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탓입니다
(삼상 22:11~23)
오늘의 본문은 주일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되어 계속 이어지는 말씀인데요. 다윗이 사울에게서 도망하여 제사장들의 무리가 있는 성읍인 놉으로 도주하였었습니다. 다윗은 그곳에서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거룩한 진설병을 먹고, 또 무기를 얻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갑니다. 그러한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에돔사람 도엑으로 인해 이 사실이 사울에게 전하여졌고 사울은 그 길로 모든 제사장들을 불러모습니다. 11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왕이 사람을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아히멜렉 뿐만 아니라 놉에 있는 제사장 모두를 부릅니다. 18절의 말씀을 보면 도엑이 그 제사장들을 죽이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수가 85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놉에 살고 있는 제사장 모두를 불러 모은 것이죠.
13절을 보면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였는가? 라고 묻고 있는데요.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은 다윗이 요구한 것을 내어준 일 밖에 없었던 것이죠. 다윗이 빵을 달라하여 진설병을 내어주었고, 또 칼을 요구하여 칼을 내어준 일 뿐이었습니다. 그것도 사울의 이름으로 부탁을 하였기로 아히멜렉은 그 다윗의 말을 듣고 그 모든 일을 의심없이 진행했던 것이죠.
그런데 사울은 아히멜렉에게 나아가 다짜고짜 네가 어찌하여 다윗과 한통속이 되어 나를 반역하려느냐고 화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망상이 도를 넘어서 마음속에 피어난 의심을 확신으로 믿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냐? 라고 묻고 있습니다.
다윗을 향한 피해의식과 강박관념이 이미 사울을 잠식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죽도록 싫어하는 저 다윗을 도와주었으니 다윗을 도와준 저 아히멜렉도 다윗과 한통속으로 여기고 그 망상과 분노를 아히멜렉에게로 전이시키고 있는 사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아히멜렉도 요나단과 같이 왕에게 다윗을 변호합니다. 왕이시여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처럼 충실한 신하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이미 당신의 사위이며, 왕을 지키는 경호대장과도 같은 인물임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또한 15절에는 이미 다윗을 위하여 신탁의 일을 여러 번 진행했던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처음이 아니지 않습니까? 라고 사울의 동의를 구한 것으로 보아 사울도 아히멜렉이 제사장으로서 다윗을 위해 여러 신탁의 일들을 진행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신탁은 다윗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제사장을 통하여 받은 신탁으로 보여집니다.
아히멜렉은 지극히 상식선인 선에서 사울을 이해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이렇게 잔뜩 분노한 모습으로 수 많은 제사장들을 모아 겁박하는 모습에 대해서 부당하다는 듯이 자신을 변호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왕으로서 이 집안에 해를 가하지 말 것을 간곡하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리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울은 반드시 아히멜렉을 죽일 것과 아히멜렉 뿐만 아니라 그 일가족을 몰살할 것을 선언하였습니다. 이 일은 누가 보아도 부당한 일이었습니다. 17절을 보면 알 수 있죠.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이 좌우의 호위병에게 이르되 돌아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사울은 호위병들을 향하여 아히멜렉과 모여 있는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지만 그들은 감히 제사장들에게 손을 대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사울이 주장하는 이 말이 비상식적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호위병들이 양심적인 행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감당하는 제사장들을 죽인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분노와 망상에 잠식된 사울은 이미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이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죠.
