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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군의 느릿느릿

바로의 꿈을 해석한 요셉

by 터틀곽 2022.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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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의 꿈을 해석한 요셉

(41:1~16)

 

오늘의 본문은 애굽의 왕 바로가 꾼 꿈에 대해서 해석할 자를 찾다가 요셉을 통해 그 꿈의 해몽을 듣게 되는 내용이 기록된 본문입니다.

 

어제의 본문에는 술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고 실제로 그 꿈이 요셉이 해몽한대로 이루어지는 사건에 대해서 들었죠. 그래서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이 되고 떡 굽는 관원장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본문 마지막 구절인 23절을 보면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라고 기록이 되어 있죠.

 

어제의 본문인 14절에 보면 그들의 꿈을 해석하여주고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은혜를 베풀어서 내가 이 곳에서 풀려나도록 도와 달라고 말하지만,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이 되자마자 요셉을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그로부터 만 2년이 지난 시점이 오늘의 본문인데요. 2년 후에 바로가 꿈을 꿉니다. 꿈의 내용은 아름답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소 일곱 마리가 나오고, 흉하고 삐쩍 마른 암소가 나오는데 마른 소가 살찐 소를 잡아 먹습니다.

 

또 꿈을 꾸는데 한 줄기에 무성하고 알이 꽉 찬 일곱 이삭이 나오고, 또 이 후에 가늘고 삐쩍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죠. 그러자 또 마른 이삭이 통통한 이삭을 잡아 먹는 꿈을 꿉니다.

 

8절을 보면 바로가 이 꿈을 꾸고 나서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애굽의 모든 점술가와 지혜자들을 불러서 그 꿈을 해석하도록 하지만 그 꿈을 해석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바로가 왕으로 있던 나라가 어떤 나라였습니까? 당시 애굽은 최고로 부강한 나라였습니다. 그 나라의 왕이었던 바로는 하늘 아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보아도 무방한 인물이 바로 애굽의 왕 파라오였죠.

 

그 당시 사람들은 세상의 중심은 애굽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애굽이 어떤 정책을 펼치는가? 애굽의 왕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에 아주 지대한 관심을 보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도 아직 까지는 미국이 가장 큰 패권을 쥐고 있는 나라인데, 미국이 어떤 정책을 펼치는지에 대해서 주변 국가들은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최근에도 전기차에 대한 세금 혜택 때문에 우리나라가 아주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졌죠. 미국이 유통하는 달러의 가치가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하는 일로 인해서 무역을 하는 국가들의 사업이 휘청거리기도 합니다.

 

그만큼 애굽이 가진 막강한 힘. 그리고 그 힘의 중심에 있는 바로가 꾼 꿈 하나로 인해서 번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 부강하고 힘 있는 나라에 정말 많은 사람이 있었겠지만, 바로의 꿈 하나도 제대로 해석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죠.

 

하지만 애굽 사람도 아닌 히브리 노예였던, 그것도 종살이를 하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 있던 요셉을 통해서 그 꿈의 해석을 듣게 되는 놀라운 장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들을 바로 에게 계시하여 주셨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본래 미래의 일들은 보통 선지자들에게 보여주시기 마련인데요. 이번에는 바로에게 애굽에 일어날 미래의 일을 계시하여 주십니다.

 

성경의 흐름과 사건의 중심은 요셉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사건을 요셉에게 계시하여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애굽의 왕인 바로에게 계시하여 주고 계신 것이죠.

 

