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왕이되다
(삼상 10:17~27)
오늘의 본문은 사울이 왕으로 선택되는 과정이 기록된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사무엘과 사울이 만나게 되었죠. 그리고 사무엘이 사울에 머리를 붓고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십니다. 어제의 본문으로는 사무엘이 사울에게 임할 징조를 보여주었고, 그 일들이 실제로 이루어졌지만, 사울 본인은 집으로 돌아가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인이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일에 대해서 함구한 이유를 성경에서 밝히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이를 통해서 그당시 사울의 겸손함과 신중함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오늘의 본문 17절을 보면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부르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이 미스바는 기념비적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으로 인하여 고통받을 때 이 미스바에 모여서 영적 대각성 운동을 실시하였고, 그들이 다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장소이기 때문이죠. 사무엘이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은 이유는 사울을 왕으로 선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18절과 19절을 통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역사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다시 한번 상기시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지시고, 재난과 고통 중에서 구원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번 일러주었습니다.
사무엘이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옛적의 일들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이른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첫 번째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한 지적입니다. 너희 조상들의 역사를 보라. 애굽에서 종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놀랍고 기이한 방법으로 홍해를 건너고, 40년동안 광야를 지나며 너희를 먹이시고 입히셨던 하나님, 그들을 대적하는 나라의 손에서 건지시고 광야에 길을 내고 물을 먹이셨던 하나님을 너희가 스스로 져버렸음을 기억시켰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케 함으로 인해서 그들이 왕을 요구하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이로 인하여 일어날 일을 역사적으로 기록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경솔하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당할 심판에 대해서 너희는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음을 기억시키려는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사무엘 선지자는 19절 말씀에 다시 한번 너희의 하나님을 버리고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도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두 번째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의 은총으로만 살아갈 수 있음을 사실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너희의 조상들이 이와 같은 은혜로 살았으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으신 언약이 여전히 유효함을 드러내는 말씀과도 같습니다.
사실 이 정도까지 말하였다면, 이제라도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다시 돌이켜야 하지만 어느 이유인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진 채로 그 길에서 돌아오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에베소서 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18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죠.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이 굳어진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목이 곧은 백성이라 하는 말씀도 같은 맥락의 말씀이죠. 저는 성경을 묵상하면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까지 굳어진 마음이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묵상하면서 내려진 결론은 그들의 조상들이 자손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의 본을 서서히 잃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홍해가 갈라진 이후, 하늘에서 만나를 먹은 이후, 요단강을 건넌 직후, 여리고가 무너진 이후, 그들의 삶의 태도는 이와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내고 그 땅에 정착한 이후 그들의 신앙의 태도는 서서히 변질되어 갔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놀라운 은혜들을 경험하였지만, 정착민으로 편안한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던 이야기는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자녀들에게 더이상 자신들을 인도한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던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고, 하나님 신앙을 떠나 살기 시작했습니다. 레위족속과 제사장 가문마저도 하나님을 섬기는데 소홀하며 죄악을 범하는데 더욱 앞장섰으니 더 할 말이 없었던 것이죠.
결국 그들이 굳은 마음이 된 것은 제사장 나라의 정체성을 자손들에게 전수하지 않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데 서서히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죄는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갑작스럽게 칼을 목에 들이밀고 하나님을 섬길 것이냐 다른 신을 섬길 것이냐 라고 물어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연약한 부분들을 조금씩 갉아먹으면서 서서히 하나님을 떠날 환경을 조성합니다. 만약 우리의 영역에서 한 부분씩 잠식시켜오는 죄의 악함을 물리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우리는 오늘의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처럼 굳은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떠나는 인생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왕을 뽑기 위해서 제비뽑기 방법을 사용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지도자로 간택하였음에도 제비뽑는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사울이 뽑히는 과정을 투명하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여줍니다.
예전에 나침반이라고 하는 유투브 채널에서 어떤 목사님께서 이런 주제로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기도해도 안되는 것은 안되고, 기도 안 해도 되는 것은 된다. 라는 주제를 가지고 기도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신 적이 있습니다.
