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교의 시작
사도행전 13:1~12
찬송가 502 빛의 사자들이여
오늘의 본문은 성령의 지시를 좇아서 안디옥교회가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하는 장면이 기록된 본문입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안디옥 교회의 소개와 함께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 명의 교사들과 선지자들이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11장에서 안디옥 교회가 언급되었을 때 당시보다 많은 성장을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당시 이들이 주를 섬기며 금식중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들이 금식하였던 것은 유대인들이 절기 중에 금식하는 전통을 따라서 금식을 한 것으로 볼수도 있지만, 오늘 기록된 본문을 살펴보면 주를 섬겨 금식할 때, 라는 말씀으로 보아 유대교 전통과는 다른 교회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금식을 하고 있었음으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를 섬김이라고 하는 이 섬김은 정확하게는 예배의 의미로 쓰여진 단어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에서는 주님께 예배드릴 때라고 번역을 하였는데요. 그래서 본절 2절을 좀 더 자연스럽게 번역하자면 주님께 예배하며 금식을 할 때. 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바른 번역이죠.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금식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다. 바로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교회 공동체가 함께 듣게 된 것이죠. 그 음성은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서 내가 그들에게 맡긴 일을 하도록 하게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선교사를 파송할 때 보통 한 개인이 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그 소명에 따라서 헌신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그 헌신한 선교사를 교회가 지원하고 함께 중보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경우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처럼 교회 공동체가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해서 함께 부르심을 받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일이죠.
우리는 이미 사도행전 11장을 살펴보아서 바나바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4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서 아주 중추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 교회의 지도자로서 가져야 할 덕목들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죠. 선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는 일이 일어났던 그런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던 것이죠.
그래서 안디옥 교회의 입장에서도 바나바와 사울을 파송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바나바는 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지도자이면서도 훌륭한 성품과 교회를 세워나가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던 인물이었습니다. 밖으로는 유대인들의 핍박과 공격들도 있었음에도 바나바라는 인물로 인하여 교회 공동체는 어려움들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와 동력을 얻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그러한 바나바를 또 사울을 따로 세우시면서 내가 그들을 통하여 할 일들이 있다. 라고 안디옥 교회의 공동체에게 말씀하셨던 것이죠.
그래서 안디옥 교회의 교인들이 행한 일이 무엇입니까?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이것이 안디옥 교회의 순종과 헌신이었습니다.
안디옥교회 공동체도 한편으로는 바나바와 사울을 보내는 것이 마냥 기쁘고 즐겁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나바는 그 안디옥 공동체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믿음으로 충만하여 교회 공동체를 잘 이끌고 나가고 있는 지도자 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안디옥 교회 공동체는 그 교회의 안위와 유익만을 위해 머뭇거리지 않고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였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성령께서 하시고자 하는 그 일가운데 순종하기 위해서 금식하며 또 기도하였고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그들에게 안수하고 그들을 파송했습니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며 성령의 역사하심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자세히 보여주는 성경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교회 공동체에도 사도행전의 말씀을 통하여서 주시는 여러가지 깨달음과 가르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영적으로 바르게 분별하고 또 기도하여 우리의 교회 공동체 위에도 적용해 나가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안디옥교회에 파송을 받은 바나바와 사울은 실루기아로 내려가 구브로로 건너갔고, 살라미에 이르렀습니다. 살라미는 구브로 섬 동쪽에 위치한 해안도시입니다. 살라미에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였기 때문에 회당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사역을 돕기 위해서 마가라 불리는 요한도 그 사역을 같이 도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도여정중에 유대인 거짓 선지자이며 마술을 하는 바예수라는 인물을 만나죠. 그는 그 섬의 총독인 서기오 바울과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서기오 바울을 지혜있는 사람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이 지도자가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거짓선지자인 바예수가 바나바와 사울을 대적하며 총독이 믿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았던 것이죠. 그때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서 그 거짓선지자를 책망하는데요. 10절에 이렇게 말하였죠.
온갖 거짓과 악이 가득한 마귀의 자식이며 모든 의의 원수야 주님의 길을 방해하는 그 짓을 당장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거짓선지자의 심령과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의 어둠을 지적합니다. 거짓선지자의 안에는 거짓과 악이 가득하였고 마귀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의로움과 반대되는 의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대로로 가는 주의 바른 길을 방해하는 일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거짓선지자인 바 예수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가로막는 그 일로 인하여 맹인이 되어 이리저리 더듬으며 자신을 이끌어줄 사람을 찾는 처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꼭 이 사람이 거짓선지자이며 마술사였기 때문에 이런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저주를 받은 이유는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사도들을 대적하였고 총독이 복음을 듣는 것을 방해하였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마음을 살펴보니 거짓과 악행이 가득하며 마귀의 자식이었던 것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 상태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중에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거나, 복음 전하는 일을 방해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당을 나누고 다른 사람을 힐난하거나 비난하고 상처를 주는 말을 하고 하는 일들은 교회 안에서 종종 일어납니다. 이러한 행위도 복음을 가로막는 행위입니다. 실제로도 많은 교회들이 서로에게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고 시험에 들게 만들고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조국 교회의 현실이죠.
우리가 대놓고 거짓선지자처럼 거짓을 말하지 아니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이 어두움에 거하게 되는 것을 방치하게 되면 우리 안에는 거짓과 악이 가득하여 마귀 자녀가 되어 복음을 가로막는일을 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교회 공동체의 부르심과 방향성에 대해 그리고 거짓된 마음 상태에 있는 사람에 대한 내용을 함께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지 우리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 자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희생과 포기를 선택할 줄 아는 공동체, 거짓이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서로를 섬기며 복음이 흥왕해 가는 공동체가 되도록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시간 함께 합심해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안디옥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교회의 지도자였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고 파송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이방인을 향한 선교가 시작되었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 교회됨의 사명을 잃지 않고 맡겨진 공동체의 사명을 능력있게 감당하는 교회로 세워지도록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의 마음이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셔서 교회를 세워나가기 위해 그리고 복음 전하는 일을 방해하거나 가로막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 상태를 잘 점검하게 하여 주옵소서.
공동기도제목으로는 구 교회 부지 매각이 하나님의 섭리와 뜻 가운데 잘 진행되도록 지금 구세군 제주영사 쪽과 그 일을 진행중에 있는데 잘 진행되도록 기도해주시고 김영재 목사님을 위해서 또 내일부터 진행되는 청소년 캠프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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