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아프다고 했다.
어릴적 아빠랑 깊은 관계가 없었던 나로써는
아빠와의 관계가 왠지 어색했고,
자꾸 고집을 부리고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빠를 만날때면
되리어 아빠를 더 질책하고 핀잔을 주었다.
서울과 제주의 먼 길을 돌아 아주 오랜만에 엄마와 아빠를 만났다.
돌아가는 길에 잘 배웅을 하고 다음날,
아빠가 급작스럽게 치매증상을 보여 엄마도 나도 너무 당황했다.
염두해두지 않던 상황이 갑자기 다가오니 심리적인 부담감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어떻게 기도를 할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고,
엄마를 어떻게 위로할지, 앞으로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하루가 지난 오늘 아침 출근을 앞두고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괜찮을줄 알았다.
긴 투병을 한 아빠를 이제 언제라도 잘 보내줄 수 있을거란 내 예상은
정확하게 빗나가고 말았다.
나는 다가오는 불행한 상황에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연약하디 연약한 존재였다.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에게 상황을 알리고 기도를 부탁했다.
동생이 짧게 '기도해 너무 걱정은 말구' 라는 그 말을 듣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불행이던, 다행이던 다가오는 상황을 기도로 맞이하고,
어떠한 환경이던 하나님의 인도하심 앞에 내 마음을 맞추고 조정해야 한다는 것.
아빠와의 추억이 많지는 않다.
아빠는 늘 어려운 대상이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대상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던가.
아빠를 모질게 대했던 내 언행들이 이제야 나를 억누르곤 한다.
어젯밤 아빠와 통화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수화기 너머로 전달하지 못한 나는 참 못난놈이다.
나는 괜찮을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
아빠가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고 나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르는
그 닭살스러운 멘트를 오래 오래 들었으면 좋겠다.
아프지마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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