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세우는 새 언약
(눅 22:14~23)
우리는 어제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예비하시기 위해서 큰 다락을 예비하시고 제자들이 유월절을 준비하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의 본문의 시작인 14절은 때가 이르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때가 이르렀다는 말씀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시작될 것을 알리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후에 영광받으실 것을 예고하시는데요. 요한복음 12장 23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영광받으실 것을 의미하는 말씀인데요. 오늘의 본문은 때가 이르렀다는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역을 감당할 날이 이제 임박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때가 이름의 두 번째는 15절에 등장합니다.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유월절 먹기를 간절히 원하고 바라셨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내가 너희와 유월절을 지낼 때가 이르렀다는 말씀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유월절이라고 하는 절기는 이스라엘의 가장 큰 절기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추석이나 설날과도 같은 가장 큰 절기입니다.
그런데 이 절기는 단순한 명절이 아닙니다. 유월절의 유래를 우리 모두가 알고 있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으로 매여 있다가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으로 인하여 애굽을 탈출하기 직전에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표를 보여주시죠.
바로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누룩으로 부풀리지 않은 발효되지 않은 빵을 먹습니다. 그때 죽음의 사자가 문설주에 피를 바른 집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고 패스오버 하고 유월하고 그리고 피를 바르지 않은 애굽인들의 집에는 첫 장자, 가축의 첫 새끼까지 죽었던 그 날이 바로 유월절입니다.
오늘의 본문 15절은 이러한 유월절의 절기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보내기를 간절히 원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그 이유가 16절에 등장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유월절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입니다.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시작하면서 철저하게 지켜왔던 절기가 바로 이 유월절인데요. 이스라엘 백성이라념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이라면 모두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절기가 바로 이 유월절인데, 예수께서는 이 유우러절이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제자들은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로 예수께 묻거나 고민하는 구절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의 본문 이후의 구절인 24절을 보면 예수님이 유월절로 가르쳐주시는 영적인 진리, 앞으로 예수께서 감당하셔야 할 십자가의 수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서로 누가 더 크냐에만 집중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고 계셨고, 제자들에게 유월절의 의미를 다시한번 기억시키시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또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야 했기에 제자들과 이제 다시 이 땅에서는 유월절을 보낼 수 없음을 가르쳐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로써 때가 이름에 대한 의미를 전달하시고 유월절을 보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의 본문 19절 20절을 통해 예수님 자신이 유월절에 죽임을 당한 어린양처럼 죽임 당할 것을 예표하십니다.
19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시죠.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먼저 예수님께서는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나의 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종종 주의 만찬을 할 때, 위생과 편리함을 위해서 이미 조각난 빵을 받아서 먹곤 하는데 사실 더 본질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방식은 한 덩어리의 빵을 뜯거나 찢어서 나누는 방식이 그 의미를 잘 전달한다고 생각합니다.
떡을 떼는 그 행위 자체가 예수님께서 몸을 찢으셔야 했던 것을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살점을 떼어 먹이심의 의미는 인류의 죄악을 감당하시기 위해 찢기신 예수님의 희생을 신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찢김을 묵상한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생각만 해도 무섭고 떨리고 피하고 싶은 그런 장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의 만찬을 통해 이 떡이 뜯겨나감을 보면서, 그리고 그 떡 조각을 받아 먹음으로서 죄인인 나를 위해서 살이 뜯어져 나가셔야 했던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죽어야 할 죄인이지만 나를 대신하여 제물 되어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은혜와 사랑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죠. 그 누구도 떡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몸은 우리에게 영혼의 양식이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적인 허기를 채우시고 주리지 아니할 생명의 양식이 되어 우리의 영혼을 충만하게 하실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주의 만찬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기념하게 됩니다.
20절에서는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떡을 떼는 것과는 조금 다른 내용으로 말씀하십니다. 떡은 내 몸이라 라고 주시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잔을 나누심은 피로 세우는 새 언약 바로 ‘언약’ 이라고 하는 요소가 더 강조되어 있음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예로부터 피 흘림은 언약의 요소가 강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기 이전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을 때에도 동물을 잡아 쪼개어 피를 낸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이 방법은 고대근동지역에서 언약의 표징으로 사용되던 방법이기도 합니다. 부족과 부족간에 또 개인과 개인간에 절대로 파기할 수 없는 약조를 할 때에는 동물을 잡아 피를 내고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그 피를 건너가는 행위를 행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만약에 이 언약을 파기할 시에는 파기한 이가 이처럼 피를 흘려 죽을 것이다는 맹세를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24장 8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의 피 흘리심은 자신을 통하여 모든 성경의 시작으로부터 선지자들의 예언과 이스라엘의 역사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모든 경륜과 계획이 이제 예수님 자신의 피 흘림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언약으로 완성될 것을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더 이상 동물을 잡아 죄를 전가하지 않아도, 제사장들의 도움이 있어야만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방법도 다 폐기되고 새롭고 산길이 되신 예수님을 통해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놀라운 역사가 시작될 것임을 선포하시는 말씀이십니다.
이제 출애굽기에서 행하던 옛 언약은 폐기되고 모든 사람을 위해서 흘려주신 죄 없으신 보배로운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그 피로 정결하게 된 모든 자들은 하나님께로 담대히 나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게 된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침례교회에서는 딱 두가지의 성례전만 행합니다. 하나는 침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 주의만찬입니다. 우리가 코로나가 터지면서 주의만찬을 행하지 못한지가 참 오래 되었는데요. 저의 바램은 이 주의만찬을 행하면서 날 위해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려주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그 떡을 함께 떼고 그 잔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의 옛 존재를 기억하고 또 새로워진 우리의 존재를 바라보면서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또한 우리는 이 주의만찬에 함께 동참 함으로서 이 떡을 함께 떼는 나의 지체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언약으로 받은 존귀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서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연합되어진 나의 형제요 자매임을 고백해 나가는 성숙한 믿음의 식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 1.
생명의 떡이시고, 새 언약의 피이신 예수님을 먹고 마신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질문 2.
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떡과 음료로 말씀하셨을까요? 왜 우리는 주의만찬에 동참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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