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은 하박국서입니다. 하박국은 소선지서 중에 한권인데요. 초기 앗수르 시대를 배경으로 한 호세아서, 요엘서, 아모스서, 오바댜서, 요나서, 미가서 등이 있고, 후기 앗수르와 바벨론 시대를 배경으로 한 나훔서, 하박국서, 스바냐서, 그리고 바사 시대(페르시아)를 배경으로 한 학개서, 스가랴서, 말라기서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바벨론은 B.C. 612년에 앗수르를 멸망시키고, B.C. 605년에 애굽의 느고를 갈그미스에서 격파하여 중근동의 신흥 강대국으로 급부상하였다. 그리고 유다 민족이 처음으로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을 때인 주전 597과 605년 사이에 하박국기 기록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포로기에 쓰여진 책이죠. 혹자들은 예래미야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고 예루살렘에 살았었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유다 왕국. 하박국 선지자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다만 3장에 음악 전문 용어들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성전 예배 및 찬양과 밀접하게 관련된 인물로 추정되며 자연히 그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사역했으리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하박국은 총 세 개의 단락으로 구분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어떤 내용을 질문하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나님이 해주시는 그러한 내용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요.
하박국은 짧은 3장의 성경으로 되어 있는데요.총 두 번의 질문과 두 번의 대답, 이후에 3장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인 2장 9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에 대한 내용입니다.
특별히 하박국서는 신정론적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내려지는 책입니다. 이 큐티 본문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그렇게 잡은 것 같습니다.
저번주에 나누었던 욥기의 내용이 신정론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책이라면 이 하박국서는 신정론적 질문에 아주 속 시원한 해답이 담겨져 있습니다.
1장 4절의 질문, 그리고 12절부터 17절까지의 질문은 왜 악인은 형통하고 의인은 고통받습니까? 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오늘 본문중의 내용에도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 해주신 대답은 압제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입니다. 특별히 지금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을 위로하시고, 압제하고 있는 바벨론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예언적 말씀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9절에 나오는 높은데 깃들이며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이들은 바벨론을 의미합니다.
높은 곳에 깃들이는 동물은 독수리입니다. 자신의 거처를 안전하게 하고 지키기에는 높은곳을 차지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래서 높은곳에 성벽을 쌓은 바벨론, 그리고 부당한 이익은 전쟁에서 빼앗은 것이나 조공으로 받은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2절에서도 피로 성읍을 건설하였다. 불의로 성을 건축하였다는 것도, 노예들의 노동을 착취하여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려는 바벨론을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시는 말씀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심판의 말씀은 18절-19절 말씀입니다.
화있을진저라고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할 때에 그들이 섬기던 우상, 나무로 만들고 돌들을 섬기는 바벨론 우상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심판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생기가 없음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나무던, 돌이던, 금이던 은이던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우상들은 생기가 없는 껍데기임을 가르쳐주고 계신 것이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기는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가르쳐 주시면서 20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만이 참된 하나님임을 가르쳐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저는 총 3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사실 우리중에 가난한 자를 압제하여 그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남의 것을 탈취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위치적으로 내 자신이 높은 곳에 있다면 어떨까요?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언젠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기에 첫째로 여러 권한을 갖게되고 일을 분배해주는 위치에 있을수도 있게 됩니다. 그런 상황이 올 때 이 말씀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직접적으로 이러한 압제를 받지 않더라도 내 주변에 이런 불평등한 압제를 받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니지만, 나의 동료나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위로부터 이러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죠.
마지막 세 번째로는 가정에 대입해 보았습니다. 보통 부모님들이나 절대적 권력을 쥐고 있는 아내나, 남편이 될 수 있겠죠.
내가 가진 힘으로 나보다 연약한 자녀들이나 아내나 남편을 억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군가를 압제할 수도 있고 압제당할수도 있는 위치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압제당하는 이들을 분명히 신원하실 것이고, 압제하는 이들을 심판하실 것임을 하박국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질문 1.
나는 직장에서, 혹은 가정에서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존재 인가요? 내가 알게 모르게 누군가를 압제하거나 강압적으로 나의 생각이나 분노를 전이시킨적이 있으신가요?
질문 2.
나의 주변에 압제 받고 있는 이웃이나 자녀들이 있나요? 교회공동체는 압제받는 이들을 위해서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고 어떻게 그들을 도와주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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