어도 개인적으로 잊지 못하는 일들이 있기도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정말 잊지 못하는 날이 언제인가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잊혀지지 않는 세 가지 사건이 기억이 납니다. 시간의 역순으로 말씀드리려고 하는데요. 결혼식은 빼겠습니다. 너무 당연한 건 별로 재미가 없잖아요.
그중에 첫 번째로 또렷이 기억이 나는 날은 신학교 합격자 발표의 순간의 날이었습니다. 그때가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 일을 하면서 수능 공부를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요. 수시모집에 원서를 넣고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합격자 발표를 확인하고 합격했을 때가 참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 일하던 사무실에서 혼자있을 때 확인을 했었는데 합격한 것을 확인하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고 할렐루야! 라고 외쳤던 때를 잊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군대에 훈령병으로 입소할 때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21살의 꽃다운 나이에 군대라는 곳에 가게 되었는데요. 제가 군 생활 할 때만 해도 욕설과 구타가 용인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논산 훈련소에가서 연병장에서 부모님께 대하여 경례를 한 다음 부대 안으로 들어가 앞에서 정열을 시키더니 갑자기 욕설이 들려오면서 눈깔어! 고개숙여! 하는데 그때 아 내가 군대에 왔구나! 라는 사실을 느꼈던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문방구 앞에 뽑기 기계가 있었는데요. 드륵 드륵 돌려서 나오는 뽑기 기계가 아니라 어떻게 조작을 하면 동그란 메달이 나오는 기계였습니다. 메달 1개가 백원 정도의 가치를 하는 메달이었어요. 그래서 그 메달을 모아서 가면 1개를 가져다주면 땅콩 카라멜을, 5개를 모으면 지우개 10개면 좀 더 비싼 물품 30개 이상 모으면 미니카 같은 고급 장난감으로 바꿀 수 있는 그런 뽑기 기계였는데요. 그때 머리가 비상한 제 친구가 십원 짜리 동전을 돌에다가 앞뒤로 잘 갈면 메달로 인식을 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거친 돌바닥에 십원짜리를 앞뒤로 정성스럽게 갈아서 뽑기에 넣고 메달을 뽑곤 했는데요. 그날도 문방구 주인 아저씨의 눈을 피해서 아이들이 신나게 메달을 털어가고 이제 제 차례가 되어서 잘 갈은 10원짜리를 뽑기 기계에 넣었는데 뒷통수가 화끈거려 뒤를 쳐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딱 걸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귀를 잡힌채로 끌려나와 뽑기 기계 옆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있었는데요.
공교롭게도 그날이 제가 학급임원으로 당선된 날이어서 정말 잊을 수가 없는 날입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그날의 날씨와 온도와 공기와 분위기가 느껴지는 그때가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들도 인생 속에서 잊지 못할만한 그런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분명히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날을 기념일로 삼지는 않습니다. 곽승환 대학합격 기념일 이라던지, 곽승환 군입대 기념일 이라던지, 곽승환 뽑기로 기술쓰다 걸린 기념일 이라던지 할 수는 없죠.
하지만 국가적인 기념일은 좀 느낌이 다릅니다. 대한민국은 일제의 억압에서 독립한 8.15 광복절 이라던지, 3.1 만세 운동이 있었던 삼일절 이라던지, 국가의 법을 제정한 날인 제헌절 이라던지, 한글 창제를 기념하는 한글날 이라던지 이런 날들을 특별한 날로 정해서 그날을 기념합니다.
이러한 날들을 기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떤 사건들이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있었는지를 기념함으로 인해서 그날에 겪었던 환희와 기쁨의 순간들을, 혹은 고통과 아픔의 날들을 기억하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기 위함에 그렇습니다.
제 얘기를 하느라 서론이 좀 길어졌는데요. 우리가 6월에는 여호수아 3장의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넌 사건에 대해서 살펴보았죠.
오늘의 본문은 요단강을 건넌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사건이 기록된 본문입니다.
이제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기를 마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백성의 각 지파 마다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뽑아서 다시 요단 가운데로 돌아가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두 개를 가져다가 오늘 밤 너희가 머무를 곳에 두라고 명하십니다.
