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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중에

by 터틀곽 2023.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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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중에

(사도행전 1:12~26)

 

어제 주일부터 큐티 본문이 사도행전으로 새롭게 시작하였습니다. 목사님께서 주일 설교의 본문을 누가복음으로 시작하시면서 사도행전도 누가가 기록하였다고 말씀해 주셨었죠. 사도행전은 불리는 여러 이름이 있습니다. 누가가 기록하였기에 누가행전 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성령행전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성령행전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성령의 일하심이 구체적이고 강권적으로 역사하시는 일들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사도행전은 초대교회로부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시점까지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사도행전 적 교회라는 슬로건을 들어보신 분들도 계시죠. 그만큼 사도행전은 교회의 태동과 교회의 방향성, 그리고 교회의 본질과 모태가 되는 사역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책입니다.

 

사도행전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시작합니다. 사도행전 11절에 보면 내가 먼저 쓴 글에는 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먼저 쓴 글은 누가복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먼저 쓰여진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행하시기를 가르치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다. 라고 말하였죠. 곧 누가복음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일을 중점적으로 기록하였음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이 사도행전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예수께서 택한 사도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어떤 일들을 이루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이 본문은 유다의 죽음과 맛디아를 사도로 새로이 선출하는 내용이 기록된 본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가룟유다의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요. 유다의 죽음을 이야기 하기 전에 그들이 행한 일이 먼저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14절입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사도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모여서 힘을 다해 기도했던 것은 예수께서 보이셨던 기도의 모범을 보아 알고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리며 기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구절에서 중요한 문장은 마음을 같이하였다는 문장입니다.

 

마음을 같이하였다는 이 문장은 일치된 마음, 하나로 연합된 마음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헬라어에서는 이 마음을 같이 하였다는 단어를 두 개의 단어를 하나로 합성한 단어로 기록하고 있는데요. 하나는 함께, 같이, 라는 단어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감정, 열정, 격정적인 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하나 된 마음은 어떤 똑같은 주제로 기도했다. 라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했던 것은 그들의 열정과 감정과 격정적인 열심을 담아 마음을 일치시켜 힘을 다해 기도했음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기도에도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 한 개인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로 나아가는 기도가 있고요. 또 오늘의 본문처럼 합심하여 올려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이 마음을 같이하여 합심해서 드리는 기도는 목적과 목표가 조금 더 명확하죠. 교회 공동체의 필요와 어려움을 돌파해 나가기 위해서 드리는 기도가 마음을 같이하여 드리는 기도입니다.

 

이 합심기도는 기도에 담기는 마음이 서로 일치가 되고, 교통이 되고, 하나 된 마음이 될 때 그 안에서 운행하시는 성령님의 운행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지속적으로 모여 함께 기도했을 때 사도행전 2장의 기록처럼 성령께서 그들 위에 임하시는 것을 경험하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죠.

 

이러한 기도의 자리는 영적인 흐름과 힘이 있습니다. 우리도 마음을 같이하여 올려드리는 공동체의 기도 가운데 나아 갈 때는 하나 된 마음과 또 열정과 감정과 마음을 쏟아내어 기도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을 더 살펴보면 모인 무리의 수가 백이십명 가량 모여있을 때 베드로가 그들 가운데서 일어나 유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유다는 본래 사도로서 자신들과 함께 한 직분을 맡았던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죠.

 

유다는 돈을 관리하는 직분을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공동체의 재정을 담당하는 직분을 가진 자였죠. 요한복음에 보면 나사로의 여동생인 마리아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기 위해서 순전한 나드가 담긴 옥합을 깨어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그 발을 닦은 사건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때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고 마리아를 책망하죠. 그리고 그렇게 말한 이유를 요한복음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유다는 실제로 예수님을 은 삼십에 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긴 인물이기도 하지요. 재물과 돈에 욕심이 많았던 인물이 바로 이 유다였습니다.

 

하지만 이 유다는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나오게 되었다고 18절에 기록되어있죠.

 

이 두 부분은 마태복음의 기록과는 조금 다른 기록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대제사장이 밭을 산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목을 매어 죽었다. 라고 말하고 있죠. 성경이 기록될 당시 여러 구전들이 묶여 편집되는 과정에서 여러 이야기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목을 매었지만 노끈이 끊어져서 땅에 떨어져 배가 터졌다는 이야기, 그리고 땅에 떨어지면서 바위에 부딛혀 배가 터졌다는 이야기 등이 있다고 합니다. 또 파피아스의 글에 의하면 유다는 신부전증과 같은 병에 걸려서 몸이 엄청나게 부었다가 결국 수레에 치어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승되었다고 합니다.

