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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군의 느릿느릿

시므이와 므비보셋

by 터틀곽 2023.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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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므이와 므비보셋

 

(사무엘하 19:16~30)

 

산상수훈에 예수께서는 복 있는 사람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한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다. 이 마음의 청결은 그 사람의 내면과 중심을 이야기 하는 것이죠. 우리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두고 표리부동하다. 라고 말하는데요.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과 속으로 가지는 생각이 서로 다른 것을 말합니다.

 

저도 그렇지만요,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이 표리부동한 인생을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고백하고 기준으로 삼기에 그런데요. 말씀을 읽고 들음으로 머리로는 이해하는 지식은 있으나 깨닫게 하신 그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기독교의 핵심 진리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죠. 이웃도 사랑하기 어려운데 나아가서 네 원수를 사랑하라. 누가 왼뺨을 치면 오른뺨도 돌려대라는 말씀은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라고 생각될 만큼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예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 하셨던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그 마음에 품은 뜻과 입 밖으로 내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청결한 마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정제되고 순화되고 가꾸어진 마음이 되는 것이죠. 그 마음으로 하는 참된 말과 행동으로 인해서 다른 이에게 생명과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다윗이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오는 여정에 두 명의 인물을 만납니다. 한 명은 시므이고 다른 한 명은 므비보셋인데요. 이 두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다윗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먼저 다윗은 시므이를 만나는데요. 이 시므이가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다윗이 압살롬에 의해 자신이 거하던 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길에 만났던 인물이죠. 사무엘하 16장에보면 시므이의 출신과 그가 행한 행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사울의 친족이었으며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죠. 다윗이 도망가는 그 길목에 나와 계속해서 다윗을 저주하였습니다.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라고 말하면서 다윗을 저주하였습니다.

 

그러자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참다 못해 저 죽은 개의 목을 내가 치겠습니다. 나를 보내주십시오. 라고 말하자 다윗이 아비새를 향해서 스루야의 후손들과 저 시므이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저는 나를 욕하고 있는 것이니 그냥 내버려 두라. 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말은 하였겠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비참하고 괴로웠을까요?

 

그러거나 말거나 시므이는 계속해서 다윗과 일행이 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정말 성실하리만큼 그 산비탈을 따라가면서 돌을 던지고 먼지를 날려댔다고 기록되어 있죠.

 

그런데 이제 압살롬의 반역이 끝나고 다윗이 다시 왕으로 추대되어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시므이가 급하게 유다 사람들과 함께 다윗을 맞으러 내려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므이가 자기 혼자만 내려온 것이 아니라 베냐민 사람 천명과 사울 집안의 종 시바와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을 데리고 다윗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서는 다윗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는데요. 내게 죄를 돌리지 마십시오. 예루살렘에서 나오던 날 제가 했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고 왕의 마음에 두지 말아주십시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므이의 자세가 좀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왜 그런가요? 정말 자신이 잘못을 구하러 나왔다면 혈혈단신으로 다윗 앞에 나와서 바짝 엎드려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혼자만 나온 것이 아니라 베냐민 사람 천명, 그리고 사울의 종 시바와 그의 열 다섯 아들과 종들을 데리고 나옵니다.

 

특히 이 시바라는 인물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의 종으로서 다윗이 도망갈 때 먹을 음식과 포도주를 싸들고 와서 다윗을 섬겼던 인물이죠. 하지만 그 섬김은 다윗을 속이기 위한 것으로서 므비보셋을 음해하고 거짓으로 다윗을 속임으로 므비보셋의 재산을 착복한 인물 이었습니다.

 

시므이가 시바까지 데려온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다윗이 분명 피난길에 있을 때에 시바를 통해서 여러 음식과 포도주를 대접받았으니 그 사실을 다윗에게 상기시켜서 자신의 받을 죄과를 상쇄시키기 위한 작전으로 그와 그의 아들들과 종까지 데리고 나왔던 것이죠.

 

그리고 베냐민 사람 천명을 데리고 왔다는 것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자 함입니다. 한 번에 천명의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베냐민 지파에서 자기가 가진 위치가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환궁하여서 자신의 입지를 다시 탄탄하게 다져야 하는 입장이기에 아무쪼록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많이 확보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므이는 이 모든 정세를 잘 파악하고 다윗에게 나와 아첨하면서 은근히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있던 것이죠. 겉으로는 나를 용서해주십시오. 그 때의 일은 잊어주십시오. 라고 말하고 있지만, 속 마음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를 건드리는 것이 신상에 좋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베냐민 지파에서 생각보다 높은 위치에 있고, 또 왕이 도망할 때 왕을 도왔던 시바도 내 수중에 있는 사람이니 알아서 잘 처신하십시오. 라는 것을 과시했던 것이죠.

