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하게 만드는 방법
(스 4:11~14)
오늘의 본문은 어제의 본문의 연장선상에 있는 말씀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유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건축을 방해하기 위해서 바사의 관리들에게 조공도 바치고 고발하는 행정소송도 불사하면서 성전건축을 방해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어떠한 방법으로 그들이 방해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는데요.
11절부터 16절까지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진정서를 올리는데요. 만약에 이 유다인들이 성읍 건축을 시작했는데 벌써 기초를 놓았다. 그리고 곧 성곽을 건축할 것이다. 만약에 이들이 성읍 건축을 계속하고 성곽을 완공한다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않을 것이라서 왕이 받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내 이야기가 틀린지 조상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라.
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다른점을 발견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이 시작한 일은 무엇인가요? 바로 성전 건축입니다.
에스라 1장 2절에 보면 바사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여호와께서...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라고 기록되어 있고요.
에스라 3장 11절에는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족속이 실행에 옮기고자 했던 것은 성전 건축이었습니다. 고레스의 칙령 또한 성전 건축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사마리아인들의 꾐은 무엇입니까? 저들은 지금 성전을 건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성읍을 건축하고 있으며 곧 성곽을 건축할 것이다. 저들이 성읍과 성곽을 짓기를 마친다면, 더 이상 바사왕국에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아니할 것이다. 그렇다면 왕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왕은 또 전쟁이라는 희생을 통해서 다시 저 나라를 함락시키던지 해야만 할 것이다. 라는 거짓 정보를 흘려보내면서 왕의 마음을 충동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창세기에 나와있는 뱀의 유혹이 생각이 났습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어떻게 유혹하나요? 정말로 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였냐. 아니다. 너희가 죽지 아니하고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하와를 넘어지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사탄은 거짓으로 사람을 속이고 분열시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속에서도 거짓은 존재합니다. 완전한 거짓말만 거짓이 아니죠. 어떤 사건을 은폐하거나 부풀리는 것도 거짓의 한 종류입니다.
소문이라는 것은 늘 와전이 되잖아요. 사람들이 모이면 어떤 이슈를 얘기합니다. 개똥이가 길을 가다가 넘어졌데. 개똥이가 길을 가다가 넘어졌는데 다리가 까졌데. 개똥이가 길을 가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까졌는데 피가 많이 났데. 개똥이가 길을 가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까져서 피가 많이 났는데 피가 멈추질 않더래. 개똥이가 길을 가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까져서 피가 많이 났는데 피가 멈추지 않아서 죽었데.
라는 말의 와전으로 인해서 누군가가 죽기도 하고 잘못된 정보 전달로 인해서 누군가가 상처받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그 사실이 사실이 아닌걸로 밝혀지면 아니었나보지. 라고 하면서 그 말에 책임지지 않고 아무렇지 않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사마리아인들은 있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 냅니다. 유다족속들은 성전을 건축하라는 칙령을 받고 고향으로 귀환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성전을 짓기 위한 일을 시작하려 기초를 놓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사마리아 인들은 아하수에로의 아들 아닥사스다 왕에게 가서 지금 당신들이 조국으로 돌려보낸 이들이 어떤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이들이 성읍을 짓고 있다 성읍과 성곽이 만들어지면 전쟁이 불사할수도 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 거짓정보는 잘 먹혀들어갑니다.
17절부터 24절까지는 이 보고를 받은 아닥사스다의 답장의 내용입니다.
17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죠. 왕이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사마리아에 거주하는 그들 동관들과 강 건너편 다른 땅 백성에게 조서를 내리니 일렀으되 너희는 평안할지어다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황제가 내린 회신은 다음과 같았다. "사령관 르훔, 비서 심새는 사마리아를 비롯한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에 있는 동료 관리들과 함께 평안하기를 빈다.
17절에 보면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사마리아를 비롯한 관리들과 함께 평안의 인사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 르훔과 심새는 사마리아인이 아니라 귀환을 명령받은 유다민족이었습니다. 먼저 르훔은요 에스라 2장 2절에 등장하는데요.