오늘 사무엘이 이스라엘 지파 중 왕을 간택하는 과정에서 행여나 다른 지파, 다른 사람이 뽑힐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면서 제비를 뽑았을까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별로 떨림이나 두려움 없이 자신있게 제비를 뽑았을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이미 사울을 왕으로 세우시겠다고 사무엘에게 말씀하셨고, 그 사울을 미리 만났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베냐민 지파에서, 마드리의 가족이, 또 기스의 아들인 사울이 뽑힙니다.
이미 간택이 된 상황 속에서 제비뽑기를 진행했던 이유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수긍할만한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 없이 사무엘이 백성들을 모아두고 하나님께서 베냐민 지파의 사울을 왕으로 선택하셨다. 라는 말을 공표한다면, 아마 영향력 있는 큰 다른 지파들이 들고 일어섰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베냐민 지파는 가작 작은 지파였기 때문에 더욱 다른 지파의 공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컸을 것입니다. 이미 오늘의 본문을 보면 그러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죠. 본문 마지막 구절인 27절을 보면 불량배들이 사울을 대해서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라고 멸시하면서 예물도 바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나마 이런 과정을 투명하게 거쳤기 때문에 이 정도이지, 아무런 과정 없이 사울을 세웠다면 그 여파가 더 컸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인 기념비가 세워진 미스바라는 장소를 일부러 선택하여서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긍할만한 제비뽑기 과정을 거쳐서 사울을 뽑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발견할 수가 있죠.
그러면 사울이 뽑혔으면 사울이 앞으로 나와야 하는데 사울이 안 나옵니다. 21절에 보면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한지라.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어봅니다. 그 사람이 여기에 있습니까? 라고 묻자 하나님께서 그가 짐보따리 사이에 숨어있다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러자 그들이 달려가서 사울을 데려오는데 그의 키가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크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죠.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크다는 것은 한 2~30센티는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울이 그 큰 몸을 구겨서 짐짝 사이에 왜 숨어 있었을까요? 이미 사무엘을 만나 기름부음을 받았고 자신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택된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 왜 거기서 짐짝 사이에 몸을 욱여넣고 숨어있었을까요?
처음 사무엘을 만난 사울의 모습을 보면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9장 21절을 보면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 그를 왕으로 세우겠다고 말하자 사울은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닙니까, 그리고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한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라고 대답하지 않았습니까?
아마 자신은 자격 미달이다. 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담감이 누구보다 컸을 것입니다. 지파 중에서 가장 작은 지파이며 그중에서도 연약한 가문이었기에 더욱 부담감이 커서 이 일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숨어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누구보다 왕을 간절히 원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울을 짐짝 가운데서 찾아내 그를 앞으로 데려와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게 합니다.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이 사울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불량배의 무리도 있었습니다만 사울은 그 앞에서 잠잠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 왕으로서의 기반을 마련하지 못했기에 이러한 상황에도 잠잠하였는지, 아니면 그의 성품이 그때에는 온유하고 겸손하였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두 가지 이유가 함께 공존하기는 했을거라 생각합니다. 만약 그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가 이후에 그들을 불러내어 징벌을 내리거나 했었다면 잠시 사자의 발톱을 웅크리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런 내용이 이후에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아 지금의 사울은 이러한 상황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두 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강팍한 마음과 굳은 마음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과, 처음 왕이 되었을 때의 겸손함을 가지고 있던 사울입니다. 하지만 사울도 점점 그 마음이 강팍해져 나중엔 자신의 사위인 다윗을 죽이려 하였고, 무당과 점술가들을 의지했던 사울의 말로를 잘 알고 있죠.
깨어있으라 라는 성경의 명령은 가벼운 명령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이 잠들어 있고 총명함을 잃어버리게 되면 우리의 심령은 굳은 마음이 되어 하나님보다 죄를 더 가까이 함으로 하나님을 얼마든지 떠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우리 모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거울삼아 날마다 깨어있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그 뜻에 순종하기를 선택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질문1.
나를 자주 넘어지게 만드는 죄의 유혹은 무엇인가요?
질문2.
나는 깨어있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