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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군의 느릿느릿

부름받은 사무엘

by 터틀곽 2023.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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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름 받은 사무엘

(삼상 3:1~14)

 

오늘의 본문은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께 처음 부름을 받을때의 상황이 기록된 본문입니다. 사사시대가 끝나고 사무엘서를 통해서 이제 제사장과 왕정시대가 열리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아이 사무엘이 라고 시작하고 있는데오. 이 말씀을 통해서 아직 사무엘이 장성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음을 보게 됩니다.

 

요즘도 그런 부모님들이 계신지는 모르겠는데요. 제가 신학교 다닐때만 해도 나 엄마가 서원해서 신학교 왔어 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어요. 이름까지 사무엘이다 그러면 거의 맞다고 보면됩니다. 아마 오늘의 본문이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요. 요즘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하나님께서 임신하지 못했던 한나에게 태를 열어주셔서 한나가 잉태한 사내아이인 사무엘을 하나님께 서원하여 드립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엄마의 젖을 떼자마자 지금으로 말하면 교회와 같은 곳이죠. 제사장 엘리의 집에서 지내게 됩니다. 우리가 어제와 그제의 본문을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엘리의 아들과 비교되는 인물이 바로 사무엘입니다.

 

엄마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태어난 아들 사무엘은 그 태생부터 조금 남달랐으며, 또 그 서원대로 하나님께 드린바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을 드러내고 있는 내용이 오늘의 본문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본문 1절을 조금 더 살펴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사무엘이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라는 기록이 있는데요. 가나안 정복을 끝내고 사사 시대 때만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주 말씀하시고 그들을 기이한 방법으로 인도하시던 하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였다고 하는데 그 말씀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이 드물었다는 말씀과도 같습니다. 그 이유는 사사기 마지막 2125절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는데요.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라는 기록으로 사사기가 끝납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각기 다른 해석으로 접근할 수 있는데요. 첫번째로는 정치적인 접근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우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사사기의 마지막 구절을 저렇게 기록했을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사회학적인 접근으로 보자면 타당한 접근일 수 있죠. 당시에 이스라엘은 모세나 여호수아, 그리고 여러 사사들을 통하여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어찌보면 제사장이나 하나님과 직접 교통을 하는 카리스마 있는 한 명의 지도자 중심의 통치였던 것이죠. 하지만 주변 나라들은 왕이 있었고 왕 아래 대신들이 있었고 이러한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와 같은 왕정국가를 바래왔던 것이죠.

 

두번째 이유는 영적인 이유 입니다.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동했던 이유는 이제 영적인 질서를 사무엘이라고 하는 제사장을 통해서 새롭게 세우겠다고 하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죠.

 

그래서 어제의 본문인 235절에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충실한 제사장을 보는 견해도 두 가지 입니다. 첫 번째는 본문의 흐름상 사무엘로 보는 견해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이 죽은 이후에 엘리도 죽고 사무엘을 통해 제사장 직분이 세워집니다. 그래서 이 충실한 제사장이 바로 사무엘일 것이다. 라고 보는 견해이고요. 두 번째 견해는 열왕기상 2장에 기록된 것처럼 엘리에게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셨다는 구절대로 엘리의 후손인 아비아달이 제사장 사독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무엘이 세워지는 시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와 그의 아들들에게도 들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며. 이제 사무엘이라는 어린 소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과 계획을 펼쳐나가실 것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죠.

 

본문 2절을 보면 엘리가 많이 늙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의 눈이 어두워져 잘 보지 못 할때라 말하고 있는 것이죠. 이제 엘리는 기력이 다하여서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처소에 누워있었고 3절에 보면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워있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그런 설교도 들어본 기억이 있습니다. 비속어를 써서 죄송합니다만 진짜 이런 단어를 쓰셨던 기억이 있어서요. 바로 엘리는 자기 집에 누워서 자빠져 자고. 사무엘은 교회를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라는 설교였었는데요.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긴 하지만 조금 지나친 확대 해석이죠.

 

이미 엘리는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제사장의 직무를 보기가 힘든 상황이었고, 엘리의 두 아들은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기 보다는 죄를 짓기에 바쁜 이들이었고, 그나마 멀쩡한 사무엘이 어린 나이었지만 성전에 있었기 때문에 성전의 업무를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성전에 모이기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곳에 거하는 것은 복된 일이기는 합니다만 꼭 어떤 특정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사무엘이 부름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무엘을 택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그 안에 있었던 것이죠.