 

그러자 이번에도 그 소리를 들은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참지 못하고 다윗에게 나가 저자가 여호와의 기름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죽어야 마땅합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다윗은 아비새에게 그때와 같은 말을 또 전합니다. 22절의 기록이죠.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이 말씀을 공동번역으로 읽으면 더욱 체감적으로 다가오는데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내 일이오. 당신들 스루야의 후손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오늘 이 일에 끼여들어서 내 뜻을 막으려 하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 같소. 이런 날 이스라엘 사람을 하나인들 죽여서야 되겠소?“ 이렇게 말하고서 시므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수요일 날 다윗을 제가 참 좋아한다고 말씀드렸지만, 이 대목은 참 쪽팔린 대목입니다. 차라리 충성스럽게 자신의 곁을 지켰던 아비새를 인정하고 시므이를 처형했다면, 오히려 그 왕권을 더 돈독하게 세울 수 있었을 것인데, 시므이가 가진 재력과 위치와 권력을 받아들임으로 자신의 왕권을 세우려고 하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때 24절에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도 왕을 맞으러 내려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므비보셋은 왕이 떠난 날부터 다윗이 돌아오는 날까지 발도 씻지 않고 수염도 안 깎고 심지어 옷도 빨아입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러한 므비보셋을 보면서 어찌하여 내가 떠날 때 나를 따르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므비보셋을 책망합니다. 므비보셋은 두 다리를 다 저는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나귀를 타고 함께 다윗과 떠나려고 했으나 종이 자신을 속이고 자기를 왕께 모함하였다. 라고 말하죠. 그 종이 바로 시므이가 데려온 시바입니다. 이름도 시바에요. 한국인의 정서에 욕먹을만한 이름이죠.

 

결국 므비보셋은 다윗이 자신을 선대하고 왕의 식탁에서 먹게 한 그 은총을 잊지 않았고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도망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자기의 종인 시바를 시켜 음식을 준비하고 다윗을 따르려고 했지만, 이 시바가 므비보셋을 속이고 그 음식을 가지고 가 다윗에게 아첨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다윗이 다시 돌아오기까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다윗을 애도하고 자기를 괴롭게 함으로 그 정절을 지켰던 것이죠. 그리고 다윗이 돌아오자 버선발로 나가 다윗을 영접하고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지만, 왕께 은혜를 입었으니 왕이 옳은 판결을 내려주시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헌데 다윗은 그러한 므비보셋을 향해서 무어라 말하고 있습니까? 너가 어찌하여 그 이야기를 또 말하느냐? 그냥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어 가져라. 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러자 므비보셋은 왕께서 편안히 궁에 돌아오셨으니 시바가 다 땅을 차지한들 어떻습니까? 그로 다 가지게 하옵소서. 라고 말합니다.

 

이같은 다윗의 처사는 분명 므비보셋에게 불공평한 처사였습니다. 주인을 속이고 다윗의 환심을 산 시바의 잘못을 묻고 므비보셋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어야 마땅한 일이죠. 하지만 시바의 뒤에 누가 있었습니까? 바로 시므이가 있었죠. 다윗은 아마 이같은 사실을 염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충성스럽게 자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던,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장애를 가진 므비보셋은 천대하고 재력가의 뒤에 숨은 시바에게는 그 잘못을 묻고 있지는 않은 것이죠.

 

제가 서두에 마음이 청결한 자에 대해서 잠시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살면서 여러 이해관계에 빠질 수 있습니다. 어떤 이가 나의 삶에 더 유익을 줄지, 내가 어느 라인을 잡고 살아야 하는지 머리를 빠삭하게 굴릴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러한 세상 적인 지혜는 하나님이 비웃으실 지혜입니다. 제가 월요일에 시편 2편의 말씀을 잠시 드리지 않았습니까? 세상의 군왕들이 꾀를 내어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받은 자를 대적할 때, 하늘에 계신 이가 비웃으실 것임을 말씀 드렸었습니다.

 

시므이와 시바가 바로 이처럼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고 깔보고 있을 때, 다윗이 거기에 동조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였던 것이죠. 이런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라는 말이요. 참 멋진 말 같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강수연 배우가 처음 말했었다고 해요. 우리 신자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돈이 없지 믿음이 없냐? 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통합과 화합을 이루는 것은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진실하고 청결한 마음, 그리고 더 존귀한 가치를 추구하는 마음, 약하고 부족한 이들을 더욱 선대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청결한 마음을 추구하고 그 말씀을 더 가까이 살아내기를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만을 선대하고,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은 무시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질문2.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들이 보는 것은 하나님의 어떠함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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