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남부 정복
(여호수아 10:6~11)
벌써 2월입니다. 2023년이 시작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마지막 주가 되었습니다. 곧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될 것 같은 날씨가 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저번주에 강성미 전도사님이 제 나이를 물어보셨거든요? 제가 바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제가 몇 살인지 헷갈리는 거에요. 벌써 이러면 안 되는걸 알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헷갈리더라고요. 그게 저의 정서가 아직 2022년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2023년에 적응을 하려면 봄은 지나야 적응이 될 것 같아요. 적응이 될 만하면 또 한 해가 가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우리가 하는 말중에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내로남불을 사자성어로 아는 분들이 가끔 있는데 사자성어는 아닙니다. 그런데 꼭 사자성어처럼 보이게 생기긴 했습니다만 본래는 줄임말이죠. 어떤 줄임말이냐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하는 건 사랑이고 남이 하는 건 분륜이라는 말이죠. 본래는 그밥에 그나물이라고 남이 보기엔 다 똑같은데 내가 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자기에게 지극히 관대한 것을 꼬집는 말이죠. 비슷한 사자성어로는 아전인수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자기 논에만 물을 끌여다 놓는다. 자기 이익만 생각한다. 뭐 이런 뜻이죠. 이 내로남불이 가진 뜻이 꼭 불륜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운전을 하다가 천천히 가는 차를보면 느리게 간다고 빵빵 거리고, 내가 천천히 갈 때 뒤에서 빵빵거리면 안전운전하는 나한테 왜 빵빵 거리냐고 저러다가 사고난다고 말하죠. 또 뭐가 있을까요? 내 딸이 시댁살이 하는 건 못 보는데 며느리는 시댁일을 잘 해주길 바랄 때라던지 남의 애는 공부 좀 못하고 건강만 해도 되는데, 우리 애는 건강할뿐더러 공부도 잘 해야 할 때 등등 내가 하는 건 괜찮지만, 남이 하는 건 아니꼽게 보는 것을 말합니다.
저번주에 기브온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우리는 기브온 사람들에 대해서 약간 우호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브온에 대해서 로맨스입니다. 하지만, 다른 가나안 정착민이 보기에는 기브온은 배신을 때린 불륜남, 불륜녀처럼 보일 것입니다.
가나안 북부의 왕들과 사람들이 연합을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였고, 기브온 사람들은 꾀를 내어 이스라엘 민족을 속이고 그들과 동맹을 맺었던 내용을 기억하실 겁니다. 기억이 안나시더라도 어렴풋이, 왠지 기억이 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시면 괜찮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기브온은 가나안 정착민이었지만, 가나안 북부에 함께 오랜시간 살아왔던, 그 주민들과 결탁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인 이스라엘과 동맹하기로 결정을 하고 그들의 종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이를 본 가나안 사람들이 기브온 민족에게 느낀 배신감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가 된 것은 다윗 왕때의 일입니다. 그러니 지금 성경에 등장하는 예루살렘은 아직 이스라엘의 영토가 아닌 때이죠.
그래서 오늘의 본문 1절을 보면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기브온 주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있는데요. 예루살렘의 왕 아도니세덱이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였다고 듣고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브온이 이스라엘에게 화친하고 그들의 종이 되겠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왠지 기브온은 태생이 약한 것 같고, 세력도 없는 그런 민족이라고 생각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성경을 보면 기브온은 작은 성읍이 아니었습니다. 왕도와 같은 큰 성이였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한 용사들이었습니다.
가나안 입장으로 봤을 때는 엄청난 전력 손실이라고 느껴졌을 것입니다. 손흥민이 우리편일 때는 좋지만, 손흥민이 일본으로 귀화해서 우리랑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너무나 큰 좌절감과 씁쓸함과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이 들지 않겠습니까?
가나안 북부의 왕들이 아이를 바라볼 때 아마 이런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작은 성읍도 아니고 우리와 힘을 합쳐서 저 이스라엘을 공격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 갑자기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자기들을 배신했다고 느끼지 않았겠습니까? 다른 민족도 아니고 자신들과 오랜 세월 그곳에서 함께 살아온 민족이었기 때문에 더 배신감이 컸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들었던 아도니세덱이 두려움까지 느꼈던 것이죠. 그러자 이 아도니세덱이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에게 서신을 보내고 우리가 빨리 동맹을 맺고 기브온부터 치자고 말합니다. 그리고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와서 기브온 앞에 진을 치고 싸움을 준비하였습니다.