호위병들이 차마 제사장들을 어찌 하지 못하자 이제는 도엑을 부릅니다. 도엑은 에돔사람이었죠. 에돔의 조상은 에서입니다. 왜 사울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에돔 사람을 자신의 친위대장으로 가까이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성경에서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에돔이 가진 성품과 실행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폭 영화를 보면 가끔 보디가드들 중에 아주 악랄하고 무자비한 인물을 자신의 심복으로 두고 있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리고 보스들은 그들의 악랄한 성품을 이용해서 자신의 손으로 하지 못하는 더럽고 찝찝한 일들을 그들을 통해서 이루어 가는 소재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에돔사람 도엑도 사울 옆에서 그런 일들을 맡아서 처리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도 호위병들이 사울의 명령에 우물쭈물 하고 있자 대번에 도엑을 불러 제사장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었던 에돔사람 도엑은 그 자리에서 제사장들을 진멸합니다. 18절의 기록에 세마포 입은 자 85명을 죽이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놉으로 가서 남자와 여자 아이들과 갓난아기들 소와 양과 나귀를 쳐죽입니다. 이 구절을 보아서 도엑이 가진 악랄하고도 무자비한 성품을 사울이 어떤 방식으로 이용해 왔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죠.
이 피비린내 나는 난리통에 아히멜렉의 아들중 한명인 아비아달이 겨우 도망하여 다윗에게로가 사울이 모든 제사장들과 놉 땅의 모든 친족들과 가축을 진멸하였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며 아비아달을 안심시키면서 그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다윗 입장에서는 그 모든 일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에 있어서 조금은 억울함과 부당함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비록 자신이 아히멜렉에게 가서 먹을 것을 구걸하고 창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그들을 죽인 것은 사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 자신이라고 말하며 모든 것을 자신의 탓과 자신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이 사실로 인하여 아비아달의 마음을 조금은 위로하여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친족이 죽임을 당하고 오갈 곳 없이 홀홀단신으로 다윗을 찾아왔을 때, 다윗이 그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로 돌리고 그의 신변을 보장해준다는 말을 남기었을 때, 조금이나마 위로와 안정감을 누리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다윗은 목숨이 위협받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예전의 다윗 같지 않은 조금은 부끄러운 행동을 하였습니다. 사실 이 행동을 부끄러운 행동이다. 모자란 행동이다. 라고 보기에는 우리가 다윗을 향한 기대치가 너무나 높지 않은가? 라고 되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윗도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완전할 수 없는 불완전하고 연약한 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제사장들만 먹어야 하는 떡을 요구하여 먹었고, 자신이 전투해서 포피를 이백개나 베어낸 원수의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친놈처럼 행동해야 했습니다. 제가 다윗보다 나은점이 많지는 않지만 한 가지 나은점이 있다면, 원수들 앞에서 침을 흘리면서 미친척을 한적은 없는 것. 이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다윗이 침을 흘리면서 미친 척을 했을 때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얼마나 치욕스러웠을까요? 골리앗을 향하여 담대하게 나아갔던 그 용맹스러웠던 다윗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위태로운 자신의 목숨 하나 부지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행동을 해야 했던 다윗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또 자신의 방문으로 인하여 놉 땅에 있었던 아히멜렉을 포함하여 85명의 제사장들과 그의 식솔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다윗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 와중에 혼자만 살아남아 자신에게 달려온 아비아달을 맞이하였을 때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우리가 어땠을 것이다. 라고 추측은 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다윗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러한 불안함과 죄책감과 압박감 속에서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그 모든 일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위기 속에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약함과 잘못을 인정하며, 자신에게 달려와 남은 하나의 생명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솔직한 모습이 사울과 다른 부분입니다. 사울은 남을 탓하기 바빴습니다. 사무엘이 늦게 도달해서 그렇고, 진멸하지 아니한 것은 백성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렇고, 등등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책임을 자신이 감당하였습니다.
저도 사실 자기 객관화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번달에 제가 내로남불을 말씀드렸잖아요. 우리는 보통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합니다. 남 눈에 있는 티는 잘 찾아내면서 내 눈속에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오늘의 본문의 다윗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생활과 삶의 자세를 돌아보면서 나는 누구를 탓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책임을 다하는 사람인지를 살펴보길 원합니다. 나의 신앙과 삶의 자세로 인해 공동체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윗의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 내게 주어진 소명의 자리를 지키며, 또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다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나는 내가 잘못한 일들을 남에게 덮어씌우거나 책임을 회피한 적이 있으신가요?
질문2.
가정이나 공동체 안에서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 앞에 충실하신가요? 아니면 소홀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