 

 

누가가 이 이야기들을 종합하여 유다의 죽음을 조금 더 자세하게 묘사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유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죠.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 중에 누군가의 배신과 죽음을 공석에서 꺼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유다 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모두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갔던 사람들이었죠. 그리고 대표적으로 이 말을 일어서서 전하고 있는 베드로 또한 예수님을 세 번이나 저주하며 결코 그를 모른다. 라고 말했던 인물이지 않습니까.

 

유다의 일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것, 그리고 유다는 이미 죽은바 되어 사도직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공론화 하는 것은 공동체에 있어서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드러내고 그 일을 통해 다른 사도를 세우는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 번째 말씀 드렸던 기도의 힘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감정으로는 사람의 마음으로는 이전의 아픔과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 어렵습니다. 오히려 묻어두고 아무도 발설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편하죠. 하지만 그들은 공동체의 유익과 그들이 감당해야 할 사도직의 직무를 계속해야 했기에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하였고. 그 기도 안에서 그들의 마음이 연합되었고, 하나 되었기에 아픔과 상처에 잠식되지 않고 오히려 그 일을 돌파하며 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일을 감당할 사도를 선출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1절과22절의 말씀이죠.

 

이러하므로 요한의 침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로 사도라 불림 받은 이들은 예수께서 침례 받으시던 그 날부터 세워진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까지 목격했던 사람들이었죠. 그들 중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서 하나를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그 기준은 첫번째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본 인물이어야 하며, 또한 예수님의 공생에 또한 함께 생활했던 자로 기준을 삼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도의 직임을 받아 활동해야 하는 그 일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임을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일을 진행하는 방법이 24절과 2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사도들은 자신과 함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할 사람을 뽑는 방법으로 기도를 통하여 그 일을 진행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자신과 함께 일할 사람을 뽑는데 회의하고 투표하는 방식으로 그 일을 진행한 것이 아니죠. 얼마든지 회의할 수 있고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이러이러한 것이 장점이다. 맛디아는 이러이러한 점이 장점이다. 누가 더 좋은 학력을 가졌다. 누가 더 언변이 뛰어나다. 누가 관계성이 더 좋다 등등 얼마든지 직무를 맡는데 있어서 누구의 능력이 더욱 출중한지, 누가 더 사도적 직임을 잘 감당할 사람인지를 평가하고 의견을 낼 수 있었겠죠.

 

하지만 사도들은 그 기준에 맞는 사람을 두 명 세우고 이후에는 기도하고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선출하였습니다. 그들이 기도에 전력을 다했던 것은 자기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기록된 대로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였기 때문입다.

 

기도보다, 말씀보다 앞서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시죠. 찬양으로도 있습니다. 주님보다 앞서지 않고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 기다리니. 라는 찬양의 고백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고백을 올려드리지만, 정말 우리가 기도보다 말씀보다 앞서지 않고 있나요? 우리의 입술은 이처럼 고백하지만, 우리의 삶의 선택과 결정은 나의 생각과 기준과 판단에 맞춰서 일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도들은 기도하며 자신의 연약함을 돌아보고, 또 기도하며 앞으로 나가야 할 일을 준비하였습니다. 우리도 교회 공동체를 위해 연합된 마음, 하나 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들이 주님보다 기도보다 말씀보다 앞서지 아니하도록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 우리는 우리 각자의 삶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도 우리의 삶의 자세를 기도와 말씀으로 준비하며 주님께로 나아가기를 힘쓰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1.

우리 공동체는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쓰고 있습니까? 마음을 같이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질문2.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의 자리에 나가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입니다. 내가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방해는 무엇인가요? 그것이 기도할 이유보다 큰 이유가 되나요?

 

 

기도1.

하나님 우리에게 하나된 마음을 주옵소서. 내가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기도의 능력을 삶으로 살아내게 하여 주셔서 우리의 지체들을 기도의 자리로 이끄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현재 우리 교회가 직면한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를 모아 이 어려움을 돌파해 갈 수 있도록

 

 

 

기도2.

기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치유하고 회복케 하는 능력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지하고 나의 모든 것을 아뢸 때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당신의 강함으로 붙들어 세우실 것입니다. 또한 기도는 내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감당케 만드는 능력의 본질임을 기억하게 하여 주셔서 이 기도의 자리를 통해 우리에게 고유하게 부여하신 소명과 사명을 이루는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공동기도

여름 사역을 위해, 교회와 공동체를 위해, 목사님과 목사님 가정,위해, 구교회 부지 매각을 위해 개인기도제목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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