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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군의 느릿느릿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by 터틀곽 2023.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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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삼상 7:1~11)

 

하나님은 용서와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비교종교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신과 교통하는 신앙을 가진 종교 중에서 하나님만큼 많이 용서하시는 신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의 본문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자 그들을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장면이 기록된 본문입니다.

 

벧세메스로 하나님의 언약궤가 돌아왔지만 그들의 교만함과 영적인 어두움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자 그 언약궤를 기럇여아림으로 보내버립니다. 이 기럇여아림은 숲의 성읍이라는 이름을 가진 성읍이었습니다. 학자들은 기럇여아림이 가진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언약궤를 그쪽으로 옮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벧세메스나 기럇여아림이나 이 두 지역 다 블레셋의 영향력을 받지 않은 곳이면서, 제의적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1절을 보면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라고 기록되어 있죠.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바로 아비나답이라는 인물과 엘리아살이라는 인물입니다. 엘리아살은 아비나답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죠. 아마 이 아비나답이라는 인물은 레위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집을 선택하여 그 집에 언약궤를 안치하죠. 비록 이 성읍이 레위인에게 할당된 성읍은 아니었습니다만, 사사시대에는 레위인들이 자신의 성읍을 이탈하여 다른 지역에서 생활했던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하 63절에 보면 아비나답의 아들의 언약궤를 옮기는 일에 동참한 것으로 보아 그 집안이 레위 가문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엘리아살은 아비나답의 아들로서 그 이름은 하나님은 도우시는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였다는 것은 제사장 임직시에 사용되는 말인되요. 엘리에셀은 레위 지파였지만 혈통상 제사장 가문의 후예가 아니었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상황이 누군가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담당하여야 했기에 제사장직 직분을 감당할 사람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죠. 그래서 엘리아살을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름을 붓고 거룩하게 하여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담당하는 인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년동안 그 곳에 머물게 되었음을 2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을 통해서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0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성경에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 20년이라는 기간이 이미 20년이 흘렀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간 때는 다윗이 예루살렘 통치를 시작한 이후이기 때문입니다.

이십년 동안 이라는 의미는 기럇여아림에 있던 총 기간을 뜻하는 것 같고요. 그 기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사모하였고, 그 이면에는 사무엘의 계속된 회개 촉구가 있었었던 것이죠.

 

이스라엘이 갑자기 여호와를 사모하고 앙망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사사기를 살펴보면 지속된 어떤 사이클을 보게 되는데요.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을 들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심판하십니다. 고통 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사를 세우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은 또 범죄 하고 또 용서를 구하고 또 사사를 세우셔서 회복시키십니다. 이 같은 일이 사사기 역사 동안 쉬지 않고 반복됩니다.

 

아마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였다는 말씀은 당시 이스라엘이 블레셋으로 인하여 지속적인 압박을 받으며 고통을 받았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죠. 사모하다 라는 말의 원어인 나하 라는 히브리어는 크게 울다. 울부짖다. 부르짖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제 73절을 통해서 사무엘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언급이 되는데요. 이렇게 기록되어있죠.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만일 너희가 온전한 마음으로 돌아오려거든,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마음을 말하는 것은 회개의 심령을 의미합니다. 적당히 하나님을 섬기는 척이 아니라 진실 된 마음으로 자신을 깨뜨리는 마음으로 여호와께 돌아올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이방 신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제거하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돌아오는 전제조건으로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4절에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겼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죠.

 

가나안 땅에서 원래 이 바알은 비와 풍년을 가져다 주는 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스다롯은 여신으로서 미와 색을 가진 성적인 여신을 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섬겼던 신이 바알과 아스다롯이라는 것이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영적인 무지함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풍요와 번영, 그리고 색욕적인 신들을 모시고 그들을 섬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무엘의 회개 촉구 앞에서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우상신들을 제거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미스바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읍니다. 요즘도 가끔 미스바 대성회 라는 집회가 종종 열리는데요.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거라 생각이 됩니다. 그 미스바 성회가 바로 오늘의 본문을 모토로 만들어진 성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이킨 성회이기 때문이죠.