왜 그들은 동맹을 맺은 이후 이스라엘이 아니라 기브온부터 공격하려고 하였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긴 했겠죠. 오랫동안 같이 지내왔기 때문에 지형 파악이 쉽다던지 거리가 더욱 가까웠다든지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속내는 배신당한 배신감이 가장 컸을 것이고, 두 번째로는 동맹 중에서 또 다른 변절자가 등장하지 못하도록 본보기를 보여줄 심산이었을 것입니다. 기브온과 같이 또 이스라엘에 항복하는 민족이 나온다면, 이제는 더욱 위험한 상황에 처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죠. 아도니세덱이 크게 두려워하였던 이유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러자 기브온 사람들이 놀라서 길갈 진영에 있던 여호수아에게 전령을 보내어 속히 우리를 도우라고 말합니다. 6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 진영에 사람을 보내어 여호수아에게 전하되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하지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 우리를 구하소서 산지에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왕들이 다 모여 우리를 치나이다 하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기브온 민족들이 참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아이보다도 큰 성읍에 그 성에 있는 사람도 다 강한 사람들이었다고 기록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이스라엘을 객관적으로 상식적으로 평가하면, 그렇게 두려워할 존재이겠는가?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저번주에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일단 그들은 캠핑의 민족으로 정착민이 아니라 유목민이었습니다. 거점이 없다는 뜻이죠. 전쟁에서 거점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불리한 상황입니다. 전력의 손실이 조금만 크게 나도 완전히 몰락할 수 밖에 없는 허점과 불리한 점이 너무나 많은 민족이었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한 경력이 있습니다. 아이성은 아주 작은 성이었습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제 전투 실력은 아이성도 정복하지 못하는 수준의 전투력 밖에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 반해서 기브온 사람들은 정착민으로서 거점도 있고 아이보다도 큰 성읍을 가지고 있었고 또 다 용맹한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을 무시하고 당연히 동맹군을 맺어서 이스라엘을 정복할 만도 한데 이스라엘과 화친하기 위해서 엄청난 계략을 쓰고, 또한 자신들을 종이라 칭합니다.
오늘의 6절 본문을 봐도 그렇죠. 당신의 종들을 돕기를 더디 하지 마십시오. 라고 다시 한번 말하면서 자신들을 낮추고 있습니다. 아마 기브온 민족들의 지도자들이 참 지혜로운 지도자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단순한 전력 차이를 맹신하지 않고, 저 이스라엘의 뒤에 있는 분이 누군지를 빨리 파악한 것입니다. 요단강을 마르게 하고 여리고를 무너뜨린 일이 유목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죠. 이렇게 결단하는 것이 보통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북한이나 일본에게 가서 우리를 종으로 삼아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종이 되느니 전장에서 장렬하게 전사하겠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브온 민족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기브온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바르게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 이 민족을 돕는 신이 진짜 신이구나, 그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구나. 인간의 힘으로 대적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라고 빠르게 판단하고 이스라엘과 화친을 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기브온이 가진 지혜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용사를 데리고 길갈에서 기브온 민족의 성읍을 향해 올라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8절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지금까지는 여리고성 하나, 아이성 하나 이렇게 정복하였지만, 이제는 연합군을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당연히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거짓으로 화친을 청해 온 기브온 민족들을 나몰라라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차피 몰아내야 하는 가나안 주민이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내버려 두면 나름 병법으로 훌륭한 병법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전쟁을 하면서 양쪽의 전력에 다 타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그들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합니다. 9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갔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길갈에서 기브온까지는 걸어서 3일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약 40키로정도 되는 거리라고 합니다. 밤을 세워 이 거리를 움직이려면 정말 쉬지 않고 달음질 하여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이 정도 성의를 보인 것은 기브온을 향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사들의 마음이 보통이 아닌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시길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0절과 11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죠.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살륙하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
이 전쟁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강하여서 연합군을 물리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패하게 하셨습니다. 험한 산악지역을 밤을 새워 달려온 이스라엘 군사들은 사실 지칠대로 지쳤을 것입니다.
