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곽군의 느릿느릿

안식 후 첫날 새벽

by 터틀곽 2022. 8. 26.
728x90
반응형

안식후 첫날 새벽

(24:1~12)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들은 여인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 1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여기서 등장하는 이 여자들은 23장에 등장했던 여인들을 지칭하는데요. 그 여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애도했던 여인들이었고 23 55 56절에 보면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라고 기록된 여인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의 큰 줄기와 흐름은 남성을 중심으로 기록되고 흘러온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으로 그렇고요. 사실 이 모든 일의 내면에는 여성들이 많은 부분을 조정하고 역사를 이룬 것들을 부정할 수 없음을 느낍니다.

 

잠시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창세기에서 시작된 여인들의 행위를 예수님의 부활 앞에서 만회하는 모습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행위는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원시 복음에서 말하는 것처럼 여자의 후손으로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예수님까지 흘러와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자리에도 여성이 먼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성경에는 많은 남성들이 등장하지만 가장 큰 순간들에는 여성들이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 1절에서도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자들이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는 모습이 등장하죠.

 

향품을 들고 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시체를 정돈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알고 있듯이 한 여인이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고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은 사건을 잘 알고 있죠. 그때 유다가 이 향유를 팔아 삼백데나리온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여인들은 고귀한 향품을 준비하여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통해서도 여인들의 믿음이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를 보게 됩니다. 물론 부활의 주님을 만나러 간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도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헌신적인 믿음을 가진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가장 먼저 듣게 되는 영예를 얻게 되었죠.

가서 보았더니 2절에 기록된 것처럼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았습니다. 한 두 사람의 힘으로 옮길 수 없는 무거운 돌이 이미 굴려서 옮겨져 있었고, 그 안에 들어가보니 예수님의 시체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죠.

 

그래서 이로 인하여 근심하였다고 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누군가 훔쳐갔는지 훼손하진 않았는지에 대한 걱정이었겠죠. 그런데 근심하던 중에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러 온 천사들이었죠.

 

천사들은 5절부터 7절까지 기록된 대로 이렇게 말합니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여인들에게 어찌하여 살아있는 자를 무덤에서 죽은자들 사이에서 찾고 있느냐? 라고 물으며 여인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무엇을 기억하라고 하고 있나요?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갈릴리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나요?

 

누가복음 9 22절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8절의 말씀처럼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했다.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잊고 있다가 천사들이 기억하라. 라고 말하자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렇듯 우리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을 묵상하다보면 여러번 읽었던 말씀인데도 새롭게 다가오고 깨달아지는 구절이 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묵상하고 기억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암송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이 연약하여 질 때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후에 여인들이 무덤에서 돌아가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들에게 알렸다고 합니다. 이후 10절에 이 여인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여인들이 오늘 본문의 주인공이죠.

 

이 여인들이 사도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사도들의 반응이 11절에 등장합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만 가지고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남성들로만 구성된 사도들은 믿음 없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인들의 말을 들었을 때 갈릴리에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 그런 말씀도 하셨었지.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신다고 했었지. 정도는 기억하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따랐었고 예수님의 말과 능력을 바로 눈 옆에서 보아왔던 제자들은, 게다가 갈릴리에서 하셨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가르침도 여러번 들었던 제자들이었지만, 그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두 눈으로 볼 용기도 없었으며, 실제로 죽음을 당하셨고, 그 시체를 무덤에 장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그들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 되어버렸습니다.

 

여인들의 증언 앞에 갈릴리에서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당장 그 무덤으로 달려갈 법도 하지만 제자들은 허탄한 말을 하지 말라며, 다시 말해 헛소리 하지 말라는 식으로 여인들의 증언을 묵살해버렸을 것입니다.

 

그나마 베드로만이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가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를 보고 그 일을 놀랍게 여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기록된 말씀을 허탄한 말로 여기지는 않나요?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경에서 증언하는 하나님의 신비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명령을 믿음으로 맞이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기록된 말씀이 허탄한 것이다.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말씀을 경히 여기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예수님은 약속대로 이 땅에 오셨고, 약속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약속대로 죽으셨다가 약속대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성령으로 보증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허탄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예수께서 약속대로 진실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의 믿음이,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신 이 생명의 능력이 우리도 능히 부활의 생명으로 인도하여 주실 실제임을 기억하시면서 날마다 부활의 능력, 새생명의 능력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나는 부활의 믿음 안에 살아가고 있나요?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믿음과 신앙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요?

 

질문2.

하나님의 말씀을 허탄한 것으로 여기는 잘못을 범하고 계시진 않은가요? 나는 모든 말씀 앞에서 진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728x90
반응형

'곽군의 느릿느릿'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탄하지 않은 길  (0) 2022.08.26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  (0) 2022.08.26
열정을 담은 믿음  (0) 2022.08.26
십자가를 지신 예수  (0) 2022.08.26
베드로의 배신, 그리고 눈물  (0) 2022.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