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들의 계보
(창 10:1~32)
제가 예전에도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 것 같은데요. 성경을 묵상하고 설교를 하다보면 참 어려운 구절들이 등장하는데요. 오늘과 같은 본문 특히 족보가 길게 나열된 본문을 만나면 말씀을 묵상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설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노아로부터 나온 세 자녀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 1절을 보면 홍수 수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을 대할 때 참 어려움이 있습니다. 특히 주일학교 시절에는 더욱 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성경을 대할 때 문자적인 텍스트를 가장 먼저 접하기 때문인데요. 말씀을 볼 때 한글로 번역된 이 텍스트를 보기 때문에 내가 가진 배경과 문화와 지식을 바탕으로 이 텍스트를 해석합니다. 가장 원초적인 해석이죠.
그러다보니 홍수 이후에 이렇게 많은 민족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들기 마련입니다. 노아의 아들은 달랑 셋 밖에 없는데. 이 세 명을 통해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아들들이 태어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입니다. 게다가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입니까? 홍수 심판 이후 잖아요. 이 땅에 호흡하는 모든 생물, 동식물 뿐 아니라 사람들도 다 홍수 심판으로 말미암아서 죽은 이후인데, 어떻게 이러한 많은 민족들이 태어난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지 않습니까?
백번 양보해서 셈과 함과 야벳이 정말 수많은 자식을 많이 많이 낳아서 민족이 번성하였을 것이다. 라고 이해하려고 해도. 내 부모의 배에서 태어난 자녀들끼리 결혼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아버지의 형제간에 혼인한다고 해도 사촌 지간 일텐데 결혼이 가당키나 한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생각 안 해보셨나요?
그래서 결론이 무엇인가? 라고 물으신다면 사실 저는 답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에 대해서 성경에서 과학적인, 또 역사적인 증거를 말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없으니 이 사실은 믿을 수 없는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럴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창세기의 역사와 포함된 텍스트는 인간이 가진 지혜로는 다 이해하고 해석할 수 없는 영역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어렸을 적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과 문화적 지식만을 토대로 이 말씀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이해되지 않지만 성경에서 말하고 있으니 무조건적으로 역사적인 사실일거야. 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가진 배경지식과 문화적인 현상을 대입해서 억지로 이해하려고 해야할까요?
좀 어렵죠? 그러면 이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까요?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관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특히 창세기에는 특별한 흐름이 있습니다. 특별히 창세기1장부터 11장까지는 그 흐름이 더욱 명확합니다. 오히려 12장부터 등장하는 아브라함부터 창세기의 끝인 50장까지는 족장사가 기록 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적인 흐름과 시간의 흐름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도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는 어떤 주제들과 그 주제들의 흐름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처음 창세기 1장과 2장은 태고적 신비, 곧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에 관해서 기록이 되어 있고 창조주께서 인간을 창조하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3장에서는 죄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범죄함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정녕 죽으리라는 형벌을 내리시죠. 또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범죄함이 드러나고, 또 하나님께서 가인에 대해서 형벌을 내리십니다. 이를 이어보면 창조 – 범죄 – 형벌 의 순으로 되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후 5장에서는 아담의 족보가 등장합니다. 다시 생육하고 번성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창조의 내러티브가 다시 등장하고요. 홍수가 등장하는 6장에서는 다시 범죄한 사람들의 내용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홍수 심판이 이루어지죠. 그리고 이 후에 오늘의 본문인 민족의 계보가 등장합니다. 5장에 아담의 족보가 등장하여 셈과 함과 야벳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그 약속의 말씀이 10장에서 재창조의 네러티브로 다시 시작되는 거죠.
아마 토요일 주일 본문이겠지만 11장에는 다시 한번 인류의 범죄함이 등장합니다. 바로 바벨의 사건이죠. 하나님이 계신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우리의 이름을 내자. 라고 하는 그들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그 결과 언어가 흩어지고, 모든 지면에 사람들이 흩어지게 됩니다. 또 다시 범죄와 심판이 이루어지고 11장 10절에서 27절까지는 셈에서 아브람까지 이르는 족보가 또 다시 등장합니다.
이제 순서가 조금 이해가 되시나요?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는 창조 – 범죄 – 심판 – 재창조 순의 내러티브가 계속적으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제각각 다르지만 그 사건이 담고 있는 뜻이 똑같은 사이클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인 것이죠.
