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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군의 느릿느릿

내가 여호와의 집에

by 터틀곽 2022.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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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편 23:1~6)

 

오늘의 시편은 아마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한번쯤은 읽어보았을만한 유명한 성경입니다. 저도 여기 저기 식당이나, 사업장에 들어갈때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는 성구가 쓰여진 액자나 목판들을 보곤 합니다.

 

아마 그리스도인이 아닌 많은 사람들도 식당이나, 다른 사업장을 다니면서 이러한 성구가 적힌 것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이 시편 23편은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든지 사랑하는 성경말씀이기도 합니다.

 

왜 우리는 이 시편 23편을 사랑할까요?

 

어떤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해석과 고백들이 많아서 이기도 하지만 이 성경말씀이 주는 위로와 은혜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성경 연구가들은 다윗이 이 시를 언제 지었을까에 대한 시기에 대해서 의견이 나뉘는데요. 이 시편에 대한 내용으로 봐서 다윗이 목동으로 있었을 때 기록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는 의견이 있고요. 또 다른 견해는 아마 왕으로 있었을 때 목동의 때를 추억하면서 이 시를 지었을 것이다 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여러 정황으로 살펴보아 아마 왕으로 있었을 때 목동의 때를 추억하면서 기록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구조적으로 살펴보면 짧은 시 이지만 두 가지 비유가 등장함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1절부터 4절까지는 하나님을 좋은 목자 라고 비유하고 있고요, 5절부터 6절까지는 친절하고 안전케 하시는 주인으로 비유합니다.

 

먼저 좋은 목자가 주는 첫 번째 이미지는 풍족하게 채우시는 이미지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로 비유하면서 그 목자로 인하여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던 대로 왕의 입장에서 이 시를 기록하였다면, 지금은 왕이니까 그런고백을 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윗이 왕위를 차지하고 늘 태평성대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왕이 되기까지 숱한 고통과 고난을 통과해야 했으며 왕이 된 이후에도 사실 평탄한 삶은 살지는 못했습니다. 본인도 죄악을 범함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 괴로운 나날을 보냈으며, 자식들의 분쟁으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고 깨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아들 압살롬을 피해서 도망을 간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고백은 하나님은 나의 목자가 되시며, 그로 인해 내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라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세상이 주는 어떤 편안한 삶이나 부유함이 다윗에게 위로와 평안함을 줄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윗은 목동으로 있었던 그 때를 추억합니다. 때로는 서늘한 밤 밤이슬을 맞으며 옷깃을 여미고 양 떼를 지키던 그 때에, 혹은 무더운 여름 양 떼를 돌보기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양들에게 꼴을 먹이기 위해 초장을 찾아 이리 저리 움직여 다니던 그때를 추억하며 오히려 그때 내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왕의 자리에 앉아 산해진미를 먹으며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있다고 한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늘 부족한 인생이며, 차가운 바위에 기대어 서리를 맞아가는 인생일지라도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보며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때는 충만한 은혜안에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의 많고 적음을 통해 부유함과 부족함의 경계를 나눕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와 부재를 통해 충만함과 부족함을 느낍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에녹과 같이 온전한 삶을 살지는 못했을지라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자 라는 칭호를 받은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위로받는 믿음을 고백하는 인물이었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누렸던 은혜는 무엇인가요?

 

다윗이 고백하는 은혜는 푸른 풀밭에서 누우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함을 받음을 고백했습니다. 엄청난 부귀영화로 인한 감사의 고백이 아니라, 지친 육신을 잠시 쉬게할 수 있는 풀밭과 목을 축일 수 있는 물가를 만남으로 만족함을 누렸습니다.

 

 2절의 고백을 통해서도 다윗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 만을 의지함으로 누리는 만족이 가장 큰 만족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죠.

 

또한 하나님은 영혼을 소생시키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소생이라는 것은 회복을 의미하는 말이죠. 2절에서는 다윗이 육신의 쉼과 평안함을 노래했다면, 3절에서는 영혼의 회복을 노래하며 자신이 영적인 존재임을 자각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4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 골짜기라는 지형은 성경에 꽤 많이 등장합니다.

 

보통 골짜기는 두 골 사이에 깊숙하게 패어 들어간 곳을 의미하는데요. 그 측변의 벽을 곡벽이라고 하고 밑바닥이 되는 부분을 곡저 라고 합니다. 이 팔레스타인의 지형은 전체적으로 이 골짜기가 많은 산악지역 이기에 성경에서도 골짜기가 많이 등장하고 있죠.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곳도 엘라 골짜기에서 였던 것이죠. 어떤 학자들은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섰을 때를 기억하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표현하지 않았을까 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골리앗 뿐 아니라, 다윗을 해하려는 사울의 추격도 있었고요. 도망하는 와중에서도 다윗은 환대받지 못하던 존재였습니다. 외로움과 죽음의 위기를 넘어가며 살았던 다윗의 인생이었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목동으로 살아갈때는 양떼를 지키기 위해서 곰과 늑대의 위협에서 그들과 목숨을 건 사투를 치르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을 다윗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4절에서 말하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바로 그런 용도이죠. 지팡이는 이탈하는 양떼를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던 것이고, 막대기는 곰과 늑대와 맞서 싸우기 위한 무기인 것이죠.

 

다윗은 하나님의 지팡이가 나를 바른길로 인도하심을 고백하고, 또 하나님의 막대기가 다른 여러 위협에서 나를 지키시는 능력이 되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5절의 말씀에는 기름을 머리에 부으시고 잔을 넘치도록 채우시는 은혜에 대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잔치에 참여했을 때 그 사람을 높이는 방법중의 하나가 머리에 기름을 붓는것과 그 사람의 잔이 차고 넘치도록 포도주를 따르는 행위가 초대받은 이를 존귀히 하는 풍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 원수의 앞에서 나에게 상을 베푸시고 그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나를 존귀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원하심을 통해 다윗은 늘 하나님을 찬양하며 찬미하고 있는 것이죠.

 

마지막 6절에서는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따르리니 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라다프 라고 하는데요. 원 단어의 뜻이 추적하다, 뒤쫓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뒤쫓아 올것임을 고백하고 있는 신앙고백과 같습니다.

 

단지 은혜가 나와 함께할 것이다. 라고 소원하고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추적하고 뒤쫓듯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추적하여 평생동안 내게 임할 것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죠.

이를 통해 다윗이 정말 무엇을 구하며 살았는지를 이 시편 23편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의 평생에 간절히 구하고 구했던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구하며 하나님의 집에 거하기를 그 무엇보다 간절히 바랬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우러르고 한 나라에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진 왕의 신분으로 있었지만, 오히려 목동으로 지내던 시절을 추억하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가장 바라고 원했던 다윗의 고백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호를 얻으며, 날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인물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고백과 다윗의 고백을 함께 놓고 보았을 때 물론 이 진정성을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 사랑의 고백이 얼마나 진실되고, 얼마나 강렬하고, 얼마나 애닯은 고백인지 나도 알고 주님도 아실 것입니다.

 

오늘 이 다윗의 대표적인 시 23편을 묵상하면서,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추구하고 그것으로 모든 만족과 충만함을 경험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내게 부족한 것이 있다고 느껴지시나요?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요? 정말 그것이 나를 부족하게 만드는 요인인가요?

 

질문2.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함으로 모든 것이 충만해짐을 경험한 적이 있으신가요? 혹시 지금 그 충만함이 경험되지 않는다면 어떤 이유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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