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죽음 애도하는 다윗
(사무엘하 1:1~16)
사무엘상을 열심히 묵상하고, 이제 오늘부터는 그 이후의 이야기 사무엘 하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상에서는 사무엘과 사울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었죠. 이후에 다윗이 등장하기는 했었지만, 다윗의 활동무대의 시작은 사무엘하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사울의 죽음에 담긴 또 다른 스토리, 그리고 그 보고를 받는 다윗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아말렉 사람들을 무찌르고 자신의 거처인 시글락 지역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등장하였는데 그 행색이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와 같은 행색은 고대 근동지방에서 애도의 표현을 할 때 이러한 행색을 하게 됩니다. 깊은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서 머리에는 재를 뒤집어 쓰고, 옷은 찢어서 자신의 마음이 이와 같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죠.
그리고는 다윗에게 나아가 절을 합니다. 절을 하는 모습으로 보아 다윗을 향한 복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죠. 그러자 다윗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자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하여 왔다고 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후 8절에 보면 그 사람을 아말렉 사람이라고 드러내고 있는데요. 그런데 오늘의 본문의 시작 본문을 보면, 이 사건이 일어난 때가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무찌르고 돌아온 시점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때마침 아말렉 사람이 다윗 앞으로 나와서 다윗에게 복종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죠. 이스라엘 진영에서 왔다고 말하고 있는 구절을 미루어 보아 실제 아말렉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가 좀 어려운 것 같기도 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이 사람은 실제 아말렉 사람인데, 다윗에 의해서 아말렉이 전투에서 패배했을 때 빠르게 태세전환을 하여 자신의 조국을 버리고 다윗에게로 나아가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던 그 아말렉 청년이 와서 사울과 요나단의 전쟁에서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전하여 줍니다. 그러자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묻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것은 다윗에게도 크나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조차도 선지자를 통해서 기름부음을 받아 세워진 이 왕을 두 번이나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는데, 이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죽었다는 것과 자신이 정말 사랑했던 친구 요나단의 죽음에 대한 실제적인 충격 때문에 자세히 물어보았겠죠.
이 아말렉 청년의 대답은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사울은 자결하려 하였지만 완전히 죽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사울 본인은 할례받지 못한 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싫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였지만, 결국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인 아말렉 사람을 불러 자신을 죽여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죠. 죽음은 스스로 선택하였지만, 그것 조차도 자신이 이루지 못하여 죽어가는 와중에 다른 이방인을 불러 이 고통을 끝내주기를 간청하는 비참한 사울의 마지막을 본문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상에서는 이미 사울은 스스로 자결을 하였고, 그의 시신이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유린되어지고 성벽에 걸렸었다고 기록되어 있죠. 하지만 오늘의 본문인 사무엘하는 조금 다른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이 편집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이다. 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견해는 이 아말렉 사람이 다윗으로부터 어떤 보상을 바라고 거짓된 증언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찌되었건 오늘의 본문에서 아말렉 청년은 사울이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여 사울의 요청대로 그의 목숨을 끊고 왕관과 팔찌를 벗겨서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면 이 아말렉 사람은 왜 굳이 다윗에게 찾아와서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의 소식을 전하려 하였을까요?
아마 이 아말렉 청년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잘 파악하고 줄을 어디에 대야지 자기가 출세할 수 있을지 그런 식견에 눈이 밝았던 것 같습니다. 살펴보니 사울과 다윗은 대치하는 상황 가운데 있었고, 사울은 그런 다윗을 늘 죽이려고 했지만, 오히려 다윗이 사울을 살려주었던 사건이 두 번이나 있었죠.
그리고 다윗이 언제나 승승장구하는 사실도 보았을 것입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에 처들어와서 모든 여인들과 재물을 약탈하여 갔지만, 오히려 다윗이 그들을 추격해서 그들을 격파하고 모든 전리품들을 되찾아간 사실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의 생각에 이런 정도의 전리품이면 다윗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윗의 목숨을 노렸던 사울의 왕관과 팔찌를 가지고 다윗을 찾아가서 내가 사울의 숨통을 완전히 끊고 그 증표로 왕관과 팔찌를 가져왔나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나도 그 일을 스스로 하기는 싫어했으며 왕의 요청이 있었다. 그리고 내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슬퍼하여 당신께로 나아왔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에 죄가 처음 들어왔을 때, 뱀에 대해서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라는 구절이 있죠. 사람은 간교하게 꾀를 내려고 하면 얼마든지 뱀처럼 간교해질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칭찬할만한 전리품을 챙기고, 또 자신도 생각보다 이 일을 시행한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며, 자신도 또한 깊은 슬픔에 빠져 있다고 자신을 포장하면서 다윗에게 나아온 것이죠.
하지만 아말렉 청년의 의도처럼 일이 이루어지진 않았습니다. 다윗은 그 소식을 들은 이후에 깊은 슬픔과 애곡의 시간을 가졌고, 무언가 기대했던 아말렉 청년은 다윗의 신하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아말렉 청년이 죽임을 당한 것은 첫 번째로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을 죽인것에 대한 처벌의 요소가 가장 큽니다. 이미 사울의 요청이 있었다고 이미 말을 하였지만, 그가 손을 들어 사울의 죽음에 일조했던 것을 그저 좌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다윗이 그 전에 사울을 살려주었던 것이 단지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그 자세가 얼마나 바른지에 대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아말렉 청년이 다윗에게 나아온 의도를 파악 당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이 죽은 이후에 전리품을 취했든지, 아니면 실제로 그 아말렉 사람이 사울을 죽였는지의 진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위에서 말씀드렸던대로 다윗을 찾아온 의도가 불순했던 이유로 죽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아말렉은 전쟁에서 패배하였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이유는 다윗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다윗과 그를 따랐던 용사들이 용맹하고 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좋아할만한 전리품을 챙기고 그럴듯하게 연기를 하며 다윗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칭찬과 보상을 기대하였던 아말렉 청년은 죽임을 당하고 말핬습니다.
만약 그가 칭찬과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면 굳이 사울의 사망소식과 전리품을 챙겨서 다윗에게 찾아가지 않았겠죠. 그것도 자신의 민족을 전쟁에서 패배시킨 다윗에게 말입니다.
진실함이라고 하는 것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잘 보이지 않아요. 오히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한 눈앞에 드러나는 목적성을 가진 행위들입니다. 아말렉 청년처럼 말이죠.
하지만 진실함, 신실함, 거룩함 등의 행위는 사람의 깊은 내면에 잠재되어 있고 그것이 어떤 행위로 발현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내면을 살피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행위에 집중할 때가 많이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신자들은,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사무엘상을 묵상하면서 이미 마주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은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여지기 위한 얄팍한 목적성을 가진 행위들은 언젠가는 드러나기에 마련입니다.
우리의 중심과 내면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고 우리의 삶의 모든 행위와 마음의 묵상과 입술의 모든 말들이 주님이 열납하실만한 것들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내가 했던 행위와 말로 인해 큰 낭패를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질문2.
나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또 사람들 앞에서 진실한가요?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들의 평가인가요? 아니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