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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군의 느릿느릿

기도들으시는 하나님

by 터틀곽 2023.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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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들으시는 하나님

(사무엘하 17:1~14)

 

오늘의 본문을 보면 아히도벨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이 아히도벨은 본래 다윗의 책사였습니다. 삼국지로 보자면, 유비를 돕던 제갈공명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바로 이 아히도벨이었죠. 그런데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키자 다윗을 버리고 압살롬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히도벨은 압살롬의 왕위를 굳건하게 만들기 위해서 압살롬에게 조언을 하고 있는데요. 어제의 본문에서도 이미 보아 알 수 있듯이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말을 따라서 다윗의 후궁들과 모두가 보는 백주대낮에 그들과 동침하면서 다윗의 명예를 끌어내리고 있는 것을 살펴 보았죠.

 

그런데 왜 아히도벨은 이렇게 다윗왕을 섬기다가 갑자기 반역에 동참하여 압살롬을 돕게 되었을까요? 학자들은 이 아히도벨이 밧세바의 조부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사무엘하 2334절에 보면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엘리암이 밧세바의 부친이 되는데요. 아마 아히도벨은 손녀딸인 밧세바가 다윗의 아내가 된 이후에 다윗왕을 섬기다가 다윗이 곤경에 처하자 예전의 일이었던, 자신의 사위인 우리야를 죽이고 밧세바를 취한 다윗의 행동에 실망한 그 마음을 계속 품고 있다가 다윗이 곤경에 처하자 다윗을 버리고 압살롬에게로 넘어간 것이죠.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서는 이러한 아히도벨이 또 한 번 계책을 세워서 다윗을 죽이고 압살롬의 왕위를 굳건하게 하려고 합니다. 아히도벨이 이처럼 다윗을 끝까지 추격하여 그를 멸망시키려 한 것은 자신이 다윗을 배신한 반역자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다윗이 살아있는 것이 영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다윗이 죽음을 맞이해야 압살롬과 함께 그 자리를 누리며 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인지 다윗은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자마자 다윗의 명예를 실추시킴과 동시에 이번에는 직접 군사를 이끌고 다윗을 찾아가 그를 죽이겠다고 군사를 내어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책략가처럼 말을 잘하는지 모릅니다. 병법에도 능하고 처세술에도 능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일단 다윗이 곤하고 힘이 빠져있는 지금이 적기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윗을 겁박하면 백성들이 도망칠 터이니 그러면 다윗만 죽이고 남은 백성들은 모두 압살롬 왕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자 압살롬도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의 장로들도 듣기 좋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히도벨이 낸 이 책략은 아주 뛰어난 책략이었습니다. 만약에 이대로 진행 되었더라면 다윗도 살아남기 힘들었을뿐더러 이스라엘 백성들도 큰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내 편도 없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저 사람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같이 다가와서 내 편인 것 같지만 갑자기 내 뒤에 비수를 꽂는 경우가 있고요. 저 사람은 정말 상종도 하기 싫을 만큼 미운 사람인 것 같지만 또 그 사람을 통해서 큰 도움을 받는 일도 생긴다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다윗이 자기편이라고 생각했던 아히도벨이 이제는 적이 되어 이러한 곤경에 빠지게 되었을 때, 그가 이전에 쌓아놓았던 죄악의 문제가 설상가상으로 다윗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에 다윗이 밧세바를 취하는 죄악을 범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아히도벨로 하여금 위협스러운 처지에 놓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해 한 여인을 품에 안았다고 생각했었겠지만, 그로 인해서 벌어진 일은 다윗의 생각보다 큰 일이었습니다. 밧세바는 남편인 우리야를 잃었고,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훌륭한 장수를 잃었으며, 아히도벨에게는 왕으로서의 실망감을 안겨준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때 있었던 일이 이제 나비효과와 역효과가 되어 다윗에게 돌아오고 있는 것이죠.

 

모든 일이 다 이와 같은 섭리처럼 누군가를 아프게 한 그 상황이 꼭 다시 복수로 돌아오는 경우로 발전되지는 않습니다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법은 없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도 가능하다면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만한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남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죠. 무심코 자신이 가진 힘과 권위로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을 억누르고 압제하는 그 말과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미움을 살 수도 있고 그 미움으로 인해서 곤경에 빠질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같이 좋은 계략을 들은 압살롬이 갑자기 아렉사람 후새를 부르라고 합니다. 이 후새는 다윗의 정보원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간첩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후새의 의견도 들어보자고 합니다. 압살롬은 아마 아히도벨의 기가 막힌 전략을 듣고 기분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후새의 말도 들으면 더욱 기분이 좋을 것 같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후새가 누구입니까? 바로 다윗 왕의 친구 아닙니까? 예루살렘도 정복했고 정복하는 길에 아버지의 측근인 후새도 자신을 왕으로 인정하였고, 또한 아히도벨의 전략까지 들으니 비행기를 타고 우주를 뚫고 나갈만큼 기분이 최고로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굳이 후새를 불러서 그의 의견도 듣고자 합니다. 너무 기분이 좋다보니 교만이 하늘을 찌른 것이죠.

