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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군의 느릿느릿

엘리에셀의 간증

by 터틀곽 2022.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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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에셀의 간증

(24:28~53)

 

오늘의 본문은 엘리에셀의 간증이 기록된 본문입니다. 엘리에셀이 하나님께 기도한대로 리브가를 만나고 리브가와 함께 그 집으로 가서 자신이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리브가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간증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이 한명 더 등장하죠. 바로 라반이라고 하는 인물인데요. 이 라반은 리브가의 오빠이기도 하고, 또 이삭의 아들인 야곱의 외삼촌이 되는 인물입니다. 사실 오늘의 본문에서는 라반의 지분이 크게 나와 있지는 않지만, 야곱이 형 에서의 복수를 피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했을 때 라반을 통해서 여러 어려움을 당한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죠. 그 인물이 바로 라반입니다.

 

라반의 성품을 유추할 수 있는 본문은 야곱의 때에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지만, 오늘의 본문에도 그가 주목하여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30절에 보면 누이의 코걸이와 그 손의 손목고리를 보고 라는 구절을 보아도 라반은 재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도 라반의 두 딸을 아내로 맞이할 때 라반에게 속임을 당하고 또 보수 없이 오랜시간 일했던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엘리에셀이 리브가에게 코걸이와 손목고리를 미리 내어주지 않았으면 이러한 환대를 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하지만, 어찌되었건 아브라함의 명을 따라 아내를 찾아야 하는 엘리에셀의 위와 같은 행동은 라반의 환심을 사기에 적합했던 것 같습니다.

 

31절의 라반의 언행도 그러하죠. 라반이 이르되 여호와께 복을 받은자여 들어오소서 어찌 밖에 서있나이까 내가 방과 낙타의 처소를 준비하였나이다.

 

당시 풍습이 나그네와 객들을 극진하게 섬기는 것이 풍습이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만, 라반이 엘리에셀을 지극히 섬기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 라고 엘리에셀을 칭하고 있죠. 이 구절을 미루어보아 당시 나홀의 성 메소포타지역도 야훼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아직 엘리에셀이 어떤 방법으로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해 설명하기도 전인데, 엘리에셀을 향하여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 라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 리브가가 들고 온 코걸이와 손목의 팔찌를 보고 많은 재물을 가진 인물일 것이다. 낙타도 열필이나 끌고 왔으니 얼마나 부호일 것인가? 라고 인식하지 않았을까요?

 

오늘의 본문만 가지고 라반의 성품을 판단하는 것이 좀 억지스럽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후에 나타난 라반의 행동과 성품을 보더라도 라반은 재물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반과는 인물과 또 다르게 상반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바로 엘리에셀입니다.

엘리에셀은 리브가의 집에 도착한 이후에 라반의 환대를 받습니다. 그리고 먼길을 온 엘리에셀에게 잔치를 배설해주는데요. 엘리에셀은 자신이 맡은 소명을 잊지 아니하고 내가 할 말을 먼저 하는 것이 우선이다. 라고 하면서 어떻게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되었는지를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리브가를 만나게 되어 리브가가 자신이 기도했던 대로 응해준 여인임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엘리에셀의 간증과도 같은 이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냥 우연히 리브가가 물을 뜨러 갔는데 낙타를 끌고 온 이방인들이 물을 달라고 하여 물을 길어준 것 뿐인데, 갑자기 그러한 리브가를 향하여 내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될 사람을 찾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믿기 어려운 행동 아닐까요?

 

하지만 엘리에셀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 스토리를 리브가의 가족에게 전해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내용이 성경에 담겨져 있고 실제로 아브라함이 엘리에셀에게 이삭의 아내를 고향 땅에서 찾으라고 했던 내용이 사실이기에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이 거부감이 없지만, 사실 리브가와 그 가족의 입장으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내용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나홀의 집안은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동생이기는 했지만 아브라함은 이미 고향을 떠난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고 그 이후 아브라함의 행보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다짜고짜 아브라함의 종이라고 하는 인물이 와서 내 주인의 명을 받아 자기가 여기까지 나아왔고, 또 자기가 간구한대로 때마침 리브가를 만나 이 여인이 내가 드린 기도의 응답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친족이라는 이유는 빼고요. 만약 여러분게 딸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말을 하면서