그러자 택함 받은 열두명이 요단강 가운데로 들어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수대로 돌을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고 나오죠. 왜 이러한 일을 행했는지 그 이유는 6절과 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이 말씀은 21절부터 23절에 동일하게 한 번 더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넌 후 다시 돌아가 마른 땅에서 12개의 돌을 들고 온 이유는 그들의 자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러한 놀라운 일을 행하셨음을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아빠, 엄마 이 돌은 뭐에요. 왜 이곳에 돌 열두개가 이렇게 세워져 있어요? 라고 물으면 응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주실 때 넘실거리던 요단강물이 있었는데 그 강물을 마르게 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으로 이 강을 건넜단다. 그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 돌을 세워서 기억하는거야. 그러니 아무개야. 너도 무슨 일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면서 살아야 한단다. 우리 민족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너의 삶을 인도하여 주실거야.
라고 말해 주어야 할 책무를 맡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손 대대로 이 기념비적인 사건을 기억하고 전승하였던 것입니다.
요즘 한국 기독교 안에서 툭하면 언급되는 것이 다음 세대입니다. 다음 세대란 말이 어떤 유행어처럼 야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언급되는 것이 다음 세대 위기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 교회와 기독교는 희망이 없어질 것이다. 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서는 여러 이유를 가지고 진단합니다. 저출산의 문제가 있다. 예전에는 교회가 문화를 주도했는데 그 주도권을 세상에 빼앗겨서 그렇다. 교회보다 재밌는 곳이 더 많아져서 그렇다. 피씨방과 스마트폰 때문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진화론과 과학을 가르치고 종교행사를 하지 못하도록 해서 그렇다. 등등 이유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위의 문제들 때문에 교회에 주일학교와 청소년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을까요?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고 생각은 듭니다만, 위의 문제들이 가장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문제는 지금 우리가 갑자기 직면한 문제들이 아니라 이전에도 이와 같은 문제들은 늘 야기되던 문제였습니다.
당장 내일부터 청소년 아이들이 2박3일간 수련회를 가고요. 청년들도 수련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2000년대 후반부터 사역을 해오면서 경험한 것들이 있는데요. 아이들에게 수련회 가자고 하면 못 간다고 하는 아이들 중에 대부분의 이유가 엄마가 학원 빠지지 말래요.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보면 부모님이 집사님이고 장로님이에요. 그래서 꼭 좀 보내주십사 라고 말씀을 드리면 요즘 성적이 너무 떨어져서 이번에는 보내기가 좀 어려울 것 같다. 겨울에 수련회가 있으면 꼭 보내겠다. 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겨울에 가자고 말씀드리면 이번에는 영어캠프를 보내야 해서 못 보내겠다고 하시기도 합니다.
수련회 가는 아이들에게도 은혜 많이 받고와라 라고 말하기 보다는 너 갔다와서 공부 열심히 해라. 노는건 이번이 마지막이다. 라고 하면서 겨우 수련회를 보내는 부모님들도 많이 계셨죠.
우리 한국에 가장 큰 4대 종교가 있는데 아십니까? 기독교, 불교, 천주교, 대학교입니다. 오죽하면 11월이 되면 수능을 위한 기도회가 생깁니다. 이 수능을 위한 기도회에 참석한 부모님들은 기도회에서 어떤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할까요. 우리 자녀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썩어지는 밀알이 되도록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기도할까요? 물론 기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기도하는 의도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내 만족의 수단으로 삼으려고 하는 죄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한국교회에 신드롬처럼 불었던 사건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다니엘 학습법이라는 책인데요. 이게 정말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분이 쓰셨다는 책인데요. 책의 내용이 잘못 되었다던지. 저자의 사상이 문제가 있다던지 하는 것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분이 정말 눈코뜰새 없이 각 교회로 불려다니면서 강연을 하고 책도 팔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목사님이 되셔서 ‘전광훈’ 이라는 유명한 분과 함께 다니시는 것 같은데 서울대 나오는 것이 다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책이 2007년도에 나온 책인데요. 제가 신학교 입학했을 때 발간된 책입니다. 제가 10년만 젊게 태어나서 고등학생 때 저 책을 읽었다면 서울대학교에 갔을까요? 제가 절 잘 아는데요 아마 못 갔을 확률이 아주 조금 높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왜 교계에서 이분이 인기가 있었을까요? 일단 서울대 그리고 수석 졸업, 그리고 성경에 등장하는 총리 다니엘에 대한 표면적인 이해. 이 세 가지가 잘 맞아 떨어진 것이죠.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도 저 강사님처럼 공부를 잘해서 우리나라의 최고의 대학이라는 서울대에 갈까? 하는 목적에 대부분의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 다니엘처럼 자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보다. 공부를 잘 해서 서울대학에 갈 수 있다면, 자녀의 학습적인 부분도 신앙의 힘으로 커버할 수 있다면 이라는 생각이 아마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는 정말 교회에 아이들이 출석만 해줘도 너무나 감사하고 감지덕지 한 그런 분위기가 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 교회에는 그런 분들이 없으시죠. 다 어떻게 하면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양육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애쓰고 노력하시는 분들이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쉽지가 않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을 가져오라고 명령합니다. 돌 자체에 무슨 효혐이 있기에 돌을 가지고 오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 돌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그 돌이 어디서 왔는가를 기억할 때 그 돌에 의미가 생깁니다.
