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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군의 느릿느릿

골리앗의 등장

by 터틀곽 2023.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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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의 등장

(사무엘상 17:1~11)

 

오늘의 본문은 모든 성경을 통틀어 악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골리앗이 등장합니다. 빌런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이 빌런이 악당을 지칭하는 단어인데요. 골리앗 만큼 임팩트가 있는 악당은 없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본문 1절을 살펴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전쟁을 다시금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요. 새번역 성경 1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또 전쟁을 일으키려고 군인을 모두 모아 소고에 집결시키고.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요나단의 습격과 하나님께서 천둥 번개와 땅을 진동시킨 그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에게 패배를 하고 도망간 이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전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요. 이는 이스라엘에 일어나고 있는 어떤 소식을 블레셋 사람들이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 사건은 어제의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사울에게 악신이 임하게 되어 그가 고통 중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소식이 블레셋 사람들의 귀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당시 지도자의 건강의 문제는 국가적인 문제와 직결되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왕권이 약화되는 그 시기에 전쟁도 많이 일어나고 쿠데타도 많이 일어나죠.

 

이순신 장군도 활에 맞아 쓰러져가면서도 나의 죽음을 적군에게 알리지 말라는 그 일화는 너무나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도 이순신 장군의 죽음이 적군에게 알려지면 적들의 사기가 높아져서 전쟁의 승기가 기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사울이 악신으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다는 이 정보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갔을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사울이 악신으로 인하여 어떤 증상을 보였는지는 모르지만, 공황장애나 심각한 우울증 같은 증상이지 않았을까? 아니면 심각한 두통이나 정신착란증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와 동시에 사울의 왕위가 선지자를 통해서 폐위 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을수도 있습니다. 인간사를 살펴보면 어느 곳에나 밀정이 있고 앞잡이들이 있는 법이죠.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에 심어놓은 심복, 스파이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정보원들이 정보를 날라서 이스라엘의 왕이 지금 상태가 이상하다. 이런 시기에 공격을 해야 한다. 라는 결의가 블레셋에서 나왔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전쟁을 하기 위해서 모인 장소가 또 특이한데요. 그 장소가 바로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미 유다의 지역 안으로 들어왔다고 하는 것은 국경을 넘어서 땅을 침범한 것이죠. 이 사실로 보아서 이스라엘에 어느 정도 피해를 입힌 상태인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쟁 준비만 하고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 민족의 땅에서 진을 치고 왕국을 칠 준비를 하고있는 것입니다.

4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었죠.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드디어 골리앗이 등장합니다. 4절에서 골리앗을 묘사하는 단어가 나오는데 싸움을 돋우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을 돋우는 자라는 표현이 원문으로는 두 군대 사이의 공간, 둘 사이에 라는 뜻인데요. 문자적으로는 둘 사이에 있는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단신으로 싸워서 전쟁의 승패를 판가름하기 위해서 두 군대 사이에 개입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군대의 선봉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트로이라는 영화가 개봉한 적이 있는데요. 그 영화의 시작이 딱 이런 장면입니다. 아킬레스 역을 맡은 브래드 피트가 선봉장으로 나와서 칼 한 자루로 골리앗처럼 큰 상대편의 선봉장을 단칼에 이기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그 장수가 쓰러지자, 상대편 군인들이 철수를 해버리죠. 골리앗이 하는 역할이 바로 이 같은 역할입니다. 블레셋에서 가장 강한 장수를 선봉장으로 내세운 것입니다. 그 키가 얼마나 컸냐면 여섯 규빗 한뼘이라고 하는데 한 3미터가 조금 못되는 키입니다. 농구선수 서장훈이 키가 2미터 7센티 인데 그보다 훨씬 더 큰 것이죠. 골리앗이 농구선수도 아니고 그 당시에 무슨 줄자로 키를 쟀는지 안 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만큼 크다는 것을 표현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키만 컸던 것이 아니라 골리앗이 착용하고 있던 갑옷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놋투구를 쓰고, 50키로가 넘는 비늘 갑옷을 입었고, 다리에는 각반을 차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고, 엄청나게 큰 창 자루와 창 날을 차고 방패는 들 손이 없었는지 그 앞에는 방패를 든 사람이 따로 걸어나왔습니다.