 

이제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서 그날 종일 금식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범죄 함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와 회개에 응답하십니다. 그 응답의 결과가 이후에 등장하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여있다는 소식을 블레셋이 듣게 됩니다. 그러자 블레셋의 통치자들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올라왔죠. 모여서 군중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블레셋 입장에서 썩 좋아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통제가 어렵고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군사정권을 겪은 우리 나라도 모여있는 것을 못하게 했었죠. 데모가 일어나면 온 힘을 다해서 막고 해산시켰던 이유도 모임을 가지면 응집력을 가지고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을 치러 올라왔던 것이죠. 영적인 힘도 모이기에 힘쓸 때 놀라운 힘을 발휘 합니다. 선한 목적으로 공동체가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회개하며 영적인 힘을 응집시키면 그곳에서 놀랍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자신들을 공격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동안 블레셋에게 패배하고 언약궤도 빼앗겼던 기억이 있기때문에 그 패배의 잔상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아있었던 것이죠. 이제 원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면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도망가야 합니다. 해산을 외치고 각자 살길을 찾아 도망가서 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숨어있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울리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8절을 보면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죠.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두렵기는 하지만 도망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는 사무엘에게 말하여 쉬지않 고 기도하여 우리를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도록 간청합니다. 이전 같았으면 그들의 생각대로 임의대로 행동하였을 것인데, 미스바에서 금식하며 회개한 이후에 하나님을 선택하고 선지자를 통해 기도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어린양을 잡아 번제를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영적인 원리가 다시 이스라엘에게 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범죄 한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오자 그들의 회개를 받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다시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블레셋은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또 이전의 기억만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을 치러 올라옵니다. 마침 그때가 번제를 드릴 때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진영에 천둥을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셔서 그들은 패배하고 도망갑니다.

 

비오는 날 천둥 소리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시죠. 그 소리가 얼마나 큽니까? 정말 자다가도 깜짝 깜짝 놀랄만한 소리인데 그 천둥이 블레셋에게 발생하였으니 블레셋 사람들은 무서워서 감히 이스라엘을 공격하지도 못하고 당황하다가 패배하고 쫒겨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스바에서 나와 벧갈 아래까지 그들을 물리쳤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두 가지 영적인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는 중보기도의 힘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금식하고 회개함을 보시기는 하셨지만 그 기도에 응답하였다. 라는 구절은 9절에 기록된대로 사무엘이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응답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사무엘이라는 영적인 지도자의 중보기도에 응답하신 사건으로 볼수도 있습니다. 이만큼 믿음의 사람이 가진 중보의 힘은 한 민족을 일으켜 세우는 기도가 됩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도 회개하고 금식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지만 그 기도 응답의 통로는 사무엘을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보게 됩니다.

 

여기 모이신 각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실한 기도의 사람이 되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또 교회와 공동체와 가정을 위해서 중보기도자로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 위에서 말씀드렸지만 공동체적인 회개와 연합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역사하심을 보게 됩니다. 물론 사무엘과 같은 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기도 하시지만,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한 마음으로 모이지 않았다면, 사무엘은 그 회개의 시기가 차기까지 회개를 선포하며 기다려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한마음으로 모이고 온전한 마음으로 회개를 이루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작게는 우리 가정이, 또 교회가 또 민족이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찾으면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고 용서하시고 온전케 하시고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한 마음으로 연합된 마음으로 오직 주님만 섬기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용서받은 이유는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였기 때문입니다.

 

잠시 말씀드렸지만 요즘도 여기 저기서 미스바 대 성회 라는 이름을 가지고 기도 모임을 하는 연합 단체 모임이 있습니다. 보통 보수 기독교 진영에서 이런 집회를 많이 가지죠. 그런데 거기 모인 사람들이 정말 온전한 마음으로 모였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정치적인 성향이 맞는 사람들만 모여서 자신의 이권과 결속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모이는 성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회가 아닙니다.

 

기도회의 형태는 가지고 있지만 그건 기도회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온전한 마음과 온전한 연합, 그리고 온전한 회개입니다. 자신들이 옳고 다른 것들은 틀렸다는 것은 바른 회개의 자세도 아니며 바리새인들의 모임일 뿐인 것이죠.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온전한 회개와 연합이 이 땅 가운데, 또 각 교단과 교회위에, 또 가정위에 임하길 중보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내 안에 감추어둔 우상이 있나요? 우상을 버리기 위해서 내가 취해야 할 조치는 무엇인가요?

 

질문2.

나는 사무엘과 같이 가정과 교회를 위해 부름받은 중보기도자임을 믿으시나요? 나의 중보기도가 필요한 곳은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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