저도 군 생활을 하면서 유격 행군 혹한기 행군을 총 네 번을 해보았지만 군장을 매고 열두시간 정도 걸으면 거의 녹초가 됩니다. 발에는 물집이 생기고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투에 투입된다고 해도 제대로 된 전투력이 발휘될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승리케 하십니다.
그리고 가나안 연합군이 도망가면서 내려갈 때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가 떨어져 그들이 죽임을 당했는데 이스라엘 군사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맞아 죽은 자가 더 많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 전쟁 또한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여서 승리케 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12절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제가 가지고 있는 책중에 야살의 책이 있습니다. 야살의 책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는데요.
여호수아가 온 백성들의 눈 앞에서 말하기를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는 아얄론 골짜기에 머무르라 너희는 이 민족이 그 대적들에게서 원수를 갚을 때까지 그리하라 하였다. 주께서 여호수아의 목소리를 들으셔서 태양이 하늘들의 가운데서 서른 여섯 때 동안 멈추었고 달도 멈추어 온종일 속히 내려가지 않았다. (야살의 책 88:63~64)
성경에는 여러 기적과 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구약에서도 그렇고 신약에서도 그렇습니다. 오늘의 본문도 기적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태양이 기브온 위에 머무르고 달이 아얄론 골짜기에 머무는 일이 발생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태양과 달이 동시에 떠 있는 것을 보아서 이 전쟁의 때가 아침이었다. 그래서 하루종일 전쟁을 할 수 있었다. 다만 그 날이 아주 길게 느껴져서 마치 태양이 계속 떠 있고 달이 늦게 뜬 것처럼 느껴진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여호수아 군대가 반나절 만에 승리하였기에 이와 같은 시적 표현이 있었을 것이다. 라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고요.
또 어떤 학자들은 여호수아가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멈추게 해달라고 호소하였기 때문에 잠시 구름으로 태양을 가려 이스라엘 백성이 열기를 피해 전쟁에 어려움이 없었음을 표현했던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사실 과학적인 시각으로 보아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죠. 일단 태양이 멈추었다는 것은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멈추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아주 쉬운 예로요 100키로로 달리던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고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안전밸트를 매지 않았다면 앞으로 튕겨나가겠죠. 지구가 1600키로의 속도로 자전하는데요. 지구가 갑자기 회전을 멈추어버린다면 사람들을 포함해서 지면에 고정되지 않은 모든 사물이 1600키로의 속도로 동쪽으로 날아가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에는 쓰나미가 몰려와서 대지가 물에 잠겨버릴 것입니다. 자기장과 중력이 뒤죽박죽이 되어서 바람의 바람이 바뀌고 새들은 추락하고 곳곳에 토네이도가 생겨서 한번도 보지 못한 재앙이 임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과학적인 견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실은 문학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1977년경에 미국에서 탐사선 보이저 1호를 토성 관측 목표로 쏘아 올렸습니다. 그때 보이저 1호의 속도가 하루에 120만키로의 속도로 날아갔다고 하는데요.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38만 키로 정도 되는데 하루에 달을 한번 왕복하고 한번 편도로 갈 수 있는 속도로 날아간 것이죠. 그 속도로 토성에 도착하는데 얼만큼의 시간이 걸린지 아시나요? 꼬박 3년 2개월을 날아가서 겨우 토성에 도착했습니다. 태양계에서 지구 다음이 화성, 그 다음이 목성 그 다음이 토성이니까요, 지구 뒤에 세 번째 있는 화성까지 120만 키로로 달려서 3년 2개월이 걸린 것이죠. 제가 짧은 영상을 하나 준비했는데요 함께 보시죠.
