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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군의 느릿느릿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by 터틀곽 2023.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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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삼상 15:10~23)

 

오늘의 본문은 주일의 설교와 이어지는 본문입니다. 주일에 들으신 말씀을 기억하시겠지만, 사울은 어찌 보면 마지막 기회를 부여받습니다. 사울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동을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베푸시고 아말렉을 물리치도록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그 명령은 아말렉을 향한 진멸의 명령이었습니다.

 

이 진멸은 히브리어로 헤렘이라고 부르는데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헤렘에 대해서 좀 나누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어제의 마지막 본문인 9절을 살펴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죠.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하나님께서는 헤렘을 명령하셨지만 사울과 백성은 이 헤렘을 지키지 아니하고 아각이 소유하고 있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기름진 것, 모든 좋은 것은 남기고 가치없고 하찮은 것만 진멸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찮게 여긴것과 다름이 없는 행위였죠. 그 이후의 본문이 오늘의 본문인데요. 사무엘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십니다. 11절인데요.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사무엘과 사울의 극과 극의 비교되는 모습이 보여집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찮게 여기며 진멸하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하찮고 보잘 것 없고 쓸모없는 것들만 진멸시키고 각종 좋은 것들은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9절에 보면 사울과 백성이 라고 기록되어져 있는데요.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와 같은 일에 사울뿐만 아니라 전쟁에 참여한 모든 백성이 한마음으로 탐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왕으로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백성들에게 잘 가르쳐야 할 책임은 잊어버리고, 왕과 백성이 이 죄악에 함께 동참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우리는 아간의 범죄로 인한 아이성 정복의 실패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서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에서 대패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사울도, 그리고 그를 따르는 백성들도 모두가 이 탐욕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명령을 하찮게 여기며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하여 전리품을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죠.

 

사울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귀하디 귀한 기회를 발로 차버리고 여전히 그 악을 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사무엘은 이 사실을 하나님께 들은 이후에 근심하며 밤을 새워 하나님께 기도하며 부르짖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사무엘이 밤을 새워 무어라 기도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제가 사무엘이었다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됐습니다. 사울은 끝났습니다. 그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믿었던 제가 멍청했습니다. 사울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제가 누구보다 잘 알겠습니다. 라고 짧게 기도하고. 아니 기도할 것도 없이 마음속으로 잠시 생각하고 아뢴 후 사울 넌 내일 죽었다. 가장 강력한 심판의 말씀으로 널 끝장내버릴 것이다’. 라고 분을 삭였을 것 같습니다.

 

한 예로 저번주 토요일 날 그저께죠. 아이들을 데려다가 저희집에서 목장 모임을 하고 배부르게 먹이고 주일날 우리 예배 잘 드리자고 신신당부를 했는데요. 상습적으로 지각하고 빠지는 두 명의 아이들이 제 등 뒤에 칼을 꽂았습니다. 전화를 몇 통을 했지만 전화도 안 받고 분명히 부재중 전화가 찍혔을텐데 답장도 없었습니다. 사무엘의 마음을 아주 조금 이해를 하긴 하겠지만요. 저는 서운함과 섭섭함 그리고 약간의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사무엘처럼 되려면 아직 많이 성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무엘은 근심하며 밤을 새워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사무엘의 이와같은 태도는 왕과 백성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겠다고 고백했던 자신의 각오를 충실히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울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그렇게 밤이 새도록 기도하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사울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1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밤을 새워 기도하였지만, 기도의 기적적인 응답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는데요. 사울은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도 분개할 일인데, 그 일로 그치지 아니하고 자기 이름을 위해 기념비를 세웠다는 것은 이 전쟁의 승리가 마치 자신의 노력으로 승리한 것 마냥 자기를 높여 세웠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지금 교만의 끝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사울을 만납니다. 그러자 13절에 사울은 사무엘에게 이런 인사를 건냅니다.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아주 뻔뻔스럽게도 하나님의 이름과 복을 운운하며 사무엘에게 복을 받으라 라고 말하며, 자신이 여호와의 명령을 준행하였다고 말합니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무엘은 이와 같은 사울의 인사가 얼마나 가증스럽게 느껴졌을까요? 모세도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듯이 아마 사무엘도 선지자니까 지팡이를 들지 않았을까요? 만일 그렇게 가정한다면, 그 지팡이를 들어서 단번에 사울의 머리를 빡 때리면서 이놈의 자식아! 라고 외쳐야 속이라도 후련할텐데 사무엘은 이 가증스러운 인사를 받고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내 귀에 들려오는 양과 소의 울음소리는 무엇인가? 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사울의 뻔뻔한 태도가 계속 이어집니다. 15절의 말씀인데요.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사울이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무리가 라는 말은 13절에 말하는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다는 말과 너무나 대조되는 말입니다. 13절에서는 자신을 내세워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했다고 주장하다가, 자신의 상황이 불리해지자 재빨리 무리가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이 일은 자신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죠.