 

그러면서 아히도벨의 전략이 이러이러하니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습니다. 이미 이것이 마음에 들지만 후새의 인정까지 받는다면 더 기분이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묻는 것이죠. 그런데 후새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이번에는 그 계략이 좋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다른 의견을 내죠.

 

다윗은 전쟁에 능하고 그를 따르는 부하들도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용사들이다. 행여나 압살롬의 군대가 패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어쩌겠느냐. 그러니 이스라엘의 군인을 바닷가의 모래처럼 모으고 친히 압살롬 왕이 선봉에 서서 전장에 나가시라. 그리고 다윗이 있는 곳만 알아낸다면 다윗 집안을 몰살시킬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죠.

 

후새가 압살롬을 더욱 더 띄워줍니다. 첫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패배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기에 모든 군사를 다 모으십시오. 그리고 그가 있는곳만 알아낸다면, 땅에 이슬에 내림같이 그 위를 덮어서 압도하여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여나 그가 작은 성에 숨는다면 모든 이스라엘 군사들이 동앗줄로 그 성을 묶어서 강으로 던져버릴수도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이미 다윗을 잡아서 승리한 것 마냥 압살롬을 높여 주었습니다.

 

압살롬이 듣고 보니 이 의견이 더욱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명예까지 생각해주는 후새의 말이 더욱 그럴싸 했던 것이죠.

 

그 이유가 14절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죠.

 

하나님께서는 후새를 사용하셔서 다윗에게 압살롬을 피해서 전열을 정비할만한 시간을 확보하게 하신 것이죠. 이스라엘 군대를 모으려면 최소 며칠은 필요했을 것입니다. 아마 아히도벨의 계략대로 하였더라면 다윗도 꼼짝없이 화를 면치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살펴보면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도망을 가면서 짧게 드린 기도가 있습니다. 바로 1531절인데요.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라고 아주 짧은 기도를 올립니다. 이미 쫓겨서 도망가고 있는 판국에 어디서 자리를 잡고 기도할 새가 있었겠습니까? 책사인 아히도벨이 반역하여 압살롬에게 돌아갔다는 말을 듣자 그의 식견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알고 있는 다윗이기에 하나님께 그의 모략을 어리석게 해달라고 읊조리듯이 탄식하며 기도한 것이죠. 그리고 그 기도 이후에 바로 후새를 만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다윗이 기도한데로 아히도벨의 지혜와 모략이 어리석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히도벨의 뛰어난 계략으로 인해서 다윗은 죽을뻔한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피할 길을 내셔서 후새를 통해서 압살롬의 눈과 귀를 어둡게 만드심으로 말미암아 그 죽음의 곤경에서 다윗을 구원하여 주셨던 것이죠.

 

때로는 기도는 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기도할 새도 없이 헤쳐나가야 하는 압도적인 문제 앞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시간을 내어 주님의 은혜를 간구 하는 것이죠. 주님 도와주십시오. 저로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원하옵건데 이 상황을 변화시켜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안위와 처지가 이전처럼 회복되도록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왕이 되어 압살롬을 물리치고 그 나라를 자기에게 돌려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자기가 감당해야할 아픔임을 겸허히 받아들인 것이죠. 그래서 기도 이후에도 여전히 그 고난 가운데서 피난의 여정을 계속해서 걸어갔던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의 기도는 거시적인 관점을 가지고 이상적이고 온전한 것들을 위하여 크게 모든 것을 품고 선포하는 기도도 필요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또 모든 나라와 족속을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의 기도는 우리에게 닥친 현실을 살아내면서 실제로 느껴지는 일상과 실존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의 기도는 우리의 삶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누리고 경험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더욱 솔직하게 나의 연약함과 쌓인 감정들을 고백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더욱 친밀하게 우리의 삶에 찾아와 주셔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중언부언 되지 않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이 짧은 기도의 고백 속에 그의 생명이 보전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드리는 일상의 기도가 우리의 삶에서 우리를 구원해내는 능력과 힘이 있음을 함께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내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나로 인해서 상처를 받거나 실망을 받은 사람들이 있나요? 나는 그 이후 그 사람과 어떤 관계로 지내고 있나요?

 

질문2.

나의 기도에는 무엇이 담겨있나요? 내가 일상에서 구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을 믿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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