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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군의 느릿느릿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by 터틀곽 2023.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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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삼상 19:18~24)

 

다윗은 사울로 인하여 자신의 목숨이 계속해서 위협을 당하자 아예 도피를 결심하고 사무엘에게로 나아갑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 나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 라마라는 곳은 다윗이 머물렀던 기브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좀 의아하죠? 도피를 하려면 아예 사울의 손이 미치지 아니할만한 곳으로 도망가는게 더욱 현명한 일일터인데 다윗은 기브아에서 한 3키로 정도 떨어진 라마로 갑니다.

 

다윗이 몇십키로 혹은 몇백키로 떨어진 곳으로 도망가지 아니하고 라마로 간 이유는 그곳에 바로 사무엘 선지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사무엘을 향하여 갔던 몇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먼저는 사무엘이 가진 영적인 지도력과 위치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비록 사울이 왕이 되어 왕정체제를 향하여 나아가는 과도기에 있는 이스라엘이었지만, 그럼에도 선지가가 미치는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다윗 시절도 그렇고요. 이스라엘의 역사는 늘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가르침과 책망이 선포되던 나라였습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사무엘이 가진 영적인 지도력과 영향력은 이스라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울의 어떤 영향력이 침범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도 서울에서 데모가 일어나면 사람들이 종종 명동성당에 숨곤 했고요. 민주화 운동으로 19876월 항쟁 때도 시위하는 시민들이 항쟁하였던 곳도 명동성당이죠. 당시에 공권력이 함부로 진압할 수 없는 약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곳이 명동성당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안에서 사무엘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 때문에 다윗은 사무엘에게로 피하여 목숨을 부지하고자 하였던 것이죠. 또 다른 이유로는 아마 자신에게 기름을 부은 이가 바로 사무엘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무엘에게로 가서 앞으로 할 일들을 논의하거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사무엘을 찾아갔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참 다윗이 지혜롭게 행동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어떤 욕구에 따라서 움직인 것이 아니라, 목숨이 위태로운 위기 가운데서도 그가 찾아간 인물이 바로 영적인 지도자인 사무엘이었다는 것이죠.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도 사무엘과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어려움을 당할 때, 심적인 부담감과 어려움이 있을 때 찾아와 마음을 나누고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피할 곳이 필요할 때 필요한 거처를 마련해주고 몸과 마음을 쉬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 잘 준비되어져야 하겠습니다.

 

사무엘을 찾아간 다윗은 그간에 있었던 일을 다 사무엘에게 전합니다. 일종의 고자질이라기 보다는 사실에 근거한 내용들을 전하였을 것입니다. 현재 사울이 악신으로 인하여 제정신이 아닌 생태와, 그 결과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였겠죠. 사무엘이 크게 놀랐다는 말이 없는 것을 보아서 사무엘은 이미 사울의 상태를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다윗을 데리고 나욧으로 가는데요. 이 나욧이라는 곳이 어떤 특정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지라는 뜻으로 사무엘이 선지생도들을 훈련시키는 학교 역할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그곳에서 선지생도들을 훈련시키고 하던 곳이 바로 나욧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왜 다윗을 나욧으로 데리고 갔을까요? 이 나욧이라는 곳이 가진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곳이 선지생도들을 훈련시키는 학교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를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을 하며 깊은 영성을 배우는 곳이었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다윗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임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목숨의 위기 앞에 있는 다윗을 향해서 단순히 그 죽음을 피하기 위해 피난처를 제공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이 훈련받는 훈련장으로 다윗을 데리고 간 것이죠. 그곳에서 다윗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함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 20절에 보면 기록되어 있죠.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다윗을 잡아 오라고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나욧에 가서 사무엘을 보니까 하나님의 영이 갑자기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해서 예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실을 듣자 사울이 또 다른 전령들을 보내죠. 21절에 보니 그들도 예언을 하고 세 번째 전령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을 잡아오라고 전령을 세 번이나 보냈지만 다들 실패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상태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곳, 그곳에서의 영적인 흐름이 강력하게 임하자 하나님과 깊은 관계에 없던 사람들도 갑자기 예언을 시작하는 영적인 힘이 있는 곳이 바로 나욧이었던 것이죠. 간절히 사모하기는 우리가 모인 이 곳에서 그러한 영적인 힘과 능력이 선포되는 하나님의 집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자 이제는 사울까지 라마 나욧으로 향하여 갑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도 임하여서 사울도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상태는 본래 어떤 상태였습니까? 사울에게는 악신이 임하여서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던 시점이었죠. 그런데 그런 사울이 라마나욧이라는 지역에 이르자 그곳에 충만한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도 임하여 사울도 예언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데요. 24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또 그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사울은 예언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 옷을 벗었다고 하는 행동은 수치스러운 행동이죠. 그리고 성경에서도 옷을 벗다 라는 의미는 수치를 상징하는 은유를 사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울이 이처럼 벌거벗게 된 이 행동은 근본적으로 사울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수치를 드러낼 정도로 성령의 역사에 압도됐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이 하나님의 영에 압도되었는지 하루 밤낮을 꼼짝없이 벗은 몸으로 누워있었습니다.

 

아마 압도되는 하나님의 영에 눌려서 몸을 옴짝달싹하지 못하지 않았을까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들의 속담에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다시 말하면 사울이 예언자가 되었는가? 라는 약간 반어법이 담긴 속담이죠. 전혀 예언자적 행위를 할 수 없는 존재인 사울이 그곳에서 벌거벗은 채로 예언을 하고 있으니 이런 속담이 나온 듯 싶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다윗을 숨겨준 사무엘의 환대입니다. 거절감과 목숨을 위협받는 다윗을 환대하여주고 그뿐만 아니라 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르치기 위하여 다윗을 선지동산인 나욧으로 데려가 그곳에 충만하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다윗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두 번째는 사울에게도 임한 하나님의 영은 사울을 예언자로 만들고 자신의 모든 수치를 드러내게 만드셨다는 사실입니다. 사울이 어떤 예언을 하였을까요? 아마 자신에게 임할 심판의 말씀을 예언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영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울처럼 벌거벗은 모습으로 부끄러운 모습으로 예언하는 사람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되어 주님의 뜻을 깨달아 가고,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바 된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나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환대를 베풀어본적이 있나요? 아니면 누군가에게 이러한 환대를 받아본적이 있나요? 그때의 기분은 어떠셨나요?

 

질문2.

하나님의 영에 압도되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예언과 환상과 방언을 하며 은사와 능력이 충만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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