 

사울이 얼마나 치사하고 고약한 인물이 되어버렸는지는 이러한 태새전환을 보면서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왕으로서 백성을 다스리고 옳은 길로 인도해야 하는 직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리할 때마다 백성들을 핑곗거리로 일삼는 옹졸하고 파렴치한 사울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취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려 했다는 사울의 본심이 정말 그러하였을까요? 우리가 마땅히 의심할만한 상황을 만날 때, 누가 봐도 티가 나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을 때, 합리적 의심이라고 하죠.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울이 정말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서 저 양과 소를 남겼을까? 자신의 욕심과 탐욕 때문은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죠. 만약에 자신의 욕심과 탐욕 때문이었다면 그 어떤 심판이 임한들 변명할 거리가 없었겠지만, 정말 백번 양보해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양들과 소를 남겼다고 한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제물은 될 수 없는 것이죠.

 

우리는 이 말씀을 눈 여겨 보아야 합니다. 때로는 내가 주를 위하여 하고 있다고 하는 어떤 행위가 있다 한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과 방향이 아니라면 하나님 마음에 합한 행동이 아니라면, 주님을 위하여 하고 있다는 그 일이 오히려 내 머리에 죄악을 쌓고 있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변명에 사무엘은 1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던 그때 겸손했던 모습을 왜 잊었느냐는 책망이었죠. 하지만 사울은 20절과 21절에도 계속해서 같은 변명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왕으로 세워질 때 누구보다 겸손했던 사울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파멸의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말씀을 통해 보게 됩니다.

사무엘은 많은 신자들이 암송하고 있는 22절 말씀을 통해서 아주 중요한 핵심을 사울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사울은 하나님께는 번제만 잘 드리면 된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아주 무시하는 오만방자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블레셋과 전쟁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번제를 드리는 죄악을 저질렀고, 오늘의 본문에서의 사울은 기름지고 좋은 제물만 바치면 지금까지의 죄를 용서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지극히 일차원적이고 저급한 수준의 신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는 23절의 말씀과도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이를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곧 사울이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는 우상을 섬기는 것처럼 점을 치는 것처럼 하나님을 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드는 말씀과도 같습니다. 내가 예배시간을 잘 지키고 예배 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신자가 예배는 잘 드리지만 그 신자의 삶과 태도와 말과 마음의 생각이 악하며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신자의 예배를 받지 않으실 것이라는 말씀과도 같은 말씀인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순종이 예배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우리가 드리는 헌금보다 낫다는 말씀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순종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암몬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그리고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 승리에 자아도취 되어 하나님을 거역하였고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제사를 멸시하고 우상을 대하듯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재차 기회를 베푸셨지만, 그 은혜를 경히 여기고 더욱 불순종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하나님께서 더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곧 우리의 중심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 자체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 된 순종의 마음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심하는 그 태도를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겸손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의 삶을 살아가기에 힘쓰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내가 드리는 삶의 순종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삶인가요?

 

질문2.

예배를 드리고 헌금생활을 함으로 인해 내가 하나님께 드릴 태도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진정한 신앙생활이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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