신부감을 찾아왔으며 내가 기도했던대로 당신의 딸이, 혹은 여동생이 그와 같은 응답입니다. 라는 말을 한다면 어느정도 수긍할 수 있으신가요? 아마 좋은 마음으로 선뜻 응하기가 좀 어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엘리에셀은 담담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 없이 자신의 간증과 같은 스토리를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엘리에셀은 위와 같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엘리에셀이 하나님께 올려드렸던 기도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12절과 4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라고 말하는 그 기도의 고백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48절에도 이렇게 말하고 있죠.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라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엘리에셀의 그 확신에 찬 간증은 자신의 삶과 또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삶의 여정 가운데서 경험해왔던 믿음의 고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오랜 시간 동행하면서 아브라함이 믿고 따랐던 그 신앙의 길을 엘리에셀도 함께 보며 경험하였던 것이죠.

 

나의 주인의 삶을 신실하게 인도하셨던 하나님이 여전히 나의 주인인 아브라함의 바람과 기도를 들으시고 인도하시고 계심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종도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께 순적하게 그 여인을 만날 수 있도록 바라고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 그때 리브가를 보내셨다고 확신하며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간증이라고 하는 것, 특별히 개인적으로 경험되어지는 놀랍고 신비로운 일들을 때때로 경험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도 크고 작은 믿음의 간증들이 있으실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특별한 사건, 내가 간증이라고 부를만한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일어났을 때, 그때만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여전히 내 삶을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면서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 집중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간증의 고백들이 생겨납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지 않다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났을 때,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때가 되어야지만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는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경험하는 일들이 실제적인 믿음의 고백이 되는지 정말 간증이 되는지도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간증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해본다면, 사람은 기도 응답의 주체가 될 수 없기에 그렇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사실 간증이라고 하는 이 믿음의 고백은 그러한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믿음의 고백의 연장선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49절의 말씀을 통해서 엘리에셀의 믿음의 자세에 대해서 한 번더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죠.

 

이제 당신들이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내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알게 해 주시고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내게 알게 해 주셔서 내가 우로든지 좌로든지 행하게 하소서

 

내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이라는 말은 리브가를 내 주인의 아들의 부인으로 보내주려거든 이라는 말과 같죠. 그렇다면 내게 알려주시고, 또 거절할지라도 말해주어서 내가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말해 달라고 이야기 합니다.

 

엘리에셀은 자기가 기도한 대로 리브가가 자신에게 나아왔지만, 만약에 리브가와 그 친족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혼인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아니라면 다른 곳으로 나가서 주인의 명령에 따라 행하기로 결심한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할 때, 그것만이 옳고 그것이 아닌 것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전능하심을 인정하는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만 또 다른 이유는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이유 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엘리에셀의 고백을 보면, 나는 기도한 대로 리브가를 만났고, 또 그의 친족들을 만나 긴 이야기를 전하였지만, 만약 리브가와 그의 친족들이 환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실패와 성공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엘리에셀의 믿음을 볼 수 있는 것이죠.

 

결론적으로는 라반과 그의 가족은 리브가를 아브라함의 집으로 보내기로 합니다만, 우리는 오늘의 본문에 등장하는 이 엘리에셀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에 도전을 주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는 우리의 삶의 여정을 통해서 경험되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나의 삶이 믿음의 간증으로 고백 할 수있는 삶이 되도록 계속해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생각한 대로 내가 기도한 대로 응답 되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계속해서 의지하고 나의 기도에 믿음의 고백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임을 고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믿음의 여정이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여정이 되도록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나의 삶 속에서 정말 하나님이 인도하셨다. 라고 고백할만한 간증이 있으신가요? 그때 내가 경험했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신비로움은 어떠하였나요?

 

질문2.

내가 기도한 대로 응답되지 않았지만, 나의 삶의 방향을 새롭게 인도하신 하나님을 경험하신적이 있으신가요? 내가 여전히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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