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질문
(사무엘하 5:13~25)
가끔 소원이가 학교가기 싫거나, 공부하기 싫을 때 이런 얘기를 종종합니다. 아~ 아빠는 좋겠다. 공부도 안 하고 학교도 안 가고 야구 보고 싶으면 야구 보고라고 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아빠도 어려워. 아빠도 공부해. 아빠도 돈 버느라 힘들어. 라고 말하면서 제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호합니다. 그러면 소원이가 또 묻는데요. 아빠 어른이 되면 좋지요?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라고 말합니다. 아직은 어려서 성인이 사회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하는 말인 것을 알기에 웃으면서 너희가 크면 알게 될 거야. 지금이 좋은거야. 라고 대답해줍니다.
여기에 계신 어른 여러분.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아내시느라 힘드십니까. 제가 심심한 위로를 대신하여 전해드립니다.
그런데 저도 생각해보면 십대 때, 특히 중고등 학생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었습니다. 어른이 된다기보단, 법적 성인의 나이가 되고 싶었던 것이죠. 뭐 딱히 큰 이유는 없었는데요. 그저 빨리 성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성인이 되면 하고 싶은걸 마음대로 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을 저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성인이 되고 나서 엄청난 일탈을 즐기거나 향락과 쾌락적인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성인이 된 것이 꼭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생각을 가지고 혹시나 타임머신을 타게 되어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저의 어린시절처럼, 혹은 소원이처럼 그런 질문과 궁금증들을 여전히 가지고 살아갈까요? 아마 아니겠죠.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진 궁금증과 질문들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잘 질문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질문하지 않고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삶을 통달한 것도 아니고, 어른이 되면 척척박사가 되어서 궁금한 것들이 다 사라져버리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느샌가 내가 마주한 삶의 문제들 앞에서 질문하지 않고 궁금하게 여기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됩니다.
왜 우리는 질문하지 않고 살아갈까요? 개인적인 이유도 있고 사회적인 이유도 있습니다만 가장 큰 이유는 질문한다는 것이 기존의 방식과 틀을 깨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말꼬리 잡기 놀이처럼 왜요? 왜 그런건데요? 이유를 말해주면 그 이유에 대해서도 계속 질문합니다. 자신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을 때까지 질문을 하죠.
이와 같은 형식을 거치면서 그 아이의 세계관이 정립되고, 가치관이 형성되는 거죠. 그런데 성인이 된 이후에는, 그리고 삶을 어느정도 살아본 이후에는 기존의 방식과 틀 안에서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안정적이기 때문이죠. 안정적인 삶의 방식을 벗어나는 것이 불편하고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서 중간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죠.
저도 좀 그런 것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진 않지만, 안정적인 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좀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본문을 읽긴 했는데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서론이 길면 본론과 결론이 짧다는 즐거운 사실을 잘 알고 계시죠?
오늘의 본문은 다윗이 왕이 된 이후의 일어난 첫 번째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 장입니다. 물론 이미 유다에서는 헤브론 지역에서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살아있을 때까지는 이스라엘과 유다 민족이 통합되지는 않았었죠. 그러다가 이스보셋이 죽임을 당하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다윗을 찾아와 우리가 원래 한 민족 아닙니까 라고 말하며 다윗이 모든 이스라엘 지파의 왕이 되어주기를 간청합니다. 그리고 통합된 이스라엘 민족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여기까지가 5장 상반부의 내용이죠.
그리고 오늘의 본문의 내용이 통합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첫 번째 행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처첩이 많아지고 자녀들이 많아졌다는 것으로 시작되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윗 가문을 축복하고 계심을 다시 한번 드러냅니다.
월요일에도 잠시 나누었지만, 고대 사회에서 자녀가 많이 태어난다는 것은 그 가문이 번성하고 축복 받았음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3장에도 여섯명의 아내와 여섯명의 자녀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오늘도 자녀들의 이름이 열거 되면서 다윗 가문에 얼마나 많은 자녀들이 태어나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붙드시는 주님께서 다윗의 가문에 엄청난 축복을 부어주고 있음을 드러내는 본문이죠.
그리고 그 이후에 다윗이 통합된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 되었다는 소식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전하여 집니다. 그러자 블레셋은 군대를 모아서 다윗을 잡기 위해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칩니다.
이후 19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죠.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라고 묻습니다.
지금 상황이 무슨 상황인가요? 전시상황이죠. 우리도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늘 전쟁의 위협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의 상황으로 치자면 북한이 이제 38선을 넘어서 진격하기 위해서 군대를 모으고 비무장 지대에 침투하여 와서 전쟁을 막 일으키려고 하는 그런 실제적인 움직임을 보인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군대용어로 진돗개 1호를 발령해야 합니다. 이것은 전면전 돌입 직전의 심각한 상태를 말하는데요. 군,경,예비군등 모든 작전 병력이 즉각 출동해서 전투 태새를 갖추는 단계가 바로 진돗개 하나입니다.
