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울이 당한 결박과 환난
사도행전 21:27~40
찬송가 435 나의 영원하신 기업
오늘의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바울은 결박과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울이 당하는 이 고난은 성령께서 미리 말씀하신 바대로 이루어지게 된 사건임을 알 수 있는데요. 전장인 20장 23절에 보면 바울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바울은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부터 이미 결박과 환난을 당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위해 함께 중보하던 이들도 바울이 고난 당할 것을 알기에 바울의 예루살렘 선교를만류 하기도 하였죠.
하지만 바울은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갈것임을 고백하였고 바울의 고백중 가장 결의에 찬 고백을 남깁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23절 다음인 24절의 말씀이죠.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 사명감과 부르심 앞에서 바울은 자신의 의지와 생각과 감정에 매인것이 아니라 성령께 매인바 되어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의 할 일을 감당하며 바울과 네명의 서원자가 7일간의 예식을 거의 마칠 무렵에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에 의해 고발당하고 잡히게 됩니다.
이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은 에베소에서 올라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 오순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올라온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을 보자마자 바울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즉각 알아보았는데요. 이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먼저 3년간 선교활동을 해왔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에서 올라온 유대인들은 바울을 보자마자 극도로 흥분하며 소리를 지르고 사람들을 충동하여 바울을 고발하였습니다. 그 고발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조상인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과 성전, 이 세가지 요소를거스리는 내용을 가르쳤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세가지 요소. 선민사상, 율법, 성전 이 세가지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고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었기에 그 부분을 지적한 바울에 대해서 그 분노가 극에 달했던 것이죠.
바울의 가르침은 이 세가지 요소를 거스리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그리스도의 도가 적용된다라는 점.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가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만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거하시는 어느 곳이든 성전임을 가르쳤던 것이죠.
이러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침을 전하던 바울이 그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까지 와서 그리스도의 도를 전하니 절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바울을 보고는 눈이 뒤집어졌던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단 한마디의 자기 변호도 허용하지 않고 성전 밖으로 끌어내었습니다. 바울을 먼저 성전 밖으로 끌어낸 이유는 아마 두 가지였을 것입니다. 첫번째로는 분노한 군중들이 성전으로 밀려와서 그곳에서 바울을 살해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살해 사건이 있게 되면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되기 때문에 성전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 그 일을 피하려 했을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바울이 제단 뿔을 잡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제단 뿔을 잡고 있는 동안에는 살육을 행할 수 없다는 율법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그것을 잡아 목숨을 부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끌어내었던 것이죠.
이 두가지 이유 모두 다 바울을 죽이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죽여야 했기에 성전에서 죽일 수 없었고, 죽여야 했기에 제단 뿔을 잡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죠.
이 사건만 보아도 유대인들이 얼마나 바울을 극심하게 미워했는지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31절에도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 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듯이 성난 유대인들은 바울을 단숨에라도 죽이려고 하는 액션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죠.
바로 그때 이 보고가 천부장에게 올라갑니다. 그 당시가 오순절 절기 기간이었기 때문에 폭동이나 소란을 대비하기 위해서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들의 움직임을 철저하게 주시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폭동과 같은 소란이 천부장에게 바로 신속하게 보고가 됐던 것이죠.
그래서 천부장이 백부장들을 데리고 급하게 그 소동의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그러자 바울을 치던 유대인들이 그 군대를 보고 바울을 때리는 것을 멈추죠. 그리고는 일단 소동의 원인인 바울을 체포합니다. 그리고 너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였길래 이런 소동이 일어났는지를 물어보죠.
그러자 무리에서 각각의 사람들이 서로 소리를 높여서 바울을 고발하는데요.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너무 소란스러워서 바울을 데리고 군영으로 데리고 가고자 하죠. 그런데 그렇게 로마의 군인들이 바울을 데리고 가는 와중에도 유대 군중들이 바울을 폭행하고 난폭하게 굴었기 때문에 오히려 로마 군인들이 바울을 애워싸서 경호하면서 그를 병영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와중에도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바울을 죽이라고 외치며 바울을 따라갔던 것이죠.
