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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16

생일을 맞으며 어느덧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다. 나는 마냥 어린아이 같고 철없는 소년이고 싶은데 세월은 내 등을 떠밀고 점점 속도를 높여 달려간다. 나는 여전히 뛰어놀고 싶은데 내가 써야만 하는 가면은 하나 둘 늘어가고 나이를 먹을수록 나를 잊어버리는 것 같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가면, 더 많은 생일을 맞이하면... 나는 누구로 남을 것인가. 생일을 맞는다는 것, 마냥 축하를 받을 일은 아닌듯 하다. 그래도 나라는 존재를 기억해주는 가족, 또 나의 형제들 자매들로 인해 나라는 존재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 내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것 같다. 그래 또 힘을 내서 살아가자. 2022. 8. 20.
완전한 죽음 신앙인으로서 죽음은 언제나 화두가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것인데,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열매가 되어 사망 권세를 이기셨지만 나는 십자가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죽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건들면 욱 할 준비가 늘 되어있기 때문이다. 손해보지 않고, 내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갈 준비가 되어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면 내 옛자아를 죽이면 내 존재가 부인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이 죽음을 실제로 죽었다고 선포할 수 있을까? 새 피조물의 영광과 생명력이 부어짐이 나의 남은 생애를 정말로 초월적 능력으로 인도해 가는 것이 정말로 그러할까? 라는 의문 앞에 나는 오늘도 십자가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누군가 죽여줄 수 없는 내 옛사람을 내가 죽여야.. 2022. 8. 20.
스피커와 리스너 살아가다보며 리스너로 살아가기보다 스피커로 살아갈때가 많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니 어쩔 수 없이 스피커이다. 스피커로 살아가면서 참 많은 글을 적고 많이 얘기하게 한다. 리스너에게 진리는 이러이러 합니다. 이러이렇게 사세요. 라고 적고 나눌때면 늘 되돌아오는 질문이 너는? 너는 그렇게 사니? 라는 질문이 돌아와 박힌다. 참 이 괴리감이 좁혀지지 않는다. 글을 쓸때마다 마음이 시원치가 않다. 찝찝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들었으니 그냥 그 자리에서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자위하고 말을 쏟아낼 때가 많다. 가끔은 스피커에서 내려와 리스너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무언가 책임감에서 자유로워 질것 같은 그런 기분 때문에.. 하지만 그마저도 리스너에게 진리가 들려온다면, 그 진리 안에서 또 고민하고 고민해야겠.. 2022. 8. 20.
나는 괜찮을줄 알았다. 아빠가 아프다고 했다. 어릴적 아빠랑 깊은 관계가 없었던 나로써는 아빠와의 관계가 왠지 어색했고, 자꾸 고집을 부리고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빠를 만날때면 되리어 아빠를 더 질책하고 핀잔을 주었다. 서울과 제주의 먼 길을 돌아 아주 오랜만에 엄마와 아빠를 만났다. 돌아가는 길에 잘 배웅을 하고 다음날, 아빠가 급작스럽게 치매증상을 보여 엄마도 나도 너무 당황했다. 염두해두지 않던 상황이 갑자기 다가오니 심리적인 부담감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어떻게 기도를 할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고, 엄마를 어떻게 위로할지, 앞으로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하루가 지난 오늘 아침 출근을 앞두고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괜찮을줄 알았다. 긴 투병을 한.. 2022.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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