 

가뜩이나 키도 큰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을 보호할 갑옷과 상대편을 무너뜨릴 엄청난 무기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와서 외쳤습니다. 8절부터 10절의 내용인데요. 골리앗이 어떤 말을 했는지 살펴보면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외쳤다.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했다. 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의 군대라고 하는 이 말은 실제로 전쟁하러 나온 이스라엘의 군대를 말하는 것임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전쟁을 승리케 하신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인데요.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모욕했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아니지만 26절에 보면 형들에게 빵과 치즈를 전달해주러 전쟁터에 나가서 이 소리를 들은 다윗이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도 듣자마자 골리앗이 하는 모욕은 단지 이스라엘 군인들을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지금까지 승리케 하신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음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분개하였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쩌자고 나와 싸우려 전열을 갖추었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고 너희는 사울의 종이니 나와 싸울 만한 사람을 한 명 골라서 내보내라. 만약에 너가 이기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고 그리고 내가 이기면 너희는 우리의 종이 될 것이다. 라고 도발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도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가 나와도 자신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도발하는 것이죠. 내가 지면 우리 민족이 너희의 종이 되겠다. 너희도 그만한 베짱이 있으면 너희 민족에서 가장 싸움을 잘할만한 장수를 한 명 내보내 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골리앗과 다윗의 관계를 우리의 삶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골리앗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모욕하는 이방 나라의 장수입니다. 골리앗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신자를 공격해 오는 이 세상의 어떤 것들로 해석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방식은 크고 거대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압도하여 오죠. 단순히 크고 거대할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준비된 모습으로 우리를 마주합니다. 마치 놋 투구와 비늘 갑옷과 베를 짜는 베틀 채 만한 칼을 들고 우리를 막아섭니다. 방식은 다양할 것입니다. 엄청난 자본으로, 혹은 걱정과 염려의 모습으로, 혹은 두려움이나 실패의 모습으로, 아니면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 혹은 질병으로 우리를 마주하여 설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들을 모욕하죠.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있으면 나와 보아라. 너가 신자라고? 웃기는 소리구나! 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믿음을 동요 시킬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너가 싸울 자신이 있으면 나와서 나와 한판 붙자. 너가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듯이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죠.

 

다시 본문으로 넘어오면요. 오늘 본문의 마지막 11절은 이렇게 기록 되어 있습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이스라엘의 군대는 적잖이 당황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류의 싸움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함께 전쟁에 투입이 됐었고, 또 어떤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전쟁을 주관하셔서 승리를 했던 기억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너희들 중에서 나와 싸울만한 사람이 있으면 한 명 나와 보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스라엘 군대에서는 골리앗을 이기려면 한 열 명은 나가서 붙어봐야 비등비등하거나 잘하면 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꼴랑 한 명만 나오라는 것은 너무하지 않냐! 라고 말했을 수도 있겠죠. 아무도 선뜻 그 자리에 나가지 않습니다.

 

이 말을 신앙의 언어로 번역하자면, 아무도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일에 단 한사람도 대꾸하지 못하는 백성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토록 왕을 원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820절에서 보았죠.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것이니라 라고 말하며 왕을 달라고 사무엘에게 그렇게 요구했지 않습니까? 왕을 뽑은 이유는 그가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울 것이다. 라는 것이었죠.

그렇다면 누가 나가야 합니까? 네 당연히 왕으로 뽑힌 사울이 나가야 합니다. 사울이 골리앗 만큼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보다 어깨 위나 컸으니 나름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는 골리앗과 대적할만한 덩치를 가지지 않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원한 이유도 왕이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울 것이었기 때문에 왕으로 세워진 사울은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할 인물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오늘의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왕으로 뽑힌 사울도 왕을 간절히 원했던 이스라엘 백성도 그 골리앗의 도발 앞에서 벌벌 떨고 있을 뿐 아무런 말 한 마디 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존재였던 것입니다. 이 상황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왕이 있으면, 그가 우리를 대신해서 싸울 것이고 우리를 지킬 것이고 우리를 다른 나라처럼 부강하게 만들 것이다. 라는 그 생각이 확고해졌을까요? 아니면 왕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구나, 저번에는 전쟁하면서 밥도 못 먹게 하고 그렇게 우리를 혹사 시키더니 지금은 이미 우리 땅에 쳐들어온 블레셋 사람을 보면서 벌벌 떨고 있구나. 라고 생각할까요? 아마 후자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을 것입니다.

 

제가 아까 잠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다가오는 골리앗과 같은 존재, 골리앗과 같은 세상의 방식들을 마주할 것이라는 말씀을 잠시 드렸습니다. 우리는 이런 골리앗 앞에 서 있을 때, 그를 어떻게 대적할 수 있을까요?

 

그 문제와 상황과 세상의 방식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라고 말하며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고 계실건가요? 아니면 누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가! 라고 말하며 일어나 그 문제들을 향해 믿음으로 당당히 맞서실건가요?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뻐하셨던 것은 그의 마음에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중심이 바르게 서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마 그 자리에 다윗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그 누구라도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사람이 있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달려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서 골리앗을 쓰러뜨리셨을 것입니다. 우리도 개인적으로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신뢰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이름이 영광 받으시는 것을 가장 존귀하게 여기며 주님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용기 있게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나를 압도하여 오는 골리앗과 같은 세상의 방식이나 염려 혹은 걱정들이 있으신가요?

 

질문2.

골리앗과 같이 다가오는 방식들을 마주하고 대하는 나의 방식은 어떠한가요? 사울과 같나요? 아니면 다윗과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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