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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군의 느릿느릿

잘못된 근심과 올바른 근심

by 터틀곽 2022.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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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근심과 올바른 근심

( 12:22~34)

 

오늘의 본문은 기독교인이라면 내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듣고 보아서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본문 22절과 29절에 반복되어 등장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라는 말씀입니다.

 

두 가지 단어를 살펴보고자 하는데요. 첫 번째는 목숨을 위하여이고 두 번째는 염려하지 말라입니다.

 

사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위하여 염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목숨 때문은 아닙니다. 여기 모인 사람 중에서 내가 오늘 먹고 마시고 입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다고 생각하는 분은 아마 없으실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대하고 있는 당시 제자들에게도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12 13절부터 21절을 살펴보면 유산을 나누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탐심을 물리치라 말씀하시고, 부유한 농부가 소출이 많아 지금 창고를 허물고 더 크게 지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농부에게 너의 영혼을 찾는다면 그 소유가 너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라고 물으시면서 오늘의 본문을 제자들에게 던지고 계신 것이죠.

 

예수님께서 주목하도록 주신 단어는 목숨을 위하여 입니다. 바로 이 목숨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도록 알려주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유가 넉넉하면 많이 쌓아두면 안정감을 느낍니다. 앞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죠. 제가 예전에 이 본문으로 말씀을 나눈 적이 있는데요. 실제로 내 지갑에 몇만 원이라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한데, 천 원짜리 한 두 장밖에 없다면, 누구를 만나기가 부담스럽죠.

 

그런데 그 몇만 원이, 통장에 들어있는 적금이, 내가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이 내 목숨을 유지해줄 수 없습니다. 미래에 일어날 어떤 사고에 대비해서 보험도 들어놓고 하지만 그 보험이 내 재산을 보전해줄 수는 있겠지만 내 목숨을 보전해 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목숨은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의 목숨은 생명은 생명을 베풀어주신 이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너희 목숨을 위하여 몸을 위하여 먹을 것을, 입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씀하시면서 24절부터 27절까지 까마귀, 백합화와 같은 창조물들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물의 창조주로서 그들도 먹이고 입히시는 것을 가르치시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라고 묻고 계시는 거죠.

 

두 번째는 염려에 대한 자세입니다.

 

우리가 많이 오해하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사실 목숨을 위해 몸을 위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지만, 이 염려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신경도 쓰지 말고 아래 구절에 등장하는 것처럼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 위하여 그것만을 위해서 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수고해야 하고 경제활동도 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염려의 의미는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감당해야 하는 당연한 경제활동과 수고를 내팽개치고 오로지 신앙생활에만 몰두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때때로 교회 안에 있는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오해하여 경제적 활동을 하는 이들을 정죄하고 신앙생활에 몰두하는 자신들을 더 의롭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염려하지 말라는 뜻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필요한 요인들을 내던져버리고 하나님만을 쫓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 땅에서 누리는 먹을 음식과 의복과 재물에 마음을 다 빼앗겨버리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이 이 땅의 것들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아니지만 12 15절에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더 많은 재물을 얻고 누리기 위해서 하는 염려를 버리고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31절과 32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여기서 지칭하는 너희는 22절에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한 제자들을 의미합니다.

 

32절에 지칭하시는 적은 무리는 제자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들이 결코 많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이 세상의 가치와 흐름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구하는 이들에게는 목숨을 위하여 필요한 의식주를 공급하실 것이며 그 소유의 넉넉함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 목숨을, 생명을 주관하여 주실 분이 하나님 아버지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지갑이 회개하여야 진정한 회개를 이룬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소유에 우리의 마음과 뜻을 쏟아 놓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 나라에 마음을 쏟고 있는지를 점검하라는 뜻입니다.

 

본문의 34절에도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보물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보물을 하나님 나라에 쌓아두고 있는지 이 땅에 쌓아두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나아가서, 우리가 누리는 평안은 이 세상이 주는 평안인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평안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질문1.

나의 보물은 어디에 있나요 내 마음이 늘 향하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요?

 

질문2.

나에게는 하늘 아버지께서 내려주신 신령한 하늘의 복을 누리고 있나요? 아니면 세상이 주는 편안함에 만족하고 살아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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