그 돌이 있던 곳은 바로 요단강 한가운데 제사장의 발이 서 있던 곳입니다.
기적의 현장 곧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셨던 그 현장 한가운데서 취한 돌이기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 장소에 방문할 때마다 세워진 12개의 돌을 바라보며 자녀들의 질문에 이 돌의 의미를 설명했을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출애굽기 12장 25~27절에도 등장합니다.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바로 유월절과 무교절의 절기에 대해서 너희의 자녀들이 물을 때 이렇게 대답하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쉐마 이스라엘’ 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고백 중 가장 근간이 되는 가르침이 기록된 신명기 6장 20절 이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증거와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의 언약이 그들의 자손과 자손에게 대대로 이어져 내려가야 함을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서 기억하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선택하셔서 그 민족을 통해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시는 방법 중에 하나로 선택하신 방법이 그들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을 신앙을 유업으로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러한 방법을 선택하셨을까요?
유월절이라는 절기를 만들고, 길갈에 돌을 세우고, 쉐마라고 하는 이스라엘을 가르칠 지침서를 만들 때 왜 후손에게 이러한 일들을 기억하게 하고 가르치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오늘의 본문의 말씀인 여호수아 4장 가장 마지막 절인 24절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이 땅에 있는 모든 백성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떤 능력의 하나님이신지를 알게 하며, 또한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항상 경외할 수 있는 길은 그들이 생활하는 모든 반경 안에서 하나님을 신앙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집회로 모일 때, 이런 특별한 사건이 있었을 때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본이 되는 가정 안에서, 정서적으로 가장 안정과 평안을 누리는 가족 안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돌을 바라볼 때마다 아 하나님이 요단강의 물을 마르게 하셨어. 그의 자손과 자손들에게 옛날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애굽이란 곳에서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모세와 여호수아라는 지도자를 통해서 탈출하였는데 그때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이 홍해도 가르시고 이 요단강의 물도 마르게 하셨대 이 돌이 그 강에서 가져온 돌이야. 할아버지가 직접 이 돌을 옮기셨다고 아빠에게 말해줬어. 그러니까 너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겨낼 수 있어. 아빠가 믿는 하나님이, 또 할아버지가 믿었던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셨어.
이제 너가 커서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아빠가 되면 아빠와 너가 믿은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도록 잘 가르쳐야 한다. 라고 가르쳐 왔을 것입니다.
이 돌들이 오늘날 까지 그 자리에 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 길갈 지역에 이 돌이 지금도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그 돌의 터 라고 해놓은 곳이 몇 군대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돌이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이 세운 돌들인지 아니면 기념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돌인지 확실하게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었고, 이 기록된 말씀을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역사적인 사실을 넘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고백으로 드려지는 믿음의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말씀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혹 어떤 분들이 전도사님이 애들 시험 기간에 예배 빠지지 말라고 하고, 방학에 학원 보충 빠지고 수련회 가라고 해서 아이들 성적 떨어지고 좋은 대학 못가면 전도사님이 책임질거에요? 라고 물어보신다면, 네 저는 책임질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도 책임질 수 없듯이 하나님도 그의 자녀를 책임지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반드시 인생의 역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내 능력 너머의 큰 산을 언젠가는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그 역경을 만나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부모로서 해답을 줄 수 없는 시기가 언젠가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부모의 품에서 떠나 독립하여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날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 어려움을 우리의 자녀들이 직면할 때, 우리가 부모로서 그 문제의 해답을 찾아주거나 도움을 줄 수 없을 때, 그들이 스스로 그 어려움과 고난을 돌파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가 반드시 오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자녀들이 무엇으로 이 고난을 돌파해 나갈 수 있을까요?
세상의 술수와 권모를 가지고 나아가도록 해야 할까요? 술 한잔에 모든 것을 잊고 털어버리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겨주어야 할까요?
그때 지난주에 설교를 들었던 우리의 자녀들은 이 말씀을 기억할 것입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제관아, 준범아 기억나지?