 

본문 4절부터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네 번이나 부르십니다. 처음 사무엘이 그 음성을 듣자 엘리가 자신을 부른 줄 알고 엘리에게로 갑니다. 그러자 엘리는 자신이 부른게 아니니 다시 가서 자라고 하죠. 그렇게 세 번까지 동일하게 부르시자 이제 엘리가 그제야 눈치를 채고 누웠다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습니다. 라고 말하라고 전하여줍니다. 사무엘이 주님의 음성을 분별하지 못하고 엘리에게로 간 것은 7절에 기록된대로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라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사무엘은 성전에서 일은 하였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신탁을 행하는 일이 아닌 단순하게 엘리를 도와 허드렛일만 해왔던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을 때 그제야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부르셔서 경고의 메시지를 명하십니다. 그리고 그 경고의 메시지는 바로 엘리의 집에 말한 것을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말씀이었죠. 그 말씀은 어제의 본문이었던 227절부터 36절의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엘리의 죄악을 13절에 한번 더 사무엘에게 일러주십니다.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린 사무엘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무엘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엘리는 자식들이 제사장 가문으로 태어나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 받은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저지르는 행악을 만류하거나 금하지 않았습니다. 어제의 본문으로도 보았지만 그렇게 하지 말라. 라고는 말하였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 일을 해결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죠. 결국 자기 자식의 그릇된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 집안이 저주를 받게 되는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크셨는지 제물로도 예물로도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때로 성경에서 이같은 내용이 등장할 때 설교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왜냐면 자녀의 신앙에 관한 문제를 다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으로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체감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바램 대로 잘 자라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그치지 않아도 신앙생활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키도 쑥쑥 크고 대인관계도 잘하고 누가봐도 자랑할만한 자녀로 성장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참 그게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리고 남의 자식은 다 잘 크고 잘하는 것 같은데 우리 자녀만 부족한 점이 보이고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고 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또 부모는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죄책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내가 자녀교육을 잘못시켜서 그런가? 내가 더 자녀 교육을 잘 시켰더라면, 내가 더 많이 기도했더라면, 내가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주었더라면 이보다는 잘 크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부모는 이러한 책임감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존재인 것이죠.

 

그렇다고 마냥 외면할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부모이기에 자녀를 양육해야 하고 가르쳐야하고 때로는 훈계와 책망을 통해서 가르쳐야하고 또 사랑을 베풀어주어야 하는 존재가 부모인 것이죠. 그래서 그만큼 부모의 모범과 기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라고 해서 자녀를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자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것도 아니죠. 언젠가는 나도 그렇고 나의 자녀도 그렇듯이 하나님 앞에 개인적으로 서야 할 한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장과 3장의 말씀을 통해서 한나와 엘리의 신앙의 자세를 살펴볼 수는 있습니다. 가장 귀하고 소중하게 얻게 된 아들이었지만 자신이 그 소유권을 주장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서원하여 드린 한나의 믿음을 볼 수있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받은 제사장 가문이었지만, 자녀의 악행 앞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던 엘리의 무책임함을 볼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독립하여 하나님 앞에 한 객채로 서기 전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자녀의 신앙을 양육해야 합니다. 교회와 가정에서의 삶이 일치가 되어 어디서든 자녀들이 부모의 믿음을 보고 몸에 체득할 수 있게 해야합니다. 저희 아버지께는 조금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의 신앙의 교육은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았음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교회와 집에서의 생활이 신앙으로 일치하셨기 때문입니다. 많이 배우시진 않으셨지만 어머니의 입술에서는 늘 선한 말씀과 찬송과 하나님을 향한 겸손이 늘 충만하셨습니다. 제가 어긋난 길로 나갈 때도 늘 신앙의 관점으로 훈계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인식을 늘 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시절을 기억하기 때무닙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심판의 경고를 그 사건의 당사자이자 아버지였던 엘리가 아닌 어린 사무엘에게 주셨을까요?

 

그것은 이제 사무엘을 통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도록 세워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제사장의 직분은 속죄의 길을 여는 직분을 가진 사람입니다. 곧 죄악 된 인간과 하나님의 길을 여는 직분이 바로 제사장의 직분인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엘리와 엘리의 두 아들의 죄를 들어 심판을 경고하시고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이제 그 직분을 감당해야 할 사무엘에게 제사를 멸시하는 자가 받을 저주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무엘이 그와같은 전처를 밟지 않도록 그런 죄악에 물들지 아니하도록 하나님이 제정하신 제사를 멸시하면 그 죄는 더 이상 속할 수 없는 죄임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어린 사무엘에게 이와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은혜는 예수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하여 누리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택함을 받은 족속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며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인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직분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시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모두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할 직분입니다. 그 누구도 이 일에 있어 소홀히 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예배하는 일, 비단 성전에 모여 예배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든 태도를 통해 하나님을 기억하고 인정하며 살아가기에 힘쓰며 우리의 자녀들에게 바른 신앙과 삶의 태도를 계승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는 어떤 형태로 부르실까요? 나는 그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어떻게 응답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질문2.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처럼 살아가고 있나요? 내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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