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바다거북에 대해서는 왠지 아무런 신비감도 느껴보지 못했다.
오히려 가엾게만 느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다거북에 대해 무자비한 것은, 바다거북을 칼로 난도질해서 완전히 토막을 낸 뒤에도 심장이 몇 시간 동안이나 살아 있을 때처럼 고동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심장도 바다거북의 것과 비슷하고, 또 내 손발도 바다거북의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아이들이 잠자기 전 가끔 책을 읽어주는데,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노인과 바다이다.
명작이긴 하지만 나도 읽어본적이 없어 아이들 덕분에 나도 마음의 양식을 채우고 있다.
읽던 도중 바다거북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은 거북이만 보면 마음이 두근거린다. 디멘시오 이후의 일이지만,
그전에도 거북이라는 별칭은 내 삶의 일부였고,
디멘시오 수련회 이후 조금 더 특별해진 또 다른 나의 자화상 같았다.
오늘의 책 내용에 등장한 거북은 사람들한테 잡혀서 난도질 당하는 처지로 등장한다.
하지만 완전히 토막이 난 이후에도 바다거북의 삼장은 몇 시간을 더 살아서 고동친다고 했다.
그 대목을 마주하면서 사람들에게 잡혀 죽임을 당해야 했던 딱한 거북이의 처지와
그 사지가 난도질해지며 죽어가는 처지에서도 힘차게 고동치는 심장의 생명력,
삶을 향한 처절한 애착이 동시에 느껴졌다.
거북이가 가진 이미지가 무엇일까 라고 조용히 생각해보면
(종류마다, 자기들 성격마다 다르겠지만)
어쩌다 혼자 뒤집히면 스스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육지에서는 너무 느려서 딱하리만치 둔해보이고
바다에서는 모르겠지만 느리기에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할만한
무기나 공격성도 없어보이고
숨을 곳은 자기 몸뚱이에 달린 껍데기 밖에 없으니
참으로 딱하고 안쓰러운 동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딱한처지에서도, 몸이 난도질 당해 죽음을 맞이해도
멈추지 않는 그 심장이 있다는 것을 보며
왠지 거북이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삶의 애착 때문에 심장이 뛰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거북이는 강한 심장을 가지고
태어났으리라.
남들이 느리다고 미련하다고 놀려대도
우직하게 자신의 갈길을 걸어가 토끼를 이겨내고야 마는
전래동화의 거북이 처럼
그 일이 가능한 것은 강한 심장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라.
내게도 그런 거북이의 심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누가 뭐라해도 멈추지 않는 심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칼로 난도질 당해 너덜너덜해진 상태 가운데 처해 있어도
심장만큼은, 그 안에 담긴 생명력 만큼은 바다거북이 처럼
계속해서 뛰어대는 그런 우직하고 강한 심장을 가지고 싶다.
오늘은 왠지 거북이라는 그 별명이 한편으론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이제보니 이 블로그 주소도 거북이고,
주인장 이름도 터틀곽이니
내 생애 속에서 거북이는
영혼의 단짝이려나, 또 다른 나 이려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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