블레셋이 전쟁을 걸기 위해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이제 왕이 된 다윗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대 민족만의 왕이 아니라 이제는 통합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첫 번째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뿐만 아니라 다윗에게도 지금 이 상황을 통해서 다윗이 얼마나 지도력이 있는지, 얼마나 뛰어난 왕인지를 시험해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시기이며, 그 지도력을 평가받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까지 살면서 정말 질린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의 손으로 세웠던 첫 번째 왕인 사울의 실패, 그리고 허망하게 죽임을 당한 군대장관인 아브넬의 죽음과 이스보셋의 죽음을 계속해서 경험하면서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 앞에서 자신의 지도력을 각인시킬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 앞에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다윗은 거기서 자신의 지도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전시 상황이면 급박하게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을 계수하고, 작전을 짜고 군대를 정비하여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한 나라의 지도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뭐 지금이야 전쟁이 속도전이고 화력전을 통해서 판가름이 나지만, 고대 사회의 전쟁은 그야말로 너나 나나 치고 박고 싸워서 누가 이기냐는 대부분 육탄전이기 때문에 머릿수가 많고 먼저 때리는 사람이 이기는 전쟁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미 블레셋과 수차례 전쟁을 치러본 기억이 있을뿐더러 그들의 포피를 200개나 베어낸 인물이 아닙니까? 누구보다 수월하게 용기 있게 지도력있게 블레셋과의 전쟁을 준비해서 승리했을 수 있을만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을 보면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신앙적인 행위를 합니다. 기도하는 것이죠. 주님께 묻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블레셋을 칠까요? 제게 승리를 주실 것입니까? 라고 묻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주님은 그렇게 해라. 반드시 너의 손에 블레셋 사람들을 넘기겠다. 라고 응답하십니다. 다윗은 그리고서야 올라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쳐부숩니다. 그런데 22절에 보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를 또 메웠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미 승리한 기억이 있지 않습니까? 어쭈? 또 올라왔네? 아직 정신을 못차렸네? 하면서 전쟁을 다시 일으킬법도 한데, 이번에도 다윗은 또 다시 기도합니다. 그러자 23절이죠.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라. 그리고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기습을 하여라. 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알려주십니다.
그러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였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무찔렀음이 오늘의 성경 본문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누구보다 훌륭한 믿음의 사람인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다윗이 그렇게 믿음의 사람으로서 살아오며 성경에 기록되었는지는 깊이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든지 힘이 있고 의사를 표현할 만한 위치, 곧 왕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하나님 앞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주님의 개입하심과 은혜를 간구했던 인물이었습니다.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것은 성령의 감동하심과 능력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다윗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질문 했을 때, 하나님께서 다윗을 향해서 너는 블레셋을 공격하지 말아라. 라고 말씀하셨다면 제 생각이지만 다윗은 멈추어 섰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멈춤은 실제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능력이 없어서 못하기 때문에 멈춘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하나님 앞에 순종한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어떤 능력이 우리에게 있을 때 그 능력을 발휘하거나 결정을 내릴 때의 모습은 어떤가요? 우리는 대부분 나의 의사와 의지를 가지고, 또 나의 경험과 판단을 가지고 그 일을 결정합니다. 내가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넉넉한 감당할 만한 문제이고 상대니까, 라고 여기면서 그 일을 대하는 것이죠. 물론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우리의 삶의 방식과 태도에 대해서 한번 질문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보통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질문 앞에서 살아가고 있나요? 만약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질문이 없다면 질문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께 어떤 질문을 해야할까? 그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답을 해주실까? 라고 물으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 하나를 불러 세우시면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은유가 가진 비유들이 많이 있지만 저는 이중에 하나가 질문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천국을 향한 소망 그것에 대한 갈증,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소망과 기도의 동기가 어린아이와 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샌가 이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이 정해놓은 시스템과 한계에 갇혀서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소망하지 않고 이 땅에서 안주하면서 살아가기를 택하지 않았습니까?
베드로전서 2장 2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젖먹이 같이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하게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다윗이 그 나라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자신의 생각과 이 세상의 방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을 향해 서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순수한 믿음으로, 선한 동기로 하나님을 선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만약 틀어지고 깨지고 오염된 길에 서 있다면 하나님께 그리고 여러분 안에 내주하고 계신 성령 하나님께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쁘신 삶이 될까요? 라고 물으시길 바랍니다. 그 물음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십시오.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십시오. 그렇다면 우리 안에 내주하신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에 반드시 감동하시고 감화하실 것입니다. 그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다윗이 온전히 하나님을 구하고 찾았던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권세와 능력이 자신에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그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 앞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인정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 있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던 다윗의 삶의 태도를 보았습니다. 우리의 삶도 늘 하나님 안에 있기를 기뻐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의 뜻을 물으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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