영상을 봐도 사실 가늠이 잘 안되시죠? 저는 가끔 우주를 묵상할 때면 이 우주가 얼마나 큰지에 대해 압도감과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그에 반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우주에 비하면 정말 작은 먼지보다도 못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우주 만물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태양과 달을 잠시 멈추게 하셨다는 것은 아주 쉽고 간단한 문제였을 것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게 불가능하고 과학적으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지,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사실 크게 어려울 일도 아닌 것이죠.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적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때때로 하나님 앞에서 왜 저에게는 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까! 라고 묻는 신자들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그랬거든요. 저는 그 누구보다 신비한 기적을 제 두 눈으로 꼭 보고 싶었던 도마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신학교 시절에 정말 양털을 기숙사 앞에 두어서 이 양털에만 이슬이 슬고 다른 지면엔 이슬이 슬지 않게 해주세요. 아니면 다른 곳에는 이슬이 슬고 양털에만 이슬이 슬지 않게 해주세요.이 내용 다 아시죠? 사사기에서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실 때 기드온이 행했던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렇게 해주셔서 그 일이 일어나면 제가 주님께서 사역자로 부르신 그 사실을 믿겠습니다. 라고 할까 말까 하다가 안 하기는 했습니다. 왜 안 했냐면 제가 하면 양털과 모든 지면에 이슬이 맺힐 것만 같은 불안함이 느껴져서 안했습니다. 만약에 그러면 신학교를 관둬야 할 것만 같은 불안함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산을 노려보는 행위도 많이 했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들어 저 산으로 옮기라고 해도 그대로 된다고 해서 내 믿음이 겨자씨보다 없겠냐는 식으로 산하고 눈싸움도 많이 했지만, 주님은 산 같아서 여전히 그 자리에 계시듯이 제가 노려보았던 수 많은 산들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산만이 아닙니다. 바다를 가르려는 시도도 있었고 물 위를 걸으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저는 모두 다 실패했습니다. 맛있는 갈비찜에 아무리 축사를 하여도 제가 먹을 양보다 많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정말 제가 믿음이 없어서일까요? 아닙니다. 제가 믿음이 없지 않습니다. 저는 믿음이 있지만, 제가 바라는 그 기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보고자 했던 기적의 결과는 무엇인가요? 그게 되나? 안되나? 였습니다. 만약에 모든 사람의 믿음이 다 산을 옮길 믿음이라면 지금 지구상에 남아 있는 산이 있겠습니까? 지구는 멸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적을 허락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태양과 달을 멈추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 된 본분을 힘써 행하도록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지체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기적은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기적을 누리고 향유 하려고 한다면, 그 기적은 우리 인생에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기적은 바로 나 같은 죄 많은 인생이 주님을 만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는 그 자체가 가장 놀라운 기적이며, 내가 아직 살아서 호흡하고 있음이 바로 기적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승리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전쟁에 임하면서 자신이 해야 할 본분을 다 행하였습니다. 홍해가 갈라졌어도 그들은 자신의 발로 갈라진 땅을 걸어야 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태양과 추위를 막아주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광에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태양이 멈춘 그곳에서 여전히 목숨을 걸고 전쟁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은혜가 임했다고 해서 우리의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 내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이 은혜나 기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신앙은 요행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역전을 이루시지만 그 역전이 일어나는 과정 가운데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존재임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내가 구하는 것이 은혜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방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손 안대고 코풀려고 하는 것, 갑자기 로또가 돼서 아무것도 안하고 놀고 먹고만 싶다라고 생각하는 건 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과 탐욕을 부리는 것 뿐입니다. 아무런 헌신과 수고도 안 하고 다른 누군가의 도움으로 교회 건축이 완성되길 바라는 것 또한, 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려야 할 진정한 은혜와 기적은 선하게, 충실하게 자신의 노력과 헌신을 마땅히 드릴 때 임하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워주신 은혜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승리를 거두었고 가나안 족속의 다섯 왕들은 동굴에 숨었다가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숨어있던 동굴이 그들의 무덤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시간 관계상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로마서 8장 31절과 32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에게 가장 놀라운 기적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셨습니다. 우리 인생에 어그 어떤 기적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난과 넘어야 할 산들이 있을 때 이 말씀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해 태양과 달을 멈추시고,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은혜를 깨닫고 누리는 자들은 성실하게 충실하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고 수고한 손길들 위에 부어진다는 것을 기억하시면서 기적과 같은 오늘 하루를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심을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날마다 기적과 같은 하루를 우리에게 선물하여 주시는 은혜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우리가 성실하게 우리의 인생을 주님 앞에서 충성스럽게 살아가게 하시고, 주님 나라를 위한 수고가 하나님 앞에 올려질 때, 우리 인생에 기적을 감사로 고백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앞으로도 그 기적 같은 일상을 마주하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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