그렇기에 우리의 삶에는 믿음으로 경험되어진 열두 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으로 간증 되는 은혜의 기념비가 우리 가정 안에 세워져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우리 가정에 베풀어주신 은총을 날마다 노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부모님의 언어와 생활 방식이 신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세상의 방식과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주일만 교회에 가는 모습이라면 그것이 우리 자녀들이 이해하는 부모님의 신앙생활 이라면, 자녀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가르쳐주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용서하는 방법, 사랑하는 법, 품어주는 방법, 긍휼히 여기는 방법, 연약한 이들을 도와주는 방법, 믿음의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 등
이 세상의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는 것을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우리의 삶에 더욱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또 새겨지게 하는 것이 믿음의 부모로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라는 것이죠.
본문 9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
먼저는 제사장의 발이 선 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가져다가 유숙할 곳에 두었고, 또 요단 가운데에서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그곳에도 돌 열둘을 세웁니다.
둘은 두 군데에 세워져 있죠. 뭍에 하나, 또 강물 속에 하나를 세웁니다. 그런데 이 요단강 가운데 세운 돌은 제사장이 언약궤를 메고 올라가면 다시 강물이 흘러서 그 돌들이 보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곳에 왜 이 똑같이 열 두개의 돌을 세웠을까요? 그것은 강물이 말랐을 때 그곳에 세워진 돌을 보면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날마다 평탄하고 온전한 길을 걸어가면 참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은혜가 고갈되고 가뭄이 임한 논바닥처럼 우리의 영혼에 생기가 사라질 때도 찾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말라버린 그 강가에 세워진 돌들이 강물에 잠겨 보이지 않더라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듯이 우리의 삶에 은혜가 마르더라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의 삶에 어려움을 마주할 때 우리가 해결하는 방법을 우리 자녀들이 보고 배울 것입니다. 고난과 어려움을 통과할 때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그 입술과 행동을 자녀들이 볼 것입니다. 그렇게 매사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기를 힘썼던 모습을 아이들이 기억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념하는 것은 다시 말해서 기억하는 것입니다. 기억하는 것은 반복적인 교육과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로 세워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들을 만나주시고 그 영혼을 새롭게 하시기를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이후 자녀가 장성하여 우리의 곁을 떠나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때 이제 그들의 삶을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참 자녀만큼은 부모의 바람대로 성장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미 자녀가 부모의 마음대로 자라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자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인 것이죠. 부모는 자녀가 잘 성장하도록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두신 손님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후 자녀의 신앙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이루어 가도록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참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른 가치관과 인격을 가지도록 양육하는 것도 어렵지만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신앙을 물려주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말씀드렸지만 자녀가 부모의 바람대로 성장하지 않는 것이 원래 정상인 것 같습니다. 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성장했다면 다 서울대 가고 다 취업도 잘하고 다 결혼도 잘해서 다 건강하게 다 행복하게 살았을 건데 사실 그렇지 않은 것이 우리 인생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부모님의 바람만큼 못 살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우리는 신앙의 유업을 물려주기를 힘쓰고, 또 성장한 자녀가 그 유업을 귀한 것으로 여길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하고 주님께 맡겨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7절의 말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요단의 물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끊어진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습니다. 이 말씀은 요단 강물이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끊어졌다면, 아 우리 선조는 그런 체험을 했었구나, 에서 끝났을 것이지만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기에 그 자손들이 언약궤와 함께 있는 한 그 체험이 곧 자기들의 체험이 될 것입니다. 요단의 물 뿐만 아니라 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오라가족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삶에 세워진 열두개의 돌과 같은 영적인 기념비가 있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에게 들려주고 물려주어야 할 하나님과의 깊은 사랑과 은혜가 우리 안에 있습니까? 우리의 삶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나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 위에도 하나님과의 동행함이 임하기를 소원하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요단의 물을 마르게 하신 하나님, 그 마른 땅에서 언약궤 아래에 있는 열두개의 돌을 취하여 기념비로 세우게 하시고 자녀들이 이 돌들이 무엇이냐 물을 때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가르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는 그들과 함께하시는 은혜가 자손 대대로 임하실 것을 기억하게 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음을 함께 보았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유업으로 물려주기를 기뻐하게 하시고,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이 신앙의 유업을 가치있게 여기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주셔서,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과 평안을 맛보는 자녀들로 세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교회 건축가운데도 함께 하시고 새로운 땅에서 우리 자녀들이 마음껏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처소 되도록 은혜로 함께 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담임목사님의 영육을 건강하게 붙들어 주시고, 코로나 확진으로 함께 예배하지 못한 우리의 지체들과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속히 회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을오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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