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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군의 느릿느릿

유대인을 위한 복음

by 터틀곽 2023.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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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을 위한 복음

사도행전 13:13~31
새찬송가 455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어제의 본문과 이어서 바울과 바나바는 버가 지역에 이릅니다. 그곳에서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마가라 부르는 요한이 그곳에서 더 이상 사역을 함께 진행하지 않고 돌아간 이유는 복음전도 중에 어떤 갈등이 생겨났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15장에서는 전도 여행때  바나바가 요한도 데리고 가자 라고 말하지만 바울이 반대하죠. 그래서 둘이 심히 다투었다는 내용이 15장 후반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유와 상황을 막론하고 바나바와 바울은 계속해서 복음전도에 박차를 가합니다. 이후에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나아가는데요. 이곳은 안디옥 교회가 있는 수리아 안디옥과는 구별된 다른 지역입니다.

이 안디옥에서 안식일날 회당에 들어갑니다. 그들이 안식일날 회당에 들어간 일은 고난받을 것을 각오한 담력을 가지고 들어간 것과 같습니다. 회당에 모인 사람들 그것도 안식일에 모인 사람들은 유대인들 중에서도 깊은 유대교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인데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핍박한 이들이 여전히 강성하게 모여있는 곳이 바로 회당이고,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던 것이죠. 그곳으로 바울과 바나바가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합니다.

본문을 보면 회당장이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이후에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또 권면할 말씀이 있는가를 물어보자 바울이 일어나서 회당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보니 유대인들의 역사를 순차적으로 이야기 하면서 그중 가장 중요한 언약적 사건을 통해서 그일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까지 연결되었는지를 증거하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이 또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충격적인 설교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보통 회당에서 진행되는 예배는 관습적으로 그 자리에 앉아서 토라라고 분류된 율법서나 선지서를 낭독하고 그 말씀을 회당장이나 랍비가 해석하는 방법으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유대인들의 역사와 언약적 사건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음을 손짓까지 해가면서 웅변하듯이 선포하였던 것이죠.    

바울이 회당에서 일어나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은 누구보다 유대인의 혈통을 중요시 여겼던 사람이었고 회당에서 높임을 받던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라고 했던 고백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만난 바울의 삶은 그러한 혈통과 배경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고 진리 안에서 자유와 담대함을 얻게 된 것이 바울에게는 가장 가치 있는 것임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도 우리가 깨달을 수 있듯이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었던,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핍박하는데 가장 앞장 섰던 바울 그 자신이 이제는 예수그리스도의 변호자가 되어 안식일날 회당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그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이죠.

바울은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인 출애굽으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광야에서의 40년, 가나안 정복을 위해 만난 가나안 일곱 족속들의 이야기. 그리고 사사들과 사무엘의 이야기. 사울왕의 이야기, 다윗의 이야기 까지 전합니다. 그리고 그 언약가운데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나심을 증거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때가 이르기 전 출애굽의 유월절 사건과, 광야의 시간들, 가나안 정복기까지의 이야기는유대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토라 라고하는 즉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고 유대 민족을 제사장 나라로 세우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울왕과 다윗왕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혈통의 뿌리와 무엇인지 그리고 다윗과 언약하신 시온의 대로가 활짝 열려진 것을 믿고 사모하는 이스라엘의 소망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라는 위대한 왕을 통하여 언약하셨고 왕성한 대국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다윗의 때 이전의 영광을 잊지 못했던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과 다윗왕조의 위대한 왕가의 정통적인 권위는 이스라엘 백성의 열망을 대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유대인들이 박수를치며 옳소! 옳소! 라고 외칠만한 이야기들 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이후에 23절 말씀으로  그 언약의 성취가 다윗의 후손을 통해 이 땅에 오셨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 곧 구원자와 왕을 세우셨으니 그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셨지만 그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죽이는 데 앞장섰던 유대인들의 무지함과 범죄함과 교만함과 악행들을 꼬집어 냅니다.

너희가 그렇게 선민 의식을 가지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민족의 정체성과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느냐? 너희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며 소망하던 언약의 메시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어찌하여 모르느냐?

하지만 너희가 그를 죽음 가운데로 몰아 넣었지만 그는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하신 참 그리스도 예수 이시다! 라고 유대인들에게 선포하였던 것이죠.

바울이 유대인을 향하여 그리스도를 전파한 이 메시지는 그들이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민족의 정체성과 그 정체성을 대변하는 그들이 따르는 율법과 그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혈통적 우월성과 교만함을 뭉게버리는 말씀과도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모여서 토라를 읽었습니다. 선지서를 읽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것으로 의로워지기 위해서 누구의 행위가 더 의로운지 경쟁하듯이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인생을 살았지만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노력과 수고의 끝은 이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하고 그를 죽이는 무지함과 범죄함 속에서 지금껏 살아왔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리는 자들이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아마 대부분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을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의 모든 예언은 메시아 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그 구약의 모든 예언적 말씀을 성취하신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이 바울의 설교에 그렇게 찔림을 받았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태도는 어떨까요? 우리는 유대인과 어떤 다른점이 있습니까? 이방인이라는 것이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 또 다른점이겠죠. 하지만 우리의 심령속에 예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실 구원자이시며 우리의 정체성이시며,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를 아버지께로 인도하실 참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여전히 유대인들의 무지함처럼 그리스도는 모른채 표면적 종교행위에만 만족하며 껍데기에 갇혀있는 불쌍한 존재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단순히 앎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실제가 되어 내 삶에 능력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바울이 주님을 만나고 그가 완전히 새사람을 입었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우리의 존재의 변화를 느끼며 예수님을 알기를 마음 깊이 알아가기에 힘쓰며 우리 주님과 함께 동행하기를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담대하게 회당으로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그가 만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그에게 실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평생을 다하여 연구했던 율법과 민족의 정체성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실제가 되어 우리의 삶이 능력있는 삶으로 가득히 채워지기를 기도합시다.

사탄은 이러한 영적인 비밀을 감추려하고 우리의 옛사람을 충동질하여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도록 우리를 유혹하고 넘어지게 합니다. 사탄을 결박하는 것은 가장 강력한 이름 참된 왕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탄을 묶고 결박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표면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만족시키려고 우리를 속이는 사탄의 궤계를 무너뜨리고 실제인 하나님 나라를 믿음으로 누리며 살아가도록 믿음으로 선포하며 기도합시다.

공동기도제목으로는 구교회 예배당을 구세군 제주영사가 매매하기 위해서 준비중인데 이 일들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김영재 목사님을 위해서 또한 오늘부터 진행될 청소년부 캠프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또 앞으로 남아있는 여름사역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각자 개인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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