이 사건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모든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아닌 이들을 통해서도 자신의 뜻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계시하여 주시기도 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결국 요셉이 감옥에서 풀려나게 되는 섭리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요셉을 생각하거나 요셉을 지칭할 때, 꿈의 사람 요셉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요셉은 시작부터 꿈으로 시작하죠. 요셉에게 있어서 이 꿈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첫 번째 요셉이 꾸었던 꿈은 요셉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를 예표해주는 꿈이었습니다. 해와 달과 별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꿈을 통해서 자신이 종국에는 애굽의 총리가 될 것을 보여주는 꿈이었죠. 그 꿈을 신나게 떠들어대는 바람에 형들에게 미움을 사게 되어 죽임을 당할 뻔 했지만 그 사건을 통해서 애굽으로 들어가게 되는 기이한 섭리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수요일의 본문이었죠.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총무를 맡으며 형통한 삶을 살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꿈을 꾼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게 되죠.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고 계심을 드러내게 만드는 두 번째 꿈의 사건이 됩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이 세 번째 꿈을 해석한 사건인데요. 이제는 왕의 꿈을 해석하여 주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바로가 그 해석에 크게 탄복하여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게 되죠. 결국 자신이 열일곱살 때 꾸었던 그 꿈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을 이루어가시기 까지는 반드시 어떤 여정을 통과하도록 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이삭을 주시기까지는 25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너의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약속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돌보심을 구하는 여정 속에서 세 번이나 우물을 파면서 이리 저리 유리하는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에게 장자의 권리를 빼앗고 축복도 빼앗은 후 형의 분노를 피해서 도망가야 했었지만 벧엘 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언약을 갱신하여 주시는 은혜를 누립니다. 하지만 야곱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 까지는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요셉은 어떻습니까? 열일곱 살에 꿈을 통해서 해와 달과 별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꾸었지만 삼십세가 되어 총리가 되기 전까지 누명도 쓰고 감옥에도 갇히는등 인생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겪고 나서야 그 언약이 성취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때는 기도에 급하게 응답하기도 하시지만 또 다른 때는 이 언약이 성취되는 것이 맞나? 라고 여길 정도로 더디게 응답하실 때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시간들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일까요?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 중 하나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가요? 빨리 빨리입니다. 외국에 나가면 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을 볼 때 빨리 빨리라는 한국말을 쓰기도 한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우리 민족은 느린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뭐든지 순식간에 해치우거나 빠른 시간 안에 성과를 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예전에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도 말씀하셨지만 인디언들이었나요? 여행 가이드를 하던 도중 자신들이 너무 빨리 움직이는 바람에 영혼을 기다렸던 예화를 말씀해주신 적이 있었는데요. 한국에서는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행동이죠.

 

하지만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가 분명히 있으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 사건들과 인물들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죠.

 

요셉도 관원장들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자신의 사정을 잘 좀 봐주어서 이 곳에서 건져주기를 요청하였지만, 그 마져도 잊은 관원장 덕에 2년이란 시간을 더 옥살이를 하게 되죠. 2년의 시간을 지내면서 요셉은 술맡은 관원장이 자신을 까맣게 잊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 시간들을 통해서 성경에 등장한 인물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비되는데에 필요한 성장을 경험하였을 수도 있고요. 또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니기에 그 시간이 충만한데에 이르기까지 기다렸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때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고 그때가 충만해지기까지 또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 되기까지의 시간도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성숙하지 않았던 요셉이 곧바로 총리가 되었다면 요셉의 형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요셉이 바로 에게 나아가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14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본문에 보면 옷을 갈아입었다는 표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도 그렇고요 고대 문서들도 여러 문학적인 기법들이 있는데요. 요셉에게는 의복이라는 문학적 기법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요셉을 처음 등장시켰을 때 채색옷을 입은 존귀한 자로 표현을 합니다. 그리고 그의 옷이 형들에 의해 찢김을 당하면서 노예의 삶을 살게 됩니다. 또 가정총무가 되면서 그의 삶이 형통함을 누리는 것 같지만 보디발의 아내에 의해서 그의 옷을 버려둔 채 도망을 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보디발에게 잡히게 되어 억울하게 죄수의 옷을 입죠. 그리고 이제 그 옷을 갈아입고 바로에게 나아가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렇듯 요셉의 인생이 옷의 입힘과 벗겨짐을 통해서 그의 신분이 상승되는 문학적인 기법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본문에서 등장하지만 바로는 요셉에게 세마포로된 옷을 입히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결국에 요셉은 왕족이 입는 세마포 옷을 입고 애굽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어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 신앙생활의 여정은 늘 한결같거나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함의 연속은 아닐 것입니다. 요셉이 자신의 인생의 여정을 지나면서 그의 옷이 계속 갈아입혀졌던 것처럼 어떤때는 고난과 역경의 나날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때는 기쁨과 즐거움의 나날도 있을 것입니다.

 

또 각 사람마다 살아가는 인생의 여정이 다를 것이고요. 어떤 사람은 요셉처럼 종국에 영광을 누리는 인생이 아니라 그저 그런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다가 끝나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그리고 어떤 사람은 고난과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겠죠.

 

요셉이 결국엔 총리가 되어 영광을 누리는 인생을 살아감으로 그의 인생은 마무리 되었지만, 그의 후손들은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를 해야 하는 처지로 살아갔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인생은 어찌 보면 역사를 이끌고 가시는 하나님의 크신 경륜 안에서 짧은 한 점으로서 지나갈 수도 있지만, 그 찰나같은 짧은 인생을 굽어보시는 은혜를 함께 누리는 존재인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곧 우리는 요셉의 인생의 여정을 통해서 요셉이 여러 상황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의 형통하심이 그와 함께 하셨던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우리가 처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형통하심을 구하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임을 고백하시나요?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

 

질문2.

요셉이 입었던 옷 중에서 가장 만족감을 누리던 옷은 무엇이었을까요? 나는 왜 그 옷이 가장 만족함을 누리던 옷이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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