예루살렘 1차 귀환 명단에 속해 있는 인물입니다.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혜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방백이라고 하는 직책은 무리의 우두머리를 뜻합니다. 공동번역에는 사령관이라고 번역하였는데요. 단어가 쓰이는 쓰임새에 따라 지칭하는 직위가 달라지기는 합니다만. 일반적인 시민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요. 어떤 직책을 맡은 중요 인물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서기관 심새라는 인물이 등장하죠. 이 서기관 심새는 유대인이었지만 아람말을 잘하는 통역관 정도로 보시면 될 것같습니다.
어제의 본문 4장 8절을 보면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려 예루살렘 백성을 고발한 그 글에
라고 기록되어 있죠.
결국에는 이 유대인들이 성전 건축을 하려 할 때 반대했던 유대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르훔과 심새입니다.
왜 이들은 성전 건축을 반대했을까요? 이미 바사 왕국에서 누리던 지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의 앞잡이를 했던 사람들이 있었죠. 그들이 한국의 독립을 방해하기 위해 밀고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색출하는데 열심히 일조했던 것처럼 이미 자신들의 지위가 평안하고 안전한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으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할 정체성 마저도 잃어버린 이들이 바로 르훔과 심새였습니다.
이 말씀을 살펴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던 시절이 함께 떠올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애굽에서 탈출시키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보내실때도 불평하고 불만이 가득한 이들이 있었죠. 그들이 밥먹듯이 하는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가 애굽에 있었던 때를 추억한다. 그때는 가마솥 옆에 앉아서 마음껏 고기도 먹고 부추와 마늘도 먹었는데 우리가 지금 광야에서 주려 죽는구나. 애굽으로 돌아가자! 마로 말하던 이들이 있었다는 것이죠.
이러한 옛사람의 기질, 또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이 세상이 주는 권력과 안락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저버리고 오히려 더 악한 말로 민족적인 반역을 일삼는 인물이 있었음을 성경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 꾀임으로 인해 아닥사스다왕은 더 이상 공사를 진행시키지 못하게 합니다.
20절과 21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죠.
명령하여 살펴보니 과연 이 성읍이 예로부터 왕들을 거역하며 그 중에서 항상 패역하고 반역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옛적에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큰 군왕들이 있어서 강 건너편 모든 땅이 그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다 바쳤도다
옛적에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큰 군왕은 다윗과 솔로몬 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아닥사스다 왕은 조공 수입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인해 귀환한 유대족속으로 하여금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게 다시 조서를 만들어 성전 건축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자 23절의 말씀처럼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예루살렘으로 급하게 달려가서 유다 사람들을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공사를 그치게 만듭니다.
유다 사람들도 왕의 조서가 새롭게 내려오고 어떤 공권력이 발현되자 일단 공사를 멈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러한 꾀임에 빠지게 된것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왜 일이 이렇게 진행되었는가에 대해서 자세히 살피어 건축을 재시작 하는 열심은 없었습니다.
그저 그들의 손이 약하여진채로 성전 건축을 뒤로 미루고 자신들의 집을 짓는데 열중하게 된 것이죠. 그 사이 스가랴와 에스라와 느혜미야를 통하여서 다시 건축이 진행될 때까지 유대민족은 성전건축에 대한 마음이 식어버린채로 긴 세월을 낭비하게 되어버립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성전 건축이 진행될 때 정부나 국가권력과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자! 이마에 빨간 띠를 두르고 데모라도 하자! 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실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레스를 통해서 그 일이 비록 이방인이지만 왕의 이름으로 칙령되게 하였음을 모든 유다민족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귀환을 해서 성전의 기초가 놓일때까지는 기쁘고 감격스러웠지만 내부적인 갈등과 이간질 앞에서 그들은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붙드는 것보다 그들의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택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성전을 건축하라는 말씀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선지자들의 애끓는 선포를 통해서야 다시금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교회의 건축의 여정에는 이러한 갈등과 거짓들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바라보아야 할 것은 우리교회 공동체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놓치지 말고 끝까지 기도에 힘쓰고 우리가 연합하고 힘을 내어 이 일을 완수하기 까지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넘어지게 만드는 사탄의 궤계를 파쇄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우리 교회 건축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하나님을 믿는 이 믿음을 모함하고 비방하는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나는 그때 어떻게 반응하였나요?
질문2.
우리의 비전과 목표가 흐려지게 되거나 소명이 흔들리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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