그때 바울이 천부장을 향해서 헬라어 곧 그리스 언어로 내가 한마디를 전해도 되겠는지를 묻습니다. 유대인들의 소동인줄 알았던 천부장은 깜짝 놀라서 바울에게 네가 헬라 말을 할줄 아냐고 묻습니다. 이 헬라어는 로마 제국권 안에서는 공통 언어였지만 이 말을 할줄 아는 사람들은 교양과 학식이 있는 문화인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을 향해 네가 헬라 말을 할줄 아느냐? 라고 물었던 것은 바울이 단순한 유대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천부장이 바로 직감했던 것이죠.
그러자 바울이 자신의 출신을 설명하고 자신을 죽이라고 온 소란을 일으키던 유대인들을 향하여 자신이 전할 말이 있으니 말할 기회를 달라. 라고 말하였고, 천부장은 이를 허락합니다. 이미 천부장은 바울이 보통 유대인이 아니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 연설을 허락해주죠. 그리고 바울은 이제 유대인들을 향해 서서 이제는 히브리말로 연설을 시작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유대인들이 바울을 향한 분노가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유대인의 집에서 태어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다가 유대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으로 유대인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치부와 거짓된 심령의 정곡을 날카롭게 찌르던 예수님을 죽였으니 그들은 다시 표면적인 유대인으로 율법을 지키며 자신의 의로움을 뽐내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고 그 부활의 증인들인 사도들을 통해 또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도바울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과 그 가르침이 여전히 살아있음이 증거되었습니다.
이 진리가 다시 선포되자 유대인들이 괴로웠던 것이죠. 예수는 자신의 손으로 죽였는데, 그가 다시 부활하였고, 또 그의 가르침이 진리라는 그 말씀이 다시 선포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이려고 했던 것이죠.
바울은 자신에게 닥칠 이러한 환난과 결박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것을 두려워 하지 않았고 그 환난 앞에 담대히 나아가 자신을 죽이려하는 그 유대인 동포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 부활의 주님을 담대히 증거하였던 것이죠.
바울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쇠사슬로 양팔은 결박당해 있고, 흥분한 무리들로부터 그를 보호하기 위해 로마의 군인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으며 그 군인들 뒤로는 자신을 죽이려고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향해 소리치고 있는 군중들의 성난 외침 가운데 바울이 서 있는 것이죠.
하지만 바울은 요동하거나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천부장에게는 헬라어로 내가 할 말이 있음을 전하였고, 유대인들을 향해서 손짓하여 그들을 조용히 시킨 이후에 동포에게는 히브리 말로 연설을 하고 있는 것이죠.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고 누군가 나를 시기하거나 이유없이 미워하기는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거나 차별을 당하기도 하죠.
그때 우리가 오늘의 본문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에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우리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을 때, 그것이 헛된 고난이 아니라, 그 고난이 그리스도를 사랑한 흔적이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기 위한 밑거름이 됨임을 기억하시면서 어려움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또 담대히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이렇게 기도하길 원합니다. 주님 바울이 환난과 결박이 자신을 기다린다 하여도 성령에 매여 꿋꿋하게, 또 담대하게 그 길을 걸었던 것을 기억하게 하여 주셔서, 우리도 성령에 매인 삶을 살아가도록 내 삶을 붙드시기를 기도합시다.
또한 실제로 그 환난과 결박 앞에서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요동치 아니하고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다 한 바울을 보며,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을 위해 내 삶에 새겨질 고난까지도 사랑하게 하셔서 믿음으로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기를 다짐하는 인생이 되길 기도합시다.
공동기도제목으로는 구교회 성전 매각을 위해, 김영재 담임목사님을 위해 교통사고 이후 수술과 회복을 기다리는 김시우, 김한솔 부부와 윤장욱 선교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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