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말의 힘
(전 10:12~20)
저번에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전도자는 백성들에게 지식을 가르치고 잠언을 수집해서 연구하여 지혜 문헌을 만들어내는 집단에 속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에도 잠언이라는 성경이 수록되어 있지만, 성경에 기록된 잠언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 지방에는 잠언과 더불어 교부들의 묵언집, 탈무드와 같은 지혜 문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혜자 집단에 속하여 있던 이 전도자는 많은 잠언과 지혜서들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는데요. 지혜자는 단순히 잠언집을 소유하고 읽어주는 것 외에 그치지 않고 그 지혜서들을 수정하거나 보완하여 재창조해는 일들도 하였다고 합니다.
이 지혜라고 하는 것은 말이나 글로 전승되는 일이 참 많았습니다. 물론 우리가 삶과 행동으로써 보여줄 수 있는 지혜도 있으나 보통은 글이나 말로 전파되었습니다. 글이나 말로 전파되었던 이유는 글이나 말이 더욱 광범위하게, 그리고 다수에게 보편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인지 지혜자는 이 말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주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전도서뿐만 아니라 잠언에서도 이 말이라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죠.
오늘의 본문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요. 첫 번째 단란은 12절부터 15절까지 우매한 자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고요. 두 번째 단락은 16절부터 20절까지 통치자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 12절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는데요.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구로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말 때문에 스스로를 망하게 만드는 일에 대해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와 입장이 된다고 생각했을 때를 가정해 보면요. 말을 한다는 것은 보통 어느 지위에 올라가있는 사람들이 말을 하게 되죠. 지혜로운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그들이 가진 위치에는 힘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전하는 말에도 힘과 영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매우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전도자는 이렇게 지혜와 어리석음을 비교하여 지혜가 필요함을 계속 말하고 있는 것이죠.
특별히 전도자가 누누이 강조했던 이 말에 대하여서는 지혜자가 전하는 은혜로운 말보다 어리석은 사람의 말이 가진 파괴력에 더욱 집중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지혜로운 사람들보다 어리석은 말을 하는 사람이 더욱 많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13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죠.
그의 입의 말들의 시작은 우매요. 그의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이니라. 약간 표현이 예스럽고 거칠죠?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리석음으로 시작해서 사악한 광기로 끝난다.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는 시작과 끝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어리석은 자들의 말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4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
전도서에서는 이미 미래의 일을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이 문맥상의 질문은 말을 절제하지 않고 많이 말하는 이들의 우매함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인데요. 결국 계속 말을 쏟아낸 사람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자신에게 닥쳐올 미래에 득보다는 실이 많을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라는 질문 또한 그 말에 대해 누구도 책임을 질 수 없으며 본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지혜자는 지나친 말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자들의 노동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데요. 15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죠.
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 좀 더 나은 번역은 새번역 성경인데요.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제 집으로 가는 길조차 못 찾는 어리석은 자는, 일을 해도 피곤하기만 하다.
이 집으로 가다 라고 하는 동사에 대해서 지혜자들은 옛 속담으로 목표에 이르지 못한다. 라는 뜻으로 많이 불리웠다고 합니다. 곧 어리석은 자들은 고되게 일은 하지만 피곤하기만 할 뿐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꼬집고 있는 것이죠.
첫 번째 단락을 정리하자면 어리석은 사람은 말을 절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분별력 없는 그 말로 인하여 마주할 심각한 사태가 예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늘 수고를 감당하면서도 그 방향이 잘못 설정되어 그 앞길이 위험하다는 사실입니다. 전도자는 이처럼 말의 넘침과 노동의 넘침을 경계하면서 어리석음의 길에서 벗어나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죠.
두 번째 단락에서 전도자는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의 문제를 통치자와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 문단에서는 통치권을 발휘하는 두 집단을 비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
16절과 17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여 네게 화가 있도다
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
지혜자는 어리석은 관료들이 통치하는 나라를 향하여 화가 있도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6절에서 말하는 어린 왕은 미숙한 소년과 젊은이들을 사용할 때 쓰는 나아르 라고 하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요. 본문에서는 어린 왕을 미숙한 왕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왕은 미숙하고 아직 영글지 아니하였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선포와 비슷한데요.