오늘의 본문은 족보의 등장으로 인해서 재창조의 뜻이 담겨 있는 구절인 것이죠. 그래서 오늘의 본문인 10장 5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고,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1장에서 인류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 하신 명령의 성취와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1장에 어떻게 말씀하셨나요?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라고 말씀하신 그 약속이 변치 않고 그 길고 긴 역사 안에서도 계속 반복 되어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사건의 순서를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사실 중 하나는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 이라는 사실입니다. 믿으시죠?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거할지라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 약속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임을 이 성경의 흐름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에 아담이 범죄 하여 심판 받은 이후에, 가인이 범죄하여 심판 받은 이 후에 인류의 역사가 그대로 끝이 났다면 어땠을까요? 노아의 홍수 이후에 노아와 그들의 가족은 살아 남았지만 인류의 역사가 그대로 끝이 났다면 어땠을까요?
하지만 성경은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말씀하신 바를 행하시고 하신 말씀을 실행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경 전체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들을 우리가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과학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해석 되어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신실하게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죠.
어떻게 셈과 함과 야벳을 통해 이렇게 수 많은 민족이 번성했을 수 있었을까요?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는 설명할 수는 없지만 믿음과 신앙으로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실 때부터 약속하신 언약이 있었기에 그 일들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그 선포와 말씀이,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겼던 노아를 통해, 또 그의 자손들을 통해 성취되고 있는 것을 성경을 통해 발견하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고백도 끊임 없이 이렇게 고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생각대로 잘 안되는 것들을 끊임없이 경험합니다. 내가 생각 한대로 인생이 정말 너무 잘 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손에 꼽을 것입니다. 아마 제 생각에는 5프로도 안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이 들어요.
제가 제 삶을 바라봐도 그렇습니다. 가끔 아내와 종종 하는 얘기가 있는데요. 우리가 제주도에 와서 살거 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정말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거든요. 이처럼 우리가 다 생각 한대로 계획 한대로 일이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의 삶의 고백에는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신자들의 삶을 기억하시고 붙들고 계심을 신앙으로 고백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과의 관계 아래에서 착한 일을 백 번 하면 소원하나 들어주는 그런 언약의 관계가 아니잖아요. 우리의 믿음과 신앙은 나의 삶의 양태가 어떠하던지,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가던지 그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발견하는 것이고, 또 우리의 삶 가운데 깊이 들어와 계셔서 내 삶을 주목하여 바라보시고, 하나님 자신을 여러 가지 상황과 환경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참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이 긴 본문을 통해서 의로운 노아를 선택하시고, 그의 자녀들을 통해 다시 한번 새로운 창조를 이루시고, 이 땅에 당신의 자녀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과 환경을 새롭게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비록 범죄한 이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공의로 그들을 심판하시지만, 심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와중에서도 그루터기와 같은 이들을 통하여서 다시금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되심을 발견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삶에서도 언제나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임하기를 소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 우리의 삶이 심판에 처하게 될 첫째 아담이나, 혹은 가인이나, 라멕이나, 노아의 시대에 사람의 딸들을 취하는 이들과 같은, 심판받기 마땅한 이들의 자리에서 벗어나 노아와 같은, 에녹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어 우리 각 사람을 통해 온전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러지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질문1.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하심을 고백하고 계신가요? 나의 신앙의 고백은 어떠한가요?
질문2.
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어떠하심의 간증이 있나요? 나는 그 크신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 인가요?
주님과 함께 하는 이 고요한 시간 주님의 보좌 앞에 내 마음을 쏟네
모든 것 아시는 주님께 감출 것 없네 내 맘과 정성 다해 주 바라 나이다
온 맘 다해 사랑 합니다 온 맘 다해 주 알기 원하네
내 모든 삶 당신 것이니 주만 섬기리 온 맘 다해
나 염려 하잖아도 내 쓸 것 아시니 나 오직 주의 얼굴 구하게 하소서
다 이해 할 수 없을 때라도 감사 하며 날마다 순종하며 주 따르오리다
온 맘 다해 사랑 합니다 온 맘 다해 주 알기 원하네
내 모든 삶 당신 것이니 주만 섬기리 온 맘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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