이사야 5장 11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화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한 자들이여
아직 미숙하고 어린 청년이 왕이 된 것도 문제지만 이를 틈타서 아침부터 잔치하고 흥청망청한 관료들의 행태도 문제입니다.
앞서서 전도자는 가르침을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가난하지만 지혜로운 젊은이가 낫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4장 13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었었죠.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그러나 전도서의 현재의 가르침은 그 상황이 바뀌어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는 그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화가 임할 것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죠.
이들과 비교되는 통치자에 대한 말씀은 17절에 등장합니다.
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
이는 전도자가 생각하는 행복한 나라, 곧 복된 나라가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인데요.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이들이 통치하는 나라가 복이 있는 나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 다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화가 임할 나라는 아침부터 잔치하며 흥청망청 그 소유를 낭비하는 대신들이 있는 나라이지만, 복이 있는 나라는 때와 시기를 분별하여 정한 때에 먹고 그것으로 건강한 이들이 통치하는 나라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에 이르는 각 영역을 장악한 사람들은 그 힘을 과신하면서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 서로 결탁합니다. 그래서 그 과잉된 힘으로 자신의 배는 불리고 약한 이들은 억압하죠.
결국 고통받는 이들은 무고한 백성들, 시민들이 늘 고통을 받고 박탈감에 빠지게 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지도자들이 선출되어야 하는 것이죠.
16절과 17절의 말씀을 통해서 지도력과 권력을 가진 두 부류의 지배층을 묘사하면서 지도자들을 향한 삶의 태도를 반성하도록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자는 여기서 한가지 보충적인 조언을 덧붙이는데요. 18절입니다.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지혜자는 어리석은 왕과 대신들이 치리하는 나라의 종말에 대해서 묘사합니다. 게으름 때문에 서까래는 기둥이죠. 들보가 내려 앉을 것이다. 그리고 지붕이 샐 것이다.
한 나라를 한 가정이나 집으로 묘사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한 나라 뿐만 아니라 한 가정도 직무에 태만하고 게으른 이들이 있다면 그들로 인해 집이 무너지고 비가 샐 것임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전도자는 잔치를 벌이는 목적에 대해서 논하는데요. 어리석은 나라의 통치자들, 아침부터 잔치를 벌이는 이들을 향해서 잔치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19절이죠. 잔치는 기뻐하기 위하여 벌이는 것이다. 포도주는 인생을 즐겁게 한다. 돈은 여러 문제를 해결한다. 라고 말합니다.
잔치는 벌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기쁠 때 잔치를 벌여야 한다는 것이죠. 기쁠일이 없는데 잔치를 벌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낭비라는 것이죠. 잔치를 벌여서 기쁜 것이 아니라, 기쁜 일이 있을 때 잔치를 벌여야 합니다. 마실 때도 그렇습니다.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함입니다. 단지 취하기 위해서 마시는 술은 어리석은 것이죠.
월요일에도 말씀드린바 있지만 살아있음으로 인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쾌락으로 자신의 삶을 망쳐버리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 돈을 쓰는 것도 그렇습니다. 정직하게 노동하여 벌어들인 가치로 어려움들을 만날 때 돈을 사용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전도자는 말에 대한 경고를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본문을 마무리 합니다.
말을 통해서 지혜자와 어리석은 자를 판단할 수 있고, 또 어리석은 왕과 지혜로운 왕을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왕을 저주하거나 부자들을 저주하지 말 것을 말하면서 지혜를 벗어난 가벼운 언행으로 인해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지혜로워지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어리석은 이들이 되라는 법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을 절제함으로서 어리석음을 피해갈 수 있습니다. 낭비하거나 사치스럽지 아니함으로서도 우리의 재산을 지킬 수도 있습니다. 지혜와 어리석음의 경계에서 지혜를 택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말로 인하여 낭패를 보거나, 어려움을 당한 적이 있으신가요? 나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가요? 말을 절제하고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인가요?
질문2.
나는 때에 맞는 소비와 지출로 가계를 잘 돌보고 있나요? 돈을 써야 할 때와 쓰지 말아야 할 때를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나요?
'곽군의 느릿느릿'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1) | 2023.01.06 |
---|---|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모든 날, 모든 순간. (0) | 2023.01.01 |
모두가 같은 운명 (0) | 2022.12.26 |
하나님 자녀의 영광 (0) | 2022.12.23 |
누가 지혜로운 사